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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러리-풀꽃나무

식물 탐사 일기 - 안양천, 오남저수지 (08.05.27)

by 심자한2 2008. 5. 29.

  

문병 갈 일이 있어서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한 병원에 갔다.

집에서 거의 세 시간이나 되는 먼 거리다.

사실 뭐 그곳이 먼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집이 워낙 교통편으로 따지면 오지나 마찬가지라는게 보다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문병을 마치고 양화대교에 있는 선유도공원이나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에 들려볼까 했었다.

그런데 먼 거리 이동하느라 그다지 피곤하거나 지치지는 않았는데도 날씨도 여름처럼 더워서인지 여기저기 돌아다닐 마음이 나지 않는다.

해서 병원에서 전철역 가는 도중에 있는 안양천이나 들려보기로 한다.

최근에 사초에 좀 관심을 가져보려 했는데 병원 가는 길에 지나다 보니 천변에 사초 종류가 상당히 많이 자라고 있었던 걸 보았기 때문이다.

 

천변으로 가는 길에 인도에 떨어져 있는 나뭇잎 하나가 내 눈길을 끈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아니지, 취미는 못 속인다고 언뜻 그 나뭇잎이 이제까지 보았던 양버즘나무의 잎과는 어딘가 좀 다른 듯하여 그 자리에 선다.

흔히 서울시내의 가로수로 목격되는, 소위 플라타너스라고 하는 나무는 양버즘나무인데 양버즘나무는 몇 개로 갈라진 잎의 가운데 갈래조각의 폭이 길이보다 더 길다.

그런데 이 나뭇잎은 그 반대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이것이 버즘나무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양버즘나무는 잎몸이 3~5개로 갈라지고 버즘나무와 단풍버즘나무는 5~7개로 갈라진다.

이 녀석은 갈래조각이 7개 이니 후자의 두 종류 중 하나일 게다.

그런데 버즘나무는 각 갈래조각에 커다랗고 예리한 거치가 있다 하니 사진 속 나뭇잎은 단풍버즘나무의 잎이 된다.

자료에는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전국에 식재된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단풍버즘나무를 보았으니 세 가지 버즘나무 종류 모두가  가로수로 식재되고 있는 모양이다.

 

천변이라 그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걷기와 자전거 타기에 열심이다.

단순히 산책을 위해 나온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요즘은 어딜 가나 이런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심지어는 수목원을 가도 수목을 관찰하러 온 사람보다는 단순히 운동과 가족나들이를 위해 나온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건강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지대해졌기 때문이리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관념에서 현실로 전이되기까지에는 어느 정도의 연륜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옛말에 불과한가 보다.

대체로 걷기 운동에 열중인 사람들은 노년층인데 정식 복장을 갖추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다.

대략 나이로 보아 한참 일할 연령층들인 것 같은데 어찌 하여 이런 시간에 이런 장소에서 내 눈에 띄는지 모르겠다.

산에서도 자주 이런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왜 갑자기 수치도 기억하지 못 하는 우리나라의 실직율이 머리에 떠오르는 건지.

 

우선 둑길을 걸어 다음 다리 있는 곳까지 갔다가 원점회귀할 때는 둑 아래 하상 산책로를 이용하기로 한다.

눈에 드는 사초 종류가 하나 있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니 지나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본다.

아예 하던 운동을 멈추고 곁에 서서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있다.

그런 관심들이 초기에는 그다지도 쑥스럽고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뭐 아무렇지도 않다.

보거나 말거나 잠자리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가며 갖은 자세를 다 구사하면서 피사체를 대한다.

누가 여기는 둑방길답지 않다고 항변이라도 했는지 바람은 왜 이리 심술을 부리는지.

여하튼 사초 종류는 정말 가늘고 키만 훌쩍 커서 카메라 안으로 집어넣기가 무척 힘이 든다.

더 큰 문제는 촬영이 아니라 나중에 해야 할 동정이다. ㅠㅠ

 

둑 한편에 있는 작은 공간에 비둘기들이 잔뜩 모여 있다.

특별히 누군가가 먹이를 흩뿌려놓은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근처에 딱히 쉴 만한 공간이 없어서 아마도 이곳을 아지트로 삼은 모양이다.

아니면 최근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조류독감 문제로 혹여 체포되어 사형집행 영장이라도 발부될까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이곳으로 피난을 온 건가?

여하튼 개인적으로 비둘기로부터 예전의 평화의 상징이란 수식어가 이탈된 지가 오래다.

그들이 군집해 있는 모습이 그다지 평화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장미가 한창인 계절이다.

순차적으로 피어나는 꽃들이 달력을 대신한다.

 

꽃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아도 군락하는 사초류도 제법 멋이 있다.

개피가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뒤채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머리속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어느 초원의 모습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유독 개피와 독보리의 기세가 드세다.

독보리의 존재는 최근에야 알았는데 알고 나서 보니 가는 곳마다 눈에 띌 정도로 아주 흔하다.

그동안 독보리가 얼마나 섭섭해 했을까.

아직 정확한 동정은 해보지 않아서 확실치는 않으나 독보리와 유사한 것으로 쇠보리, 호밀풀 등이 있던데 내가 대한 것이 어쩌면 독보리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키 큰 사초들 밑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큰개불알풀이 아직까지 피어 있다.

꽃이 작아 보여 혹시 개불알풀이 아닌가 해서 잎의 톱니 갯수를 세어봤는데 톱니가 4개인 것이 큰개불알풀이 맞다.

하긴 톱니가 두세 개인 개불알풀은 남쪽 지방에서나 핀다 하니 이곳까지 뜬금없이 진출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몇 년 전에 남쪽 지방에 놀러 갔을 때 길가에서 개불알풀을 본 적이 있다.

귀찮아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그 뒤로 그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게 무척이나 후회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쪽 지방, 조만간 다시 한 번 여행하고 싶어진다.

 

소리쟁이는 너무 흔해서 홀대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다.

오늘 문득 이 친구한테도 관심을 좀 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디카를 통해 대화 좀 해봤다.

확대 사진을 통해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이 친구도 신비롭기 그지 없는 식물이다.

 

천변에는 생각했던 만큼의 사초류가 없었기에 그만 돌아가기로 한다.

전철과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오다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잠시 들르기로 한다.

가지고 있는 도감만으로는 사초류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데 예전에 이 도서관에서 사초류에 대한 커다란 도감을 보았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막상 그 책자를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도감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대충 �어보고는 그냥 도서관을 나와버렸다.

더군다나 이 책자에 있는 그림은 사진이 아니라 세밀화이기에 전문가가 아니면 참조해도 큰 도움이 될 성싶지 않았다.

도서관을 나오면서도 습관적으로 눈은 길가의 풀들에게 고정된다.

그러다가 작년에 동네 들판에서 보았던 배암차즈기가 눈에 띈다.

잡풀들 사이에서 간신히 키높이를 유지하고 있는데다 꽃 자체가 그다지 크지 않아 별 생각없이 바라보았다면 놓칠 뻔했다.

 

어느 집 화단에 누군가가 바위취를 심어두었다.

총 다섯 장의 꽃잎 중에서 밑의 두 장이 월등히 큰 모습이 마치 수염 같기도 하고 가위날 같기도 하다.

수염이라면 장비보다는 관운장의 수염쯤 되어 보인다.

위에 있는 세 장이 꽃잎에는 연한 홍색에 짙은 홍색 무늬가 있는데 아래 두 장의 꽃잎과 바탕 색 자체가 다른 게 신기하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아직 해가 있기에 오남저수지에 잠깐 들린다.

둑방길을 걷는데 한쪽에 붓꽃이 잔뜩 피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요즘에는 산에 가나 물가에 가나 이 붓꽃이 자주 보인다.

 

저수지 둑에는 쑥 뜯는 여인들의 발길도 이젠 뜸하다.

이따금 데이트 나온 연인인 듯한 사람들이 느긋한 걸음걸이로 소요하는 모습만 눈에 띌 뿐이다.

저수지 주변엔 듬성듬성 낚시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대개는 혼자다.

강태공의 그 깊은 심중을 헤아려 보기 위함인지, 단순히 심심파적을 위한 건지 알 길이 없다.

바람이 없으니 수면은 고요한데 빗방울이라도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수면에 동심원이 그려진다.

물 밑 바닥에서 공기방울이 올라와서 그런 건지, 물고기들이 가끔 수면 위에서 입을 뻐끔거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많던 철새들도 다들 제 갈 길을 떠났는지 이젠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척이 있어 하늘을 보니 꽁지가 아주 짧은 이름 모를 철새 한 마리가 열심히 날개짓을 하며 앞 산 풍경을 가른다.

옆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위쪽에서 내려다 보니 철새가 지나는 궤적이 그대로 수면에 나타난다.

날개에 묻였던 물이 떨어지면서 철새가 지나는 방향을 물 위에 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철새가 날아간 저 하늘 위에 철새의 고단한 여행을 위로라도 하듯이 이제 곧 노을이 붉게 물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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