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 여행이라네.
이 사전적 정의를 적용한다면 난 여행을 한 게 아니잖아.
금요일에 떠나서 일요일에 돌아왔고 매일 밤에 잠은 꼬박꼬박 잤으니 2박 3일이군.
지인 만나서 술 마시고 술이 숙면을 가져다 주었고 다음날이면 산행을 하고, 한 번이 아쉬워서 그걸 2회 반복하고...
일하러 간 것도 아니고 유람이 주목적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딱히 음주나 산행을 위해 그 먼 남쪽 지방까지 간 것도 아니고...
이걸 여행이라고 했다가는 국어사전이 눈에 쌍심지를 켜겠지.
내 이번의 남쪽지방 나들이를 굳이 여행이라고 칭하려면 "어디론가 떠나는 것" 또는 "일상의 틀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는 것" 정도로 여행의 정의를 바꾸면 될라나.
두번째 정의는 별로인 거 같네.
장소만 바꿔서 산행과 음주를 했으니 다른 장소에서 일상이 유지된 거잖아.
첫번째는 그런대로 괜찮구만.
회자정리란 사자성어는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내포하고 있다는 본질적 속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뒤집어서 생각하면 떠난다는 것도 귀환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예비하고 있는 건가?
떠난간다는 것과 돌아온다는 것은 뭐가 다르지.
반대편에 서서 떠나온다는 것과 돌아간다는 말로 바꿔도 같은 의미인가?
방향이란 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출발점이 집이라면 떠나갔다 돌아온 것이고, 출발점이 나를 애초에 잉태했던 자연이라면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다시 떠나온 게 되네.
이 정도면 궤변의 범주에 드는 건가?
이 말이 궤변이 아니라면 결국 여행이란 양 빙향 모두가 귀환이 되는 거네.
굳이 용어를 구별해서 쓴다면 하나는 귀소, 다른 하나는 귀가 정도가 되겠군.
결국은 여행이란 없는 게 되누만.
돌아갔다가 돌아오는 거니까 떠난 사실이 없는 거잖아.
어딜 가나 마음만 겉돌지 않으면 제자리일거야.
몸만 공간이동을 한 셈이지.
골치 아픈 화두니까 이쯤에서 대충 일반인들의 통념을 적용해서 난 잠시 여행을 다녀온 걸로 하지 뭐.
밤이란 까매야지 하야면 제 맛이 안나잖아.
누군가 젊어서 여행은 하나라도 얻기 위해 떠나야 하고 늙어서 여행은 하나라도 버리기 위해 떠나야 한다고 했지.
젊고 늙음의 기준이 뭘까?
어느 금을 밟으면 하향곡선이 시작되는 걸까?
젊음은 메타기의 숫자처럼 어느 순간 찰칵하고 늙음으로 넘어가는 걸까?
메타기는 물질적인 건가, 아니면 정신적인 건가?
메타기가 고장나거나 의식적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면 귀밑머리는 계속 검은색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도대체 보이지 않는 선의 어느 쪽에 있는 거지?
그걸 알아야 그 선각자의 말씀대로 얻든지 버리든지 할 텐데.
내 위치에 대해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일부는 버리고 일부는 얻어 오면 되지 않을까?
근데 뭘 얻었고 뭘 버렸지?
난 지금 뭔가를 얻을 만한 정력은 남아 있는 건가?
난 지금 뭔가를 버릴 수 있을 만큼 채우고 있는 건가?
전자는 모르겠지만 후자는 알 수 있을 것도 같네.
나도 평범한 갑남을녀에 속해 있으니 내 안에 내 나이만큼 몸집이 비대해진 과욕이란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테고 그것만 상자 안의 돼지 살점 자르듯이 쬐끔 잘라내고 오면 되는 거잖아.
그렇다면 난 성공한 거네.
술병 비우면서, 그리고 산행 중 가파른 경사로에서 땀을 흘리면서 일상에서 미진했던 것에 대한 미련도 일부 비워내고 흘렸으니까.
아참, 그러고 보니 술잔과 땀방울 속에 담긴 건 술과 염분만은 아니었던 것도 같네.
비록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였겠지만 삶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술과 땀 속에서 여과효과를 가졌었나봐.
미련과 욕심이 빠져나간 자리에 지금 온기가 느껴지니 말이야.
그 온기가 꺼져가는 화로에 밑불이 되어준다면 좋으련만.
그렇게만 된다면 다음에는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더 많이 비워낼 수 있을 텐데.
그래 난 굳이 경계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을 거야.
이제까지 채우는 데만 급급했으니 이젠 좀 가벼워지려 노력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알아서 판단하는 게 현명하겠지.
그러고 보면 경계선은 아라비아 숫자 속 어딘가에 숨어서 깜짝쇼를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고 내 스스로 그어야 비로소 존재하고 태동하는 걸지도 몰라.
오늘밤에는 내 등고선과 좌표나 점검해봐야겠어.
흩어진 무게중심을 거기 모아놓으면 물구나무 선 것만 같던 세상도 사실은 떠나간 적도 없고 떠나온 적도 없는 본래의 제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될지도 모르잖아.
오늘 내 꿈 속을 흐르는 밤에게 폭포와의 조우는 없을 거란 예감이 드네.
난 그 강물에서 한 마리 연어가 되어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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