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일이 있어 잠실에 갔는데 일을 마치고 나니 12시 남짓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에 가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10년 이상 전에 딱 한 번 가봤던 곳인지라 공원 전경이 가물가물하여 언젠가 한 번 발걸음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가 오래인데 오늘을 그 기회로 삼기로 합니다.
산야에서 시작된 가을이 어느덧 도심의 가로에도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한 우리의 위축을 상쇄라도 시켜주려는 듯 버즘나무와 은행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와 같은 가로수들이 다투어 노랑과 빨강의 배색으로 따스한 느낌을 발산해 주고 있습니다.
올림픽공원이란 목적지가 없더라도 어디로든 걸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로 적당한 양의 낙엽도 보도 위에 뒹글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파란 바람이 자꾸만 어제 보았던 천마산의 풍경을 실어오고 은행잎에 부서지는 노란 햇살이 먼 기억의 반추를 부추깁니다.
사람들의 보폭도 어제에 비해 한결 넓어졌습니다.
자라목으로 땅을 향했던 눈이 오늘은 하늘과 나뭇가지에 머뭅니다.
그들의 시선 끝에서 그리움이란 단어가 뭉게뭉게 피어납니다.
올림픽공원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평화의 문"입니다.
이를 설계한 건축가는 조형물의 위쪽 양 날개에 고구려 벽화에 나와 있는 주작, 현무, 청룡, 백호의 사신(四神)을 그려넣었고 전체적인 모습은 이들 사신이 사지를 펴고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합니다.
중앙광장을 지나 뒤편으로 돌아가면 연못 하나가 나타납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몇몇이 자전거 타기 보다는 사진 찍기에 더 열중입니다.
건너편이 몽촌토성(夢村土城) 유허지(遺墟地)인데 이 연못은 몽촌토성을 축조할 때 외침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파 놓은 것이라 합니다.
이런 것을 해자(垓子)라 부릅니다.
물가에서는 청둥오리인 듯한 녀석들 셋이 한가로이 유영하고 있습니다.
요즘 야생 조수들은 사람들한테 너무 길들여진 탓인지 웬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어도 도통 겁을 먹고 줄행랑을 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이 녀석들은 삼십육계는 커녕 눈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목욕하는 여유까지 내보입니다.
꽃뱀도 아닌 것이 혹시 나를 유혹하고자 일부러 그러는 건가?
묵내뢰(默內雷)란 말이 생각납니다.
"겉은 잠잠하나 속에선 뇌성벽력이 치고 있다' 는 의미인데 저 녀석들에 비유하면 "오리는 수면 위에서 여유로워 보이지만 수면 밑에서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쉼없이 발을 놀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네요.
사람이나 사물은 겉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는 교훈이 내포되어 있는 경구로 평소 좋아하는 말이지만 대인관계에서 실제로 활용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호숫가 물억새와 갈대는 이미 끝물입니다.
호수 한 편에 있는 주차장의 마가목은 잎도 열매도 모두 붉어서 멀리서 보면 둘이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서 찍어 보면 빨간 열매들이 군데군데 무더기로 매달려 있는 게 확연히 보입니다.
이런 풍성한 결실 앞에서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 난 또 무드 없게도 얘가 마가목인지 당마가목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 또 깃꼴겹잎의 작은잎 갯수를 셋다는 거 아닙니까?
그 옆에 있는 칠엽수도 질세라 잎마다 붉은 잎을 잔뜩 매단 채 개선장군처럼 하늘을 찌르고 서 있습니다.
몽촌토성 산책로 안으로 들어섭니다.
언덕에 오르니 기다렸다는 듯이 가죽나무가 시야에 뛰어 듭니다.
성질 급한 가죽나무는 잎을 모두 떨구고 저렇게 하얀 열매만 잔뜩 매달고 단풍인 척 하고 있은 지가 오래입니다.
가죽나무와 그 밑에 있는 억새들의 한가한 모습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 나온 근처의 직장인 듯한 사람들의 잰 발걸음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산국도 이제 여름 꽃들이 먼저 간 길을 뒤따를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저만치에 모여 있는 조릿대가 후일 산국도 한 때는 수줍게 가을을 노래했던 꽃이었음을 증언해 줄 겁니다.
까치와 비둘기를 싫어 하는 사람, 특히 여자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가끔은 녀석들이 그런 사람들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녀석도 거의 30cm 정도까지 접근해서야 황급히 날개짓을 하면서 하늘로 날아 올랐습니다.
"야, 임마 너무 자만하지 마. 아직 먹어본 적은 없지만 나도 비둘기 고기가 별미라는 말 들어본 사람이야."
몽촌토성 산책로 언덕에서 내려다 본 해자 주변의 모습이 정말 가을답습니다.
느티나무 단풍은 제대로만 든다면 이렇게 단풍나무 못지 않게 붉고 멋있습니다.
자귀나무는 가죽나무만큼이나 성질이 급한 녀석인가 봅니다.
잎은 모두 떨구고 꽁 꼬투리 같이 생긴 열매만 주렁주렁 매달고 있습니다.
토성 잔디밭 한 가운데 있는 보호수는 수령 530년, 수고 17.5m, 둘레 6m나 되는 은행나무입니다.
아직 단풍이 한참 진행중이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주변 수종들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하늘에 반원을 그리고 있는 가죽나무의 포즈가 기가 막혀 한 컷 더 할애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근처에 있는 벚나무가 시샘을 하기에 이 녀석에게도 기회를 주었습니다.
두 그루의 양버들이 거의 좌우대칭을 이루며 마천루 흉내를 내며 서 있습니다.
둘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겨울을 날 겁니다.
산수유와 감나무는 잎이 모두 떨어진 후 열매만 매달려 있는 모습이 더 환상적입니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은 다른 나무들과 보조를 맞추기라도 하려는 양 그 멋진 광경 연출을 미루고 있습니다.
서양산딸나무의 붉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단풍은 일교차가 크고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곱다고 하던데 공원에서는 산에서처럼 나무들이 밀집되어 자라고 있지 않기에 이렇게 화려한가 봅니다.
하도 붉은 단풍들이 많다 보니 자작나무의 노란 단풍은 상대적으로 열세입니다.
그러게 사람이든 나무든 줄을 잘 서야 하나 봅니다.
전생에 뭘 그리 잘못했는지 물박달나무의 살갗은 일년 내내 이렇게 터져 있습니다.
노랑말채나무는 줄기가 노란색이라서 노랑말채나무인데 흰말채나무는 이렇게 줄기가 붉은데도 붉은말채나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꽃은 흰색인데 말채나무의 꽃도 흰색이니 꽃 색 차이를 반영한 작명은 아닙니다.
처음에 이 점이 의아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말채나무의 열매는 검은색인데 반해 흰말채나무의 열매는 흰색이더군요.
노랑말채나무의 열매도 흰색인 점을 감안하면 말채나무의 작명은 기준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야생화 동산에는 때 아니게 초봄에 피는 조개나물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제비꽃이나 개나리, 철쭉, 명자꽃 등등이 제철을 구분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피는 건 봤지만 조개나물마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개화시가로 보면 조개나물보다 한참 동생들이지만 물레나물도,
층꽃나무도
가막살나무도 조개나물의 치매기에 동조합니다.
청단풍은 가을만 되면 제 이름에 대해 회의를 느낄 겁니다.
화살나무는 노란색보다 붉은색 단풍이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더 어울립니다.
두 여인이 소설의 삽화처럼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허공을 떠돌던 가을이 잠시 그녀들 주변에 머물러 줍니다.
둘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와 내 친구를 저 자리에 대치시켜 놓는다면 우리는 분명히 술 얘기를 나누고 있을 겁니다.
가을을 남성의 계절이라고 한 건 단순히 봄이란 계절을 여성에게 내준 것에 대한 형평 고려 차원의 대접은 혹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원에 가보면 봄이든 가을이든 모두 여성들이 접수하고 있습니다. ^^
튜울립나무는 붉은색인지 갈색인지 어정쩡한 색으로 단풍이 들었지만 색에 관계없이 멋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공원은 전체적으로 호감이 갑니다.
물론 계절 탓도 있긴 하겠지만 적당한 높낮이의 지형이 보행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인위적인 공간과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안배한 점도 단조로움을 불식시키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수종도, 수목원에 비할 수야 없지만, 그만하면 다양한 편이고 야생화 공원에 심어 놓은 꽃들도 구색 갖추기라는 느낌을 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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