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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여행/갤러리 - 풍경·여행기

봉선사와 국립수목원의 만추 (1)

by 심자한2 2007. 11. 10.

 

국립수목원이 가까이에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 건 올해부터입니다.

그전에야 산보 삼아서라도 들리지 않았던 곳인데 올초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부터는 우리 집 정원 드나들 듯합니다.

처음에는 블로그에 올릴 소재를 얻기 위해 발걸음을 했었는데 근자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거나 다소 마음에 주름이 잡히는 날에는 즐겨 찾곤 합니다.

수목원은 갈 때마다 내 의도에 관계없이 심심풀이나 위안거리 이상의 선물을 덤으로 얹어주곤 합니다.

허전함 마음으로 가면 수목원은 무언가를 잔뜩 채워줍니다.

그 무언가는 부피는 크나 질량이 없기에 마음을 채우면서도 무게를 더하지는 않습니다.

꽉 찬 마음으로 갈 때면 수목원은 그 숨막히는 공간에 여백을 만들어놓습니다.

덜어냈지만 마음은 오히려 풍요로워집니다.

 

그 수목원을 오늘 점심 무렵 또 찾았습니다.

편도 1차선의 도로 양편에 시립해 있는 키 큰 노거수들은 미리부터 수목원의 정취를 예감케 합니다.

차창으로 투과되는 햇살과 덜컹거리는 버스의 진동에 오수 욕구를 느낄 무렵 버스는 봉선사 입구에 당도합니다.

집에서 거리는 멀지 않아도 이곳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두 정거장을 더 가야 수목원입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수목원 쪽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칩니다.

운행간격이 30분 이상이나 되는 노선임을 알기에 무척 아쉬웠지만 마음 가라앉히고 봉선사나 잠깐 들려보기로 합니다.

 

봉선사 진입로입니다.

봉선사에서는 자작나무가 불교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절 입구에 이 나무를 많이 심어놓았습니다.

거침없이 옆으로 벋은 참나무 종류인 듯한 나무가지의 위세에 눌려 길 왼쪽에 도열해 있는 자작나무의 존재가 작아만 보입니다.

 

절 안에는 남양주시 보호수가 한 그루 있습니다.

수고 20m, 둘레 12m의 이 느티나무는 50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파란 하늘에 거미줄 같이 펼쳐진 잔 가지들이 이 나무가 아직은 건재함을 웅변합니다.

노회한 고승의 고개마저 숙이게 만들 만큼의 위용이지만 느티나무는 말없이 하늘과 염화시중의 미소만 교환하고 있습니다.

저 잔 가지 수만큼의 번뇌는 단지 바라보는 인간의 몫일 뿐입니다.

 

본청 앞 건물 처마에 달린 풍경이 지나는 바람에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풍경 소리가 아무리 그윽하기로서니 바람의 시샘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저 붕어는 어쩌다가 물을 떠나 저렇게 공중에 매달려 있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붕어는 눈을 뜨고 잠을 자니 그렇게 밤을 새워 절을 지켜달라는 소망이 저 붕어에게 물 대신 파란 하늘을 삶의 터전으로 삼게 했다네요.

비록 쇳조각에 불과하지만 저 붕어에게 물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봉선사에서는 수능 고득점 기원 기도가 한창입니다.

입구 오른쪽의 자작나무는 학부모들의 염원을 닮았고 왼쪽의 단풍나무는 데이트를 위해 이곳을 찾는 연인들의 사랑을 닮은 것처럼 보입니다.

 

자작나무의 열매도 제 역할을 마치고 낙엽 따라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길은 누군가와의 동행을 권유합니다.

혼자 걷는 일상이 청승 맞아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명분에 그럴 듯한 포장만 한다면 그다지 외롭지는 않습니다. 

 

봉선사를 나와 버스를 기다리면서 도로 옆 개천을 내려다 봅니다.

많은 수의 낙엽들이 물살에 실려 흐르고 있는데 덩치가 큰 녀석들은 돌부리에 쉽게 걸리고 크기가 작은 녀석들은 장애물을 잘도 피해 갑니다.

큰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나를 낮춰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살다 보면 참 많은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봉선사를 떠나 국립수목원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 있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하천의 가을은 물 속에 비친 그림자보다 더 깊습니다.

 

낙우송에서는 생사가 공존합니다.

한편으로는 갈색의 단풍이 깊어가고 한편으로는 잎눈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신구세대의 교체는 자연의 지엄한 명령이기에 아무런 서러움도 자만심도 없습니다.

그저 순리에 따를 뿐입니다.

 

곧 시간의 뒤편으로 사라질 계절의 마지막 모습을 망막에 새기려는 사람들이 수목원의 가을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단풍보다 더 붉을 겁니다.

  

가을은 인생을 아는 자의 것입니다.

저물어 가는 가을의 모습에 자신을 비춰볼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만추의 의미를 알 겁니다.

 

메타세콰이어는 제 키보다 훨씬 높은 하늘의 지위를 감히 넘봅니다.

  

양치식물원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낙엽이 지상을 완전히 덮었습니다.

낙엽에 완전히 묻힌 사진 아래쪽의 작은 못은 이미 다음 계절을 잉태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양측백과

 

독일가문비는 변화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독야청청을 전략으로 채택한 이들의 속내가 궁금합니다.

 

내려앉은 나뭇잎처럼 동그랗게 모여 있는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그대로 단풍입니다.

 

완전히 옷을 벗어던진 화살나무가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을 확연히 드러내 보입니다.

한 겨울 가지에 부는 찬바람도 어쩌면 저 날개를 비켜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나무과 식물이면서도 낙엽이 지기에 낙엽송으로 불리는 일본잎갈나무는 몇 개 되지 않는 열매를 끝내 놓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모체를 떠난 은행나무의 노란 추억들은 전설이 되어 한 동안 땅과 교감을 나눌 것입니다.

 

아직 정산을 마치지 못한 중국굴피나무나

 

이미 결산을 마친 비술나무나 모두 저 우람한 덩치로 의연히 동장군의 시련을 견뎌낼 겁니다.

 

수생식물원도 만추를 온 몸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못에는 이제 수련 잎보다 낙엽이 더 많습니다.

나뭇가지 그림자에 걸린 나뭇잎들이 다시 한 번 나무의 영광을 재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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