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단상

 

 

트리폴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미주라타까지는 약 300킬로미터쯤 될 것이다.

편도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뜬금없이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 동안 이 길을 오고 갔을까 하는 의문이 인다.

더러는 유람 차 드라이브를 즐겼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무 차 어쩔수없이 원행을 했을 것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자체는 단순한 여행 이미지에 불과하겠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보다 구체적일 것이다.

목적에 따라 여행의 표정은 천차만별이리라.

다양한 목적이 여행자들 표정의 경직도를 결정하고 그들이 그리는 청사진의 해상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오늘로써 연속 4일째 이 길을 왕복하는 내 경직도와 해상도가 문득 궁금해진다.

눈금은 모르긴 몰라도 한참 부정적인 수치 쪽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주라타 행이 회수를 거듭할수록 바늘이 점차 긍정적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리비아에서 일상의 기상도는 거의 매일 "안개"이다.

그러니 매일 매앨의 행보가 가벼운 날 만나기란 천재일우의 확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노력 없이는 결코 걷히지 않는 그런 농무.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할 길을 찾아내는 건 순전히 내 노력의 몫이다.

 

난제에 대한 번민으로 가득 찼던 뇌리에 지금과 같은 색다른 상념이 자리할 공간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최근 잦았던 미주라타 행의 목적이 해결 기미를 보이기 때문이리라.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이 나라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바람직한 지혜를 생각해 본다.

저 앞 어딘가에 종착역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경험칙을 믿고 어려운 현재의 상태에 지나치게

부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물론 부심하지 않는다는 걸 포기나 방임으로 해석하는 운명론적 입장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노력 정도에 따라 도착시점이 달라질 뿐더러 결과의 질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 좌석에 앉아 있는 현지인 두 명이 아랍 방송과 이탈리아 방송을 번갈아 듣더니

지겨웠는지 이제는 내가 넣어 놓은 시디로 모드를 바꾼다.

미주라타까지의 거리가 결코 짧지 않다는 게 이런 식으로도 증명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녀석들은 마리아의 Shiny Day를 중도에 끊고 마야의 진달래꽃을 선택하더니 그 노래는 끝까지

다 듣는다.

가사의 의미는 몰라도 마야의 진달래꽃이 음색에 대한 자신들의 취향과 일치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라고 하는 모양이다.

 

녀석들은 평소에 내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의 원천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현지인들 다루기가 그다지 녹록치 않은 것이다.

대인관계는 총체적인 리비아 환경에 대한 불만의 일부이다.

이런 불만도 따지고 보면 단순히 환경변화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에 다름 아닐지도 모른다.

가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어찌 보면 근본은 서로 동일한데도 내가 굳이 차별을 둔 것은 무의식적인 국가적 우월의식

때문이 아닌가 하는 반성도 가끔 일곤 한다.

우리 사이에 공감을 가져다 줄 공통의 음악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마음이 열리면 그 공용어가 보이리라.

마음이 열리면이 아니고 내가 마음을 열면 말이다.

이제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는 일은 그만 접어야 할 일이다.

 

감긴 눈 속에서 짙푸른 하늘과 옥빛의 지중해가 배경화면처럼 펼쳐진다.

거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 바퀴의 파열음이 음악이 되어 눈꺼풀 위에 내려 앉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