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현장에서 양고기 구이와 찌개로 저녁식사를 하고 거기서 일박했습니다.
아침 일찍 길을 트리폴리로 돌아오려 했는데 자동차 오른쪽 뒷바퀴가 완전히 주저앉아 있더군요.
지난주에 같은 위치의 바퀴가 파열되어 예비 타이어로 갈아 끼웠었는데 이것도 성치는
않은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날 현장까지 올 때 운전 중 차체에 잔잔한 진동이 느껴져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아마도 이 타이어 때문이었던 듯합니다.
내 무딘 신경은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타이어를 점검해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주 작은 구멍 정도 났으리라 가볍게 생각하고는 별 수 없이 현장 직원들 도움을
받아 발전기를 이용하여 바퀴에 바람을 채우고는 그대로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 여를 달리다 보니 갑자기 차에서 둔탁한 소리가 납니다.
이 바퀴에 문제가 생겼으리란 건 뻔한 일일 테지요.
내려서 본 타이어는 현장에서처럼 맥없이 주저앉아 있더군요.
에고 이를 어쩌나.
예비 타이어도 파열된 것밖에 없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별 수 없이 현장에 전화를 했습니다.
일단은 서로 견인차를 수배해보기로 합니다.
각자 나름대로 현채인들을 통해 연락을 취해보았으나 견인차를 구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지금이 라마단 기간인데다 이날이 금요일 휴일이었기에 아마도 오전 중에는 대부분 취침
중이라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현장에서는 자동차에 대해 곤심이 많은 직원 하나와 중기반장이 머리를 맞댄 결과
궁색하지만 현장에 있는 에어 컴푸레셔를 갖고 와서 바퀴에 바람을 넣는 걸로 1차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
현장에서 주행거리만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와야 하는 현장 직원들이 쉬는 날 생고생을
하게 되었지만 내가 자동차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다 이곳이 구난 시스템이 체계화 되어
있지 않은 리비아인지라 직원들이 수고 좀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어 컴푸레셔에 공기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데는 두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름대로 여기 저기 전화를 해보았으나 도움이 되는 데는 없었습니다.
차 안에 앉아 있자니 에어컨 바람 때문에 시원하기는 하나 긴 시간이 너무나 무료해서
인근 야산이나 좀 돌아다녀봤습니다.
주도로 주변은 온통 황무지입니다.
어쩌다 한두 채의 민가만 눈에 띌 뿐입니다.
메마른 황토흙으로 뒤덮힌 지표에는 물기라곤 전혀 없습니다.
워낙 메말라 비가 온다한들 웬만한 강우량이 아닌 바에야 순식간에 땅속으로 스며들어
버릴 겁니다.
이런 데서 살아가고 있는 저 식물들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저들이야 이동성이 없으니 설사 의식이란 걸 갖고 있다 해도 애시당초 자신들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식물들을 동경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비관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들이 있는 곳이 세상 전부이니 그저 주어진 환경에 어떡하든 적응해서 살아남는
것만이 지상목표일 겁니다.
저렇게 듬성듬상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도 모두 상생을 위한 전략이겠지요.
한곳에 이르러 묘한 자국 하나를 발견합니다.
첫눈에 뱀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이 황량한 벌판에 동물이 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아무리 극한상황이라 해도
그곳에 적응한 동식물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막에도 뱀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니 황무지엔들 뱀이 없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이들이 무얼 먹고 살아갈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니 여전히 신기하기만 합니다.
위 사진으로 봐서 이게 뱀의 흔적이 맞다면 몸집이 상당히 큰 뱀인 것 같네요.
뱀은 두 마리인 것도 같고 한 마리인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근처를 지나던 양치기가 심심해서 막대기로 그린 낙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땅에 박힌 흔적들 중 하나를 보니 또 다시 뱀이 맞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위 사진 속의 흔적은 아마도 뱀의 배 부분이 찍힌 자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뱀은 이 자리를 지나가지 않고 그냥 뱃자국만 찍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몸체를 그대로 들어올렸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자국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
뭐 혼자 이런 저런 상상을 하면서 시간 보내다가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정수리에 꽂히는 햇살이 마치 비수 같았거든요.
땅바닥 곳곳에 작은 구멍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곳에 서식하는 동물이 꽤 된다는 증거일 겁니다.
다소 높이가 있는 둔덕에 있는 구멍은 상당히 큰 편입니다.
언젠가 야생화 탐사를 한답시고 깊은 황무지 속을 헤매다가 멀리서 사막여우를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 굴이라면 그런 여우가 충분히 드나들 수 있을 겁니다.
영리하게도 풀이 엄폐물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입구를 마련해놓은 녀석도
있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습니다.
그만 차로 돌아왔습니다.
에어컨 바람으로 몸에 밴 땀과 열기를 식히고 음악으로 마음이나 식히면서
한 동안을 기다리자니 현장 직원 둘이 도요타 힐럭스에 에어 컴프레셔를 싣고
나타납니다.
나야 기계에도 까막눈이라 에어 컴프레셔가 그렇게 큰 건지 몰랐습니다.
그걸 지게차로 싣는데만도 꽤 시간이 걸렸겠구나 싶더군요.
두 사람은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타이어에 바람을 넣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바람을 넣어도 타이어가 부풀지를 않습니다.
손을 넣어 타이어 안쪽을 더듬어보던 직원들이 타이어에서 호스를 제거합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안쪽에 커다란 파열이 감지되었던 겁니다.
에효, 이제는 살았다 싶었는데 또 다시 난감해졌습니다.
그런데 두 직원은 마치 그럴 가능성도 있을 거라 예상이라도 했었다는 듯이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도요타 짐칸 밑에 있는 예비 타이어를 꺼내 파열된 타이어와 교체하기
시작하더군요.
규격은 서로 다르지만 다행히도 볼트 구멍이 5개라는 점이 일치했고 볼트와 휠의 구멍
위치가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피러스에 힐럭스 타이어를 장착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바퀴가 돌지 않지 뭡니까?
힐럭스 휠의 직경이 오피러스보다 작아서 제동장치가 힐럭스 휠에 닿은 겁니다.
일행은 이 제동장치를 일시적으로 제거한 후 다시 타이어를 장착하니 이번엔 타이어가
제대로 돌았습니다.
제동장치는 나중에 타이어를 오피러스 정품으로 교체할 때 다시 제자리에 설치하면 됩니다.
다소 어색하기는 했지만 차는 그런대로 주행하는데 이상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집에까지 무사히 왔지요.
처음에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했다 싶었는데 현장 직원들의 아낌 없는 배려로
문제가 깨끗이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타이어와 브레이크는 돈을 아끼지 말고 제때 교체해줘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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