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일이 좀 있어 산에 가지 못하고 대신 잠실에 있는 석촌호수에 가보기로 한다.
작년에 그곳에서 여러가지 벚나무 종류를 보았기에 그거나 좀 살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벚나무는 모두 꽃이 지고 잎만 무성하게 달고 있었다.
뭐, 꼭 벚나무만 봐야 하는 건 아니니 그냥 호수나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한다.
화단에 있는 서양수수꽃다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녀석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수수꽃다리와 서양수수꽃다리를 아직 확연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토종인 수수꽃다리는 서양수수꽃다리에 비해 꽃 크기도 꽃차례 크기도 모두 작다고 하는데 아직 제대로 된 수수꽃다리를 보지 못해서 확인은 못해 본 상태이다.
호수 안에 있는 롯데월드의 놀이시설과 건너편 아파트가 봄날치고는 꽤나 강렬한 햇살이 부담스러웠는지 물에 제 몸을 헹구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자이로드롭에 걸터앉은 사람들이 떨어지기도 전에 불안한 마음을 고함으로 해소시키고 있는 중이다.
덥다 싶을 정도로 기온이 높지만 그래봐야 그 기온이 젊은이들의 열기만 하랴.
산책로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손을 꼭 잡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노부부.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연신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못하는 젊은 커플.
와이셔츠 차림에 구두를 신고 동료인 듯한 사람과 무언가 열변을 토하고 있는 직장인.
마스크를 쓰고 속보에 열중인 여자들.
그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호수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이 된다.
산책로 옆에 쌓아놓은 돌틈에서 낯익은 녀석 하나를 발견한다.
꽃받이다.
올해 만나기는 처음이다.
그 동안 꽃마리만 눈에 띄어 꽃마리만 보면 혹시 꽃받이가 아닌가 눈여겨 보곤 했는데 오늘 드디어 그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둘은 전초 모습도, 꽃도 비슷하게 생겼지만 꽃마리는 꽃대가 또르르 말려 있다가 꽃이 피면서 점차 펴지는데 반해 꽃받이는 잎겨드랑이마다 꽃이 하나씩 피기 때문에 구분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꽃을 자세히 보면 꽃마리는 꽃 가운데 부분에 노란빛이 도는데 꽃받이는 꽃 전체가 하늘색이라는 차이점도 있다.
꽃마리는 꽃대의 특성이 이름에 그대로 적용되어 있는데 원래 "꽃말이"였다가 나중에 "꽃마리"가 되었다.
그런데 꽃받이는 "꽃바지"라고도 하기는 하나 "꽃받이"가 정식 명칭이다.
둘 간의 형평이 맞지 않는데 우리나라의 꽃이나 나무의 이름에 대해 굳이 형평 문제를 논한다면 얼마든지 지적할 사항이 많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꽃이나 나무의 이름 통일작업에 손을 댈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쌓아놓은 돌틈에서 자라고 있는 개망초처럼 생긴 녀석이 눈에 든다.
지금 핀 것으로 봐서 틀림없이 봄망초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서 확인해 보니 내 생각이 맞았다.
봄망초는 줄기 속이 비어 있는데 누군가가 벌써 줄기를 잘라 그 사실을 확인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꽃은 괭이밥인데 줄기가 꼿꼿이 서 있는 녀석은 바로 선괭이밥이다.
바위를 배경으로 한 채 서 있었고 주변에 잡풀들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동정해낼 수 있어서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니 녀석처럼 서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면 대체로 꽃이 제대로 나오면 줄기와 잎이 흐릿하고 그렇다고 줄기나 잎에 촛점을 맞추면 꽃이 흐릿하게 나오는 게 일반적 현상인데 오늘은 햇살이 좋아서인지 꽃도, 잎도, 줄기도 그런대로 잘 나와주었다.
호수 끝 쪽이 다가오자 마음이 바뀌었다.
호수 한 바퀴 돌아봐야 특별한 식물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야 뭐 운동이나 산책을 목적으로 이곳을 방문한 게 아니니 그만 장소를 옮기기로 한다.
근처에 있는 올림픽공원까지 걷기로 한다.
날이 더우니 잠바를 걸치고 온 게 자꾸 후회가 된다.
천천히 걸으면서 길가 화단을 살펴보지만 심어져 있는 회양목 때문에 다른 식물들은 관찰되지 않는다.
올림픽공원에도 석촌호수에서와 마찬가지로 산책이나 운동을 위해 방문한 사람이 많았다.
오늘따라 왜 이리 연인들이 많은 건지, 사진 찍는데 기다리기도 하고 피해 가기도 하는 일이 잦았다. ㅠㅠ
공원에서 몽촌토성으로 가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잔디밭에 심어져 있는 꽃사과나무한테로 갔다.
일단 흰색인지 연분홍색인지부터 찍은 후에 옆 나무에서 붉은색 꽃을 찍는데 붉은색 꽃은 꽃잎의 질감이 좀 달라 보이고 꽃받침을 비교해 보니 흰색의 꽃은 꽃받침이 살구나무 꽃처럼 완전히 뒤로 젖혀져 있는데 반해 붉은색 꽃은 약간만 들려 있는 정도였다.
붉은색 꽃을 단 나무는 아마도 원예종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 보니 붉은색 겹꽃을 매달고 있는 것고 있고 흰색 겹꽃이 달린 꽃사과도 있었다.
붉은색 겹꽃은 꽃잎이 여러 층 겹쳐 있는 일반적인 겹꽃이었는데 흰색의 겹꽃은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꽃자루 4개가 나란히 나와 하나의 꽃받침과 만나고 홑꽃 네 송이가 그 하나의 꽃받침을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런 것도 겹꽃이라고 해야 하나...
개량하면서 누군가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을 텐데 이 정도면 기형 수준이 아닌가?
공원에 많이 식재되어 있는 은행나무들도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인데 길쭉한 수꽃차례를 매달고 있는 수나무는 많은데 암나무는 아무리 봐도 없다.
수꽃차례를 매달고 있지 않은 은행나무가 간간이 보이던데 그것이 암나무였을 텐데 암꽃이 작아서 내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몽촌토성 산책로 언덕 위에 오르니 가장 먼저 흰 꽃을 잔뜩 피우고 있는 나무 하나가 눈에 든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다행히도 콩배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름표가 없었다면 집에 와서 사진과 자료를 비교해가면서 동정해야 할 일이 까마득했을 텐데 그런 수고를 덜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콩배나무는 열매 껍질이 배 껍질처럼 생겼고 크기가 콩알만하다고 해서 콩배나무라 한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서 있는데 이 나무도 꽃을 잔뜩 매달고 있다.
기다란 수꽃차례가 부는 바람에 날려 이리 저리 쓸려다니는 모습이 장관이다.
낮은 가지에 있는 꽃차례를 살펴 보니 꽃밥이 이미 대부분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할 일을 마쳤으니 저 꽃차례들도 조만간 가지를 떠나겠지.
돌아다니다 보니 이곳에는 상수리나무와 은행나무, 단풍나무가 유난히 많다.
한 곳에 가니 자작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는데 수피가 아무래도 자작나무 같지가 않아서 일단 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정체를 밝혀보기로 한다.
수꽃차례는 아래로 늘어지고 암꽃차례는 위로 솟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수피가 하얗고 얇게 벗겨지는 나무에는 자작나무, 사스레나무, 거제수나무가 있는데 자작나무의 열매는 아래로 늘어지고 나머지 둘의 열매는 곧게 선다.
이런 구분법을 이전에 외웠었는데 까먹어버렸다.
기억력만 좋았어도 굳이 힘들게 사진찍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사진 찍으면서 지난해의 열매 사진도 찍었는데 아래로 늘어져 있으니 이 나무는 당연히 자작나무이다.
칠엽수도 꽃대를 올리고 개화 준비에 착수했다.
조팝나무도 가지마다 하얀 꽃송이들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부른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다.
나무들마다 서둘러 푸른 잎으로 치장을 하는 걸 보니 봄도 깊어가고 있나보다.
삭막했던 풍경이 이제야 서서히 싱그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봄은 어딘가에 숨어서 늑장을 부리다가 날이 더워지니 여름에게 자리를 뺏길까봐 위기감을 느껴 일거에 황급하게 몰려 나온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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