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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러리-풀꽃나무

식물 탐사 일기 - 무명산 (동네 산)

by 심자한2 2008. 4. 20.

 

오늘의 목적지도 산은 산이지만 멀거나 높은 산은 아니다.

그냥 동네에 있는 산인데 이전에 우연히 딱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도 그 산 이름을 부르는 걸 들은 적이 없으니 그냥 무명산이라고 해야겠다.

저수지 입구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을 들머리로 삼기로 한다.

 

막 산으로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사초 종류 하나가 보인다.

에고, 시작부터 이게 웬 시련이란 말인가.

파악해야 할 풀꽃과 나무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어서 사초 종류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형편이다.

다른 잡풀들과 섞여 있으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주변에 아무도 거느리지 않고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혼자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늘사초쯤으로 보이는데 일단 사진만 찍어두고 아직도 동정은 하지 못한 상태이다.

언제나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초에도 손을 대려나, 까마득하기만 하다.

 

산 초입에서부터 제비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민둥뫼제비꽃, 서울제비꽃, 제비꽃, 호제비꽃 등등이 나타나는데 볼 때마다 긴가민가 한다.

작년에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올해는 제비꽃 종류에 대한 공부 대충 졸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올해도 작년이나 대차가 없다.

볼 때마다 선뜻 이름과 연결되지가 않는다.

야생화 공부 한 10년 정도 하면 그때쯤 제비꽃은 졸업할 수 있으려나...

이 산에서는 다른 산에서 흔한 남산제비꽃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제비꽃도 종류별로 사는 환경이 서로 다른 건가, 아니면 유독 이 산에서만은 남산제비꽃이 다른 제비꽃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된 건가?

 

 

바위만 나타나면 어김없이 매화말발도리가 혹은 위태롭게, 혹은 자랑스러운 몸짓으로 서 있다.

사진 속 녀석은 키를 한껏 늘여서 아래에 있는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어떤 연유로 매화란 말이 들어갔을까?

꽃이 매화만큼이나 미려해서 그런 걸까?

바위 위에서 주로 서식하니 바위말발도리라 부르면 좋을 텐데 바위말발도리라는 종은 별도로 있으며 평양 근처의 대성산에서 자란다 한다.

아마도 바위말발도리가 먼저 존재했었고 그 이후에 매화말발도리가 새로운 종으로 추가되었나 보다.

그래서 매화란 말을 부여받게 되었으니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초봄에 홍일점이 아닌 황일점으로 산에 노란 점들을 흩뿌려놓았던 생강나무도 화려했던 향연을 접고 잎을 내고 있다.

참나무 종류들도 기다란 꽃차례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이 산에도 각시붓꽃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단신으로 거목 밑에 외롭게 서 있기도 하고 무리지어 모여서 도란도란 방담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혼자든 여럿이든 그들이 노래하는 건 봄이다.

보고만 있어도 그들의 체취에서 봄이 느껴진다.

난장이붓꽃이라고도 있다던데 이 녀석은 꽃이 필 때 꽃대의 길이가 잎의 길이보다 더 길다 한다.

그래서 각시붓꽃만 만나면 눈여겨보곤 하는데 이제까지 한 번도 내 눈에 띈 적이 없다.

 

이 산도 인근 주민들이 산책이나 운동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리라.

여인 둘이 대화를 나누면서 한 분은 연신 나무에 등을 부딪치고 한 분은 계속 양 손바닥을 마주친다.

그냥 지나치기도 좀 그렇고 해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상대는 간단히 "네."라고 대답하고는 하던 행동과 대화를 계속한다.

언젠가 등산하면서 쓸 데 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본 적이 있다.

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때 상대가 "네."라고 대답하면 내 인사를 받기만 한 거 아닌가?

같이 "안녕하세요?" 내지는 "수고하십니다."라고 해야 서로 인사를 나눈 셈이 되지 않나?

어떤 사람은 내 인사에 아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그 이후로 한 번은 나도 이제 산에서 인사 좀 그만 하고 그냥 말없이 지나쳐보자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떤 사람과 막 스쳐 지나는데 상대편에서 먼저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나는 그 사람이 인사를 하리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엉겁결에 "네."하고 만다.

이래서 사람은 역지사지의 사고가 필요한가 보다. ㅠㅠㅠ

 

이곳에서도 진달래는 이미 모습을 감추었다.

나무에는 꽃 대신 잎만 무성하다.

저만치에 아직 지지 않은 진달래가 있기에 다가가 보니 철쭉이었다.

이런, 철쭉이 벌써 나오는구나.

진달래는 꽃이 먼저 피지만 철쭉은 잎이 먼저 난 후에 꽃이 피고 진달래보다 개화 시기가 늦다.

잎 모양을 보면서 둘의 구분법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철쭉은 잎이 달걀형이고 진달래는 넓은 피침형 ~ 거꾸로 된 피침형이다.

잎 모양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잎만으로도 둘의 구분이 가능하다.

산철쭉의 잎도 진달래와 유사한데 산철쭉은 거꾸로 된 피침형 ~ 긴 타원형이다. (아래 사진은 철쭉, 산철쭉, 진달래 순)

철쭉 꽃자루를 손으로 만져본다.

역시 끈적거린다.

이것도 진달래와 다른 점이다.

 

 

 

삼거리가 나온다.

어차피 모르는 길이니 아무 길이나 택한다.

우측 길로 들어서 걷는데 계속 내리막이다.

아차, 이거 하산 길인가보다.

이런, 이러면 산행이 너무 짧은데, 라는 후회가 들 무렵 길은 잘 관리된 묘지로 접어든다.

그곳으로 내려서니 묘지에는 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한 판 굿인지, 아니면 자신들만의 축제인지 제비꽃들의 잔치가 요란하다.

갑자기 시선 끝에 조개나물이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된다.

자세히 보니 주변에 키 작은 큰구슬붕이도 있다.

둘 다 작년에 보았던 애들이라 이름이 쉽게 떠오른다.

이곳은 자주색만 허용되는 공간인가?

제비꽃도, 큰구슬붕이도, 조개나물도 모두 꽃이 자주색이다.

 

하산을 완료하고 나서 보니 저수지 끝 쪽이다.

저수지변 도로 대신 산을 이용해 저수지 끝까지 간 셈이 되었다.

인도도 없는 도로를 걷기가 싫어 이번에는 저수지 반대편 산길을 이용하기로 한다.

날이 많이 풀리니 조사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포인트마다 빈 데가 없다.

설렁설렁 걷다가 낚시꾼이 없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편다.

준비해 간 점심을 펴놓고는 우선 막걸리부터 한 잔 쭉 들이킨다.

점심 반 쯤 먹다가 옆으로 밀어두고 벌러덩 눕는다.

아직은 녹음이란 용어가 어색한 시기이니만큼 나무들이 매단 잎은 성기다.

그 틈새를 비집고 햇살이 자꾸만 쏟아져 내린다.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일 때마다 햇살이 명멸하는 게 싫어서 배낭을 세워놓고 그 그늘 밑으로 얼굴을 위치시키니 좀 낫다.

이런 그러고 보니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게 그늘을 제공해준 이 나무들의 이름조차 안 불러줬네.

하나는 신나무이고 하나는 떡갈나무이거나 신갈나무로 보였다.

신나무 잎은 다소 특이해서 얼른 구분이 간다.

뒤늦게나마 이름을 불러주니 그게 고마웠던지 나무들은 햇살의 침입을 잠시 차단해주는 보답의 센스를 보여준다.

 

두 나무의 가지가 고차하면서 사각형의 공간을 여럿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를 스크린 삼아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등장한다.

잎에는 깃털 하나를 물고 있다.

집을 짓기 위한 것일 텐데 이곳을 보금자리로 정하려 함인지, 아니면 근처에서 이미 공사 중인데 나를 경계하여 바로 현장으로 가지 않고 잠시 뜸을 들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날아갈 생각을 안 하기에 누운 채로 디카를 꺼내 든다.

줌으로 당겨보니 새의 모습이 그런대로 액정 모니터에 잡힌다.

새들이 아무리 겁을 상실했더라도 대개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들 도망가던데 이 녀석은 그럴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가며 자세를 바꿔주기까지 한다.

혹시 전직이 모델이었던 건 아닌가.

잠시 한 눈을 팔다 보니 그새 녀석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모델은 준수한데 찍사 실력이 형편없다는 걸 빨리도 눈치챘나보다.

 

남은 점심을 마저 먹고 막걸리도 다 마신 후 그대로 쓰러져 한숨 자고 싶었으나 몸이 노곤한데도 졸립지가 않다.

그래도 잠을 좀 청해볼까 망설이고 있는데 저쪽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릴을 들고 내 쪽으로 온다.

내 앞에서 릴을 던지며 알짱거리는데 신경이 쓰인다.

그 사람은 내 풍경 속으로 틈입하기도 했지만 내 휴식과 상념 속으로도 뛰어든 셈이다.

도저히 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의례적으로 조과를 물어본다.

아침에 두어 수 했다고 하는 걸로 봐서 낮 동안에는 붕어 얼굴 전혀 구경해보지 못한 모양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현호색도 몇 개 보이고 나보다도 더 키가 작은 버드나무 종류가 열매를 맺고 벌써부터 하얀 솜털을 날리기 시작하고 있다.

열매 두 개가 마주나 있는데도 그게 무언지 눈치를 못 챘다.

나중에 사진 찍은 잎과 자료를 비교해보니 키버들이다.

키버들은 꽃이 마주나기고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주난 열매를 보고 그걸 눈치 못 챘던 것이다.

또 한 편에서는 회잎나무가 아주 작은 백록색 꽃을 피우고 있다.

꽃에만 신경 쓰느라 가지를 관찰해보지 않았으나 가지에 날개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니 그냥 회잎나무라 생각하고 만다.

나중에 다시 그 자리에 가게 되면 한 번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오늘 이동하는 내내 벚나무 종류만 만나면 화경에 털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봤는데 대부분 털이 있었다.

그러니 그건 산벚나무가 아니라 잔털벚나무나 털벚나무가 될 것이다.

털벚나무는 잔털벚나무와 유사하나 잎 뒤 중륵과 잎자루에 융단 같은 털이 빽빽이 나 있는 점이 다르다.

다음에는 잎도 좀 관찰해봐야겠다

털벚나무와 잔털벚나무는 이름이 생소할지 몰라도 이번에 조사해보니 전국 어느 산에나 다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통상 산에 나는 벚나무 종류이기에 산벚나무라고 통칭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른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작업해야 할 사진이 적지 않으니 차라리 잘 됐다 싶다.

아파트 화단에 핀 흰제비꽃을 구경하면서 가다가 풀밭에서 보라색이 눈에 띄여 가보니 처음 보는 풀꽃이 자라고 있었다.

땅에 바짝 엎드려 있고 입술 모양의 꽃을 피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금창초라는 것이었다.

제주도, 전남, 경남, 울릉도에 야생한다는 녀석인데 어떻게 중부 지방에 있는 우리 아파트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귀한 것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다.

 

관심만 갖는다면 가까운 곳에서도 귀한 풀꽃과 나무들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걸 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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