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5.16 (금)
저녁에 모임이 있는데 오후 들어 갑자기 나가기가 싫어졌다.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고 오후 4시 넘어서 동네 오남 중학교 뒤편 풀밭으로 식물 탐사 차 나갔다.
얼마 전에 그곳에서 본 야생화 두엇이 사진을 자세히 찍어오지 않은 탓에 동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말이 풀밭이지 사실은 묘역이다.
공동묘지인지 개인 가족 묘원인지는 모르겠으나 봉분이 꽤나 많다.
덕분에 그곳에는 초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산도 산이지만 초지에서 나는 야생 풀꽃들이 적지 않기에 이제까지 못 봤던 것 하나 혹시 만날지 모른다는 기대는 물론 품고 갔다.
초입에서는 찔레꽃들이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찔레꽃 붉게 피이는~~ 이란 노랫말이 나도 모르게 입속에서 맴돈다.
그런데 사실 찔레꽃은 붉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꽃은 흰색이나 연홍색이다.
예전부터 이 노랫말에 대해 의문을 가졌으나 최종적으로 연홍색으로 핀 찔레꽃을 보고 그런 가사가 나온 것이라 혼자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 연홍색 찔레꽃이 이곳에서 몇몇 피어 있었다.
흔치 않은 색이라 기념으로 한 장 찰칵 했다.
찔레꽃도 종류가 몇 가지 되던데 다음에는 좀 더 세세히 관찰해 봐야겠다.
양지꽃 종류도 둘이 보인다.
하나는 가락지나물이고 다른 하나는 세잎양지꽃이다.
가락지나물은 뿌리잎이 작은잎 5장으로 이루어진 손꼴겹잎이고 줄기잎은 세 장씩 모여 달리기 때문에 쉽게 구분이 된다.
문제는 세잎양지꽃인데 세잎양지꽃처럼 삼출엽인 유사종으로 뱀딸기와 민눈양지꽃이 있다.
뱀딸기는 꽃받침이 두 겹인데 겉꽃받침 잎이 안쪽 꽃받침 잎보다 더 길고 겉꽃받침 잎 끝이 얕게 3개로 갈라져 있다는 점으로, 민눈양지꽃은 작은잎은 사각상 난형인 점으로 세잎양지꽃과 구분된다.
찍어 온 사진은 확인 결과 세잎양지꽃이 맞았다.
수변에서 자라는 풀들과 사초 종류는 동정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아 어쩌다 마주쳐도 선뜻 디카에 담기가 망설여진다.
명색이 식물을 탐구한다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런 소극적 태도를 견지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오늘은 눈에 보이는 사초 종류는 모두 사진을 찍기로 마음 먹는다.
가장 먼저 골풀이 눈에 띈다.
골풀은 얇고 긴 꽃대 옆에 꽃이 피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꽃대 끝에서 옆으로 꽃이 달린다.
꽃 위쪽에 있는 것은 꽃대처럼 보이나 사실은 꽃차례의 포인 점이 재미있는 풀이다.
괭이사초라고 생각하고 사진을 찍은 것은 애괭이사초였다.
괭이사초는 1~3개의 잎처럼 생긴 포가 사방으로 퍼지며 길이도 꽃차례보다 훨씬 더 길다.
애괭이사초는 포가 없거나 하나 있는데 포의 길이가 짧아서 괭이사초와 구분이 된다.
이 구분법은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설명을 따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도감에서는 괭이사초는 포가 4~5개이고 애괭이사초는 포가 없다고 되어 있다.
자료마다 설명이 다른 경우에 난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설명을 우선으로 한다.
가지고 있는 도감은 편찬된 지 오래된 것인데 식물의 분류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뀔 텐데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국가표준식물목록은 그 변화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왕비늘사초와 쥐꼬리새풀, 기장대풀이 사진에 담겼다.
청가시덩굴도 드디어 꽃을 피웠다.
청가시덩굴은 암수딴그루인데 근처에 있는 청가시덩굴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으나 암그루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엉겅퀴와 붓꽃도 눈에 띈다.
붓꽃과 유사한 것으로 꽃창포가 있는데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붓꽃만 만나면 혹시 꽃창포가 아닌가 살펴보곤 한다.
붓꽃은 꽃대에 꽃이 2~3개씩 달리지만 꽃창포는 원줄기나 가지 끝에 하나씩만 달리는 점이 다르다.
미나리아재비는 벌써 얼매를 맺어 가고 있다.
양지 바른 곳에서는 굴풀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묘역에 제법 많은 꿀풀 대부부은 아직 개화하려면 시간 좀 걸릴 듯한 모습인데 그 중 몇몇만이 이미 꽃을 피웠다.
식물계에도 성질 급한 놈은 있기 마련인가보다.
꿀풀과 유사종으로 두메꿀풀이라고도 있던데 꿀풀은 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지지만 두메꿀풀은 가지 없이 원줄기만 있는 차이점이 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두메꿀풀의 존재를 몰랐었기에 이 부분은 확인해 보지 못했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서 풀밭을 유심히 살피는데 처음 보는 풀꽃이 하나 눈에 든다.
언뜻 제비꿀이란 이름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 찍어 온 문모초 사진을 제비꿀이 아닌가 해서 도감의 사진과 대조하면서 보았던 사진 속 제비꿀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 아직 살아 있었나 보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었는데 이렇게 쉽게 만나지다니.
문모초와 제비꿀을 만난 건 올해 쾌거 중 하나다.
둘 다 식물 모습이 초라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닌가 아니라 제비꿀을 처음 본 인상은 제비꿀에게는 미안하지만 별로 잘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꽃은 작지만 아주 단정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꽃이 엷은 녹색으로 피는 것을 긴제비꿀이라 한다.
제비꿀은 겨우살이처럼 모자라는 양분을 다른 식물로부터 얻는 반기생식물이라 한다.
이 녀석은 겨우살이처럼 다른 나무에 기생하지 않고 풀밭 땅 위에서 자라던데 어떤 방식으로 다른 식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는지 궁금하다.
이들과는 달리 숙주 식물로부터 전적으로 양분 섭취를 의존하는 식물을 전기생식물이라 하는데 새삼이 여기에 속한다.
전기생식물과 반기생식물 중 어느 것이 더 진화된 형태일까?
전기생식물은 숙주 식물이 고사하면 같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기생식물은 스스로 광합성 작용을 하므로 숙주 식물이 고사하더라도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기생식물이 더 고등한 식물이 되는 건지 궁금하다.
다음에 이곳에 다시 왔을 때는 또 어떤 풀꽃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줄지 미리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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