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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러리-풀꽃나무

식물 탐사 일기 - 광덕산

by 심자한2 2008. 5. 19.

 

08.05.17 (토)

 

아침에 눈을 뜨니 갑자기 좀 먼 산을 한 번 가보고 싶어진다.

화야산이나 다시 가볼까 했는데 기차 시간과 청평에서의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아 포기한다.

다음으로 광덕산이 떠오른다.

광덕산은 우종영씨가 쓴 '게으른 산행'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산이다.

이곳도 봄이면 각종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소갯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한 번 발걸음을 해봐야겠다 평소부터 마음먹었던 곳이기에 망설임없이 오늘의 산행 목적지로 정했다.

광덕산은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 경기도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한강수계와 한탄강수계의 분수계에 위치하여 양 하천의 지류들이 발원하는 곳이라는 설명만 보았는데도 먼 이국의 한 산을 만나러 가는 듯한 설레임이 인다.

 

광릉내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일동에 도착한다.

부리나케 터미널 매표소로 들어서서 시간표를 보니 내가 타야 할 사창리 행 버스는 7분 전에 이미 떠났다.

다음 차는 1시간 3분후에나 있다.

지방으로 원정 산행을 다니다 보면 이와 유사한 사례가 비일비재하지만 아직까지 적응은 되지 않았는지 심기가 쬐끔 불편해지려 한다.

터미널이 시내에 있기에 주변에 가볼 만한 데가 마땅히 없어 점심거리나 사고자 떡집으로 들어간다.

떡 하나를 가르키면서 이거 다냐고 물으니 별로 안 달다고 한다.

난 달기를 바라고 한 질문인데 요즘 같은 웰빙 강조 시대에 당연히 안 달기를 바랄 거라고 생각했는지 주인은 내 기대를 벗어난 답을 돌려주는데 잠시도 주저함이 없다.

서로 코드가 안 맞은 거다.

그냥 그거 하나 사고 말았는데 나중에 산에서 먹다 보니 별로 안 달지 않았다.

1시간 25분쯤 후에 버스가 도착한다.

 

가로수로 식재된 이팝나무의 하얀 꽃들 사이를 누비던 버스가 10여 분후 광덕고개로 오르는 산간도로에 들어선다.

심하게 구부러진 도로를 천천히 운행하는 버스의 흔들림에 내맡겨진 몸이 이리저리 쏠리는데 그마저 여행의 묘미로 인식되었는지 버스 기다리는 동안 구겨졌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도로 우측은 계곡이다.

울창한 나무들로 가려져 있는데도 그 깊이가 느껴진다.

산 경사면 곳곳에는 층층나무가 하얀 백설기 같은 꽃을 가지 위에 잔뜩 이고 있다.

간간히 아까시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둘은 서로 자기들이 5월의 여왕이라는 듯이 꽃의 순백도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아가씨야, 아니지 참. 아까시야, 나에게 누가 더 여왕 자격이 있는지 묻지 마라.

꽃의 색으로 보나 꽃이 핀 모습으로 보나 수형으로 보나 내 개인적 선호도의 부등호는 층층나무 쪽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는 걸 차마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느니라.

 

기사의 마이크 안내에 따라 광덕고개에서 하차한다.

내리면서 기사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더니 돌아오는 답이 엉뚱하다.

"네, 어서 오세요."

순간적으로 기사가 실수한 걸 알고는 말꼬리를 흐리는 바람에 끝 부분은 흐지부지된다.

기사는 쑥스러웠는지 모르겠으나 듣는 내 입장에서는 흐뭇하기만 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도 친절 의식이 크게 제고돼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서비스 없이 단순한 기술적 품질만으로 경쟁을 하는 시대는 이미 갔다.

.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길만 건너면 바로 산행 들머리다.

길가에 '광덕산 등산로 입구'라는 팻말이 초행자의 들머리를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의 기운이 좀 덥다 싶은 날씨이지만 산행에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다.

입구 음식점 화단에서는 매발톱꽃, 죽단화, 조팝나무 등등이 풍요로운 늦봄의 한때를 마음껏 향유하고 있다.

역시 산간이라 화단에 산에나 피는 쥐오줌풀까지 심어놓았다.

며칠 전 운악산에서는 이제 막 꽃봉오리를 내민 쥐오줌풀이 이곳 광덕산에서는 벌써 활짝 폈다.

시작부터 별로 반갑지 않은 나무 하나가 나타난다.

이 나무가 피우고 있는 꽃들과 유사한 꽃들이 적지 않아 항상 이렇게 생긴 꽃들만 만나면 정확한 이름을 알아내기 어려워 애써 외면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시작부터 그럴 수야 없지, 하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나무 앞으로 인도한다.

갖고 간 메모 노트에 적힌 돌배나무, 산돌배나무, 콩배나무, 야광나무의 특징을 보면서 나무의 정체를 파악해 본다.

한참을 메모와 실물을 대조해 봐도 딱 들어맞는 게 없다.

집에 와서 보니 그건 꽃사과였다.

아무래도 난 식물 공부 좀 했다는 소리를 듣기에는 아직 요원한가 보다.

 

저만큼 다리 위가 소란스럽다.

지나면서 보니 승용차 우측 뒷바퀴가 다리 난간 밖으로 나가 있다.

다리 난간이 꽤 높은 편인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추락을 모면한 것이 다행이다.

모두들 차를 꺼내기 위한 해결책 제시에 목소리가 드높다.

조금 가다가 길가에서 별꽃이나 개별꽃의 한 종류를 만나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아까 어떤 사람 하나가 "이거 사공이 너무 많은 거 아냐?"라고 하던데 그 많은 사공 중 하나가 제대로 일을 해낸 모양이다.

 

사진 속에 담긴 것은 덩굴개별꽃이다.

개별꽃 종류는 대개 줄기 윗부분에서 잎이 돌려나는 것처럼 보이는데 덩굴개별꽃은 그렇지 않은 것이 특징적으로 보인다.

그저 줄기 위나 아래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잎이 마주나고 윗 부분의 잎겨드랑이에서 실처럼 긴 꽃대가 나와 그 위에 꽃이 하나만 피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봐도 이내 알아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관찰한 바에 의하면 수술의 꽃밥이 다른 개별꽃처럼 옆으로 퍼지지 않아 언뜻 보기에 꽃잎 위에 검은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식별 포인트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풀꽃도 풀꽃이지만 나무들을 중점적으로 관찰해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목을 위로 꺾고 걸어야만 하는 일이 많아진다.

이곳에는 산뽕나무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등산로 주변 곳곳에서 목격된다.

그렇지만 산뽕나무보다 개체수가 더 많은 것은 병꽃나무와 당단풍나무이다.

다른 산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철쭉이나 국수나무, 노린재나무가 이곳에서는 오히려 더 귀하다.

 

다릅나무가 하나 눈에 띈다.

다릅나무는 비교적 최근에 관심을 가진 나무 중의 하나라서 아직 나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나무껍질이 벗겨져서 세로로 또르르 말린다는 것과 새로 나는 순 뒷면에 솜털이 많아 하얗게 보인다는 특징은 다행히 기억창고를 탈출하지 않았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다릅나무가 이제서야 새순을 내고 있는데 과연 흰빛을 띠고 있어 멀리서도 식별이 가능했다.

수피도 확인해 보니 세로로 말려 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잎을 보니 산겨릅나무 같다.

일전에 도감에서 보고 잎 모양이 다소 특이해서 눈여겨 본 바가 있기에 선뜻 산겨릅나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산겨릅나무가 맞다.

다릅이나 산겨릅은 모두 야생에서 처음으로 대하는 나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전에도 눈에는 띄었겠지만 관심 밖이거나 뭔지 잘 몰라서 그냥 스치기만 했었을 나무일 거다.

산겨릅나무는 수피도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데 현장에서 그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확인은 못해 봤다.

 

갯버들은 이미 하얀 솜 같은 털을 모두 날려보내고 열매를 알알이 맺어 가고 있다.

고추나무는 이제서야 꽃망울을 맺었다.

화살나무와 고로쇠나무, 산사나무,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도 보인다.

풀꽃으로는 졸방제비꽃, 벌깨덩굴, 수영, 산괴불주머니, 세잎양지꽃, 미나리아재비, 는쟁이냉이, 미나리냉이 등이 꽃을 달고 있다.

졸방제비꽃의 개화기간이 얼마나 긴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된다.

피기 시작한 지 오래인데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마도 세월의 뒤안에 있는 어둠에 무척이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녀석인가 보다.

가끔씩 포를 살펴보니 모든 포들이 빗살처럼 갈라져 있다.

포가 이렇게 갈라져 있으면 졸방제비꽃 아니면 민졸방제비꽃이다.

참졸방제비꽃은 포가 갈라져 있지 않은데 이전에 어떤 수목원 풀밭에서 딱 하나 발견한 이후로는 한 번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때는 그게 행운인 줄 몰랐었는데 정말 귀한 녀석인가 보다.

큰졸방제비꽃은 꽃이 질 때 꽃잎과 줄기에 반점이 생긴다는데 도통 만날 수가 없다.

천마산의 는쟁이냉이는 초봄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데 여기서는 간간히 눈에 띈다.

 

가래나무는 수꽃이삭의 색이 짙고 길어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너무 높아서 포기하려다가 한 번 줌으로 당겨봤는데 다행히 그다지 불썽사납지 않게 사진이 찍혀주었다.

이제서야 꽃이 피다니, 가래나무도 북쪽 산의 일원임을 늦은 개화로 강조하고 있는 건가.

 

길가에 성인 남자 셋이 어떤 나무 앞에 모여 나무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목격된다.

근처를 지나는데 그들의 대화내용이 들린다.

"이거는 다래 나무 맞는데 그건 나무가 달라."

"무슨 말이야. 둘이 같은 나무야."

"같긴 뭐가 같아 잎이 판이하게 다른데."

하더니 그 말을 한 사람이 다소 격앙된 손놀림으로 다래의 잎을 하나 따서 가져와 다른 나무의 잎에 대면서 한 마디 한다.

"이것 봐. 서로 다르잖아."

상대도 쉽게 수긍을 하려 하지 않는다.

"다르긴 뭐가 달라. 내가 보기에는 똑 같구만."

그냥 지나치려다가 나도 그 두 나무의 정체가 궁금하여 다가가서 잠시 살피다가 한 마디 거든다.

"제가 보기에는 둘이 서로 다른 나무네요. 저쪽 것이 다래 나무인데 나무껍질이 갈라지고 지저분하잖아요. 근데 이쪽 것은 그렇지 않네요."

"그럼 이건 무슨 나문데요?"

"아마 미역줄나무인 것 같습니다. 둘 다 덩굴성이거든요."

"네. 아~ 멱줄나무군요."

사연을 들어보니 그 세 분이 나무가 비틀어진 모습만 보고 다래 순이라 생각하고 미역줄나무의 잎을 잔뜩 땄다가 좀 전에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다 버린 모양이다.

막상 그러고 나니 수고한 보람이 없어진 게 아까워서 다시 두 나무를 살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지방에서는 생긴 게 비슷하여 은꿩의다리를 삼지구엽초 잎으로 알고 채취하고도 있다는데 이런 유사한 일들이 나물이나 약초를 채취하는 초보자들 사이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길가 풀섶에 처음 보는 바람꽃 종류가 하나 보인다.

3장의 잎처럼 생긴 포에서 나온 두 개의 꽃대가 꽤 긴 것이 특징인 쌍동바람꽃이다.

두 개씩 모여 나기 때문에 '쌍동'이란 말이 붙었나 보다.

오래된 도감을 보니 쌍동이바람꽃이라고 나와 있던데 왜 최근 자료에서는 글자 한 자가 빠졌나 모르겠다.

꽃 이름에도 경제성의 원칙이 적용되는 건가?

북쪽 산에 오니 남쪽에서 보지 못하고 놓쳤거나 아니면 남쪽에는 피지 않는 그런 꽃들을 이렇게 만나는 행운을 즐길 수 있다.

쌍동바람꽃도 이미 끝물인지 이 녀석만이 간신히 내 원거리 산행의 보답 차 나타나주고는 더 이상 없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캔 나물로 배가 잔뜩 부른 배낭을 맨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혼잣말을 하신다.

"이렇게 이쁜 꽃을 사진 찍는다는 건 좋은 일이야."

설사 먼 후일 질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당장은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취미생활이기에 그 말을 들자 입속에서 "저는 나물 캐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더 부러운 걸요."라는 말이 맴돈다.

 

모퉁이를 돌자 한 나무가 시선 끝에 머문다.

잎은 버드나무 종류로 보이지 않는데 열매를 보니 버드나무 종류인 것 같다.

나중에 알아 보니 호랑버들이다.

호랑버들의 잎은 갯버들이나 키버들처럼 가느다랗지 않고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라서 처음 보는 나로서는 멸매가 없었다면 전혀 버들 종류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딱총나무 종류가 하나 나타난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혼자서 마지막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그 앞에 섰다.

메모 노트 속에 있는 딱총나무, 털딱총나무, 지렁쿠나무, 말오줌나무, 말오줌때, 넓은잎딱총나무의 요약된 특징과 실물을 아무리 대조해봐도 도대체 어느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중에 판별해 본 결과는 털딱총나무인 것으로 보인다.

잎 뒷면에 털이 많은데 잎 뒤에 털이 있다고 언급된 나무는 말오줌때와 털딱총나무뿐이다.

그런데 말오줌때는 수술이 3개라고 되어 있다.

사진 속에서 수술은 5개인 것으로 보였기에 최종적으로 털딱총나무가 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털딱총나무는 잎가장자리 톱니가 안으로 굽어 있다고 하는데 사진 속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점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설명과 사진이 일치하였기에 털딱총나무로 최종적으로 동정하고 말았는데 그다지 석연치는 않다.

 

털딱총나무 앞에서 너무 지체했다.

초행이라 등산 시간에 대한 감이 없어 좀 서두르기로 한다.

등산에 마음이 가자 이제까지 식물과 대화 좀 나누느라 뒷전에 밀렸던 산에 대한 느낌이 먼저 고개를 든다.

정상 부근에 광덕산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는데 입구에서부터 그곳까지 왕복 2차선 정도 넓이의 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그로 인해 이 산은 등산을 목적으로 오기에는 그다지 달가운 환경이 아니다.

산길이 아니라 이런 도로를 걷는 건 산행의 묘미를 한참 떨어뜨린다.

그래서인지 간간이 주 도로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는 소로들이 눈에 띈다.

어차피 어딘가에서는 만나게 되겠지만 잠깐이라도 산길을 걷는 맛을 느끼고 싶어한 산객들이 개척해 놓은 길이지 싶다.

도로 주변으로 계곡이 있긴 한데 나무에 신경 좀 쓰다 보니 줄창 도로만 걸어왔다.

계곡으로 내려서기에는 늦은 것 같아 그냥 도로를 따라 걷기로 한다.

 

얼마쯤 오르니 삼거리가 나타난다.

좌측 길은 광덕산(廣德山) 정상으로 이어지고 우측 길은 상해봉(上海峰)으로 가는 길이다.

상해봉에 들르기로 한다.

상해봉은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바다 위에 있는 봉우리다.

여기서 바다는 물론 구름 바다를 의미하는 것이리라.

오늘은 그 봉우리를 섬처럼 동동 띄워놓던 구름들이 파란 하늘 끝으로 놀러갔는지 봉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선명하기만 하다.

시계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어 심호흡 몇 번 하면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는데 부부가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한다.

상해봉은 봉우리가 둘인데 두 봉우리에서 모두 난 잠시 그 부부의 전속 사진사 역할을 했다.

아들 면회 온 김에 올라온 길이라 한다.

나보다 젊어 보이는데 결혼을 일찍 간 건지, 아니면 부부가 모두 동안인 건지 모르겠다.

잠깐 동안 봉우리를 공유한 사이지만 부부로부터 전해진 느낌이 눈 아래 풍경 만큼이나 평화롭다.

성정이 후덕하고 금슬이 원앙 같은 부부로 보여 심산의 방문자로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먼저 자리를 떴다.

 

7부 능선을 지나면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얼레지 잎들이 군데군데 많다.

군락지로 보이는 곳도 간간이 눈에 띈다.

다시 삼거리를 지나 정상 쪽으로 걷는데 길가에서 얼레지 꽃이 둘 나타난다.

세상에, 아무리 북쪽 산이라지만 지금이 언젠데 아직까지 꽃을 피운 얼레지가 다 있다니.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데 어디선가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모델이 되기를 자청한다.

몇 컷을 찍는 동안 나비는 내내 자세를 바꿔 가며 꽃 밑에 머물러준다.

모델료 대신 난 나비에게 저 아래로 가면 곤충채집가들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내 말을 알아 들었는지 나비는 훌쩍 자리를 뜨더니 산정 쪽을 향해 날개짓을 한다.

 

기상레이다관측소를 지척에 둔 곳에 헬기착륙장이 있다.

그곳 풀밭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해서 가봤다가 하얀색의 십자화를 머리에 이고 있는 풀꽃 여럿을 발견한다.

잎을 유심히 살펴 보니 냉이 종류 같긴 한데 처음 보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 와 집에서 냉이 종류를 몽땅 다 뒤져봤지만 끝내 동정에는 실패했다.

새로 발견된 종은 아닐 텐데...

(이건 나중에 정체를 밝혀냈는데 산냉이라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기상레이다관측소 옆으로 난 소로로 접어들면 비로소 포장도로를 벗어난다.

광덕산 정상은 지척이다.

상해봉은 1,010m이고 광덕산 정상은 1,046m인데 상해봉에는 표지석이 정식으로 세워져 있는데 광덕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표지석도 아니고 표지판이다.

의정부 소리산악회라는 곳에서 널판지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정상은 나무들에 가려 조망이 시원치 않다.

곧바로 하산하기로 한다.

 

왔던 길을 이용해 원점회귀하기가 싫어 지도에서 보았던 암릉지대를 통과하는 하산길을 이용하기로 한다.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바로 삼거리가 나오자 좌측 길로 들어선다.

물론 식물들 관찰하느라 만만치 않은 시간 보낸 것도 있지만 정상까지 오는데 3시간 반쯤 걸렸는데 하산하는데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린다.

내가 택한 하산 길이 지름길쯤 되는 모양이다.

능선을 타고 내려오는 길이라서 이렇다 할 식물들은 관찰되지 않는다.

산길을 내려서니 출발했던 지점 조금 위쪽이다.

도로변 천막에서 나물 종류와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간이음식점에 가서 버스 시간을 물으니 30분 정도만 기다리면 된다.

슬쩍 한 마디 건네본다.

"여기 처음 왔는데 등산하는 재미는 별로 없네요."

젊은이 둘과 대화중이던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가 동의를 하신다.

"에구, 이런 데를 뭐하러 와요. 여기 등산 오는 사람들 별로 없어요. 재미 없어서."

인근 음식점 주인이신 듯한데 사심이 없으신 건지 참으로 마음 편하게도 말씀하신다.

언뜻 계곡에서 보았던 박새의 풍성한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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