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광릉내까지 가는 버스 안에는 온통 건설 현장 인부들이다.
인근에 아파트 공사 현장이 많은 편이다.
광릉내에서 갈아 탄 일동 가는 버스 안에는 또 산나물 채취하러 가는 노인들로 자리가 거의 찬다.
집에서 5시 40분에 나왔으니 이른 시간임에 틀림없는데 다들 이런 저런 일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혼자 등산복 차림에 배낭을 매고 있으니 조금은 어색하다.
일동에서 버스를 갈아 타고 광덕고개에 내리니 8시가 조금 넘었다.
며칠 전에 같은 곳에 있는 광덕산에 한 번 와본 경험이 있는 탓에 환승 버스가 비교적 자주 있는 시간대를 겨냥해 일찌감치 집을 나섰더니 버스 환승 대기시간과 총 이동시간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사진은 백운산의 들머리가 있는 광덕고개에서 찍은 건데 도로 아래쪽에서 길을 건너면 그곳이 광덕산 등산로 입구다.
백운산 등산은 숴카페 옆에 있는 철계단을 오르면서 시작된다.
산을 오른지 얼마 안 되었는데 갑자기 내 앞 등산로를 좌에서 우로 꿩 하나가 가로지른다.
날개를 다쳤는지, 아니면 낮술이라도 심하게 했는지 이 녀석이 날개짓도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뒤뚱거린다.
등산로를 가로질렀으면 우측 풀밭으로 사라져야 하는데 이번에는 다시 등산로를 우에서 좌로 가로지른다.
이때 번쩍 이 꿩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건 주변에 새끼들이 있어 내 관심을 자기한테로 유도함으로써 새끼들이 도망쳐 몸을 숨길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오래 전에 지리산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에 이런 추측이 가능했던 것이다.
과연 좌측 풀섶을 보니 병아리 크기의 새끼들이 숏다리로 열심히 숨을 곳을 찾고 있다.
꿩 어미나 새끼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겠지만 바라보는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새끼들이 풀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한 동안 시끄러운 경고음을 발하면서 내 머리 위를 선화하던 어미가 그제서야 안심을 했는지 저만큼 떨어진 나뭇자지에 앉아 혹시 있을지 모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경계태세에 들어간다.
억지로 줌으로 당겨봤는데 액정에 잡힌 어미의 모습이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에고, 알았다.
내가 자리를 비켜줄게.
광덕산은 포장도로를 걸어야 하기에 등산하기에는 별로 재미가 없었는데 백운산은 그 반대로 등산로는 산길이라 산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한데 대신 야생 풀꽃나무들은 광덕산보다 못한 것 같다.
참나무류, 소나무류, 단풍나무류, 노린재나무, 물푸레나무, 병꽃나무류 등등 여느 산에나 있는 나무들 이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게 별로 없다.
물푸레나무는 능선을 걷는 내내 눈에 띌 정도로 개체수가 상당히 많았다.
사실 백운산은 우리나라에 몇 군데 되지 않는 히어리의 자생지라는 걸 알고 이미 꽃이야 다 졌을 테지만 그 수형이나 관찰해보고자 찾은 것이다.
그런데 꽃 없는 관목들의 모습이 다들 유사해서인지 히어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 눈썰미가 빈약한 탓이었으리라.
간신히 한 그루를 찾아 살펴봤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히어리는 꽃차례에 털이 없는 점으로 도사물나무와 구분한다.
꽃차례가 열매자루일 테니 그걸 자생지에서 직접 관찰해 보려 했는데 안타깝다.
대신 잎이나 살펴보고 말았다.
잎은 둥근 심장형으로 밑은 깊은 심장저이고 잎맥과 톱니가 뚜렷하다.
잎 양면에는 털이 있는데 특히 뒷면 주맥과 측맥 위에 많다.
이곳에서도 병꽃나무는 끝물이다.
노린재나무는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하고 있는데 꽃을 피우고 있는 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풀밭에 초록뱀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어 살짝 들여다봤더니 가래나무의 수꽃이삭 같다.
유심히 보니 주변에 무수히 많이 떨어져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떡갈나무의 무성한 잎 위로 키 큰 가래나무의 깃꼴겹잎들이 파란 하늘 위에 동동 뜬 흰구름을 손짓으로 부르는데 그 모습이 여유롭기 그지없다.
이곳에서는 애기나리가 아직 한창이다.
꽃을 두 개씩 달고 있는 것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그래봐야 가지가 하나이니 큰애기나리는 아니다.
벌깨덩굴은 이미 모두 져가는 추세라서 꽃이 싱싱한 걸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수목원에서나 보았던 노루삼이 하나 나타나준다.
역시 야생에서 보면 그 멋이 더 하고 보는 이의 기분도 덩달아 상승기류를 탄다.
그 동안 애타게 찾았던 선밀나물의 암꽃을 드디어 여기서 만났다.
싸리냉이가 꽤 많았다.
당연히 들에서 자라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산에서 자란단다.
어느 정도 산을 오르다 보니 나무고 꽃이고 뭐고 쳐다보는 게 귀찮아진다.
잦은 탐사 여행에 지쳤는지, 아니면 아침에 버스 안에서 일찌감치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게 미안함보다는 사실 내 자신의 초라함이었는지 의욕이 일거에 꺾여버린다.
그냥 묵묵히 등산에만 신경 쓰기로 한다.
백운산은 봉우리와 안부가 번갈아 나타나 자주 오르락내리락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능선만 따라 걷기에 크게 힘이 들지는 않는다.
단조로운 산행에 긴장감이 해이해질 만하면 가끔씩 암릉이 나타나 주의를 환기시켜주기도 한다.
등산로 주변은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해 있어 조망은 시원치 않다.
이 점은 정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상에는 정상석이 별도로 없고 이정표 밑에 적힌 "백운산 정상 904m" 란 글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리고 있다.
한쪽에는 포천시전철추진위원회에서 내건 현수막이 등산객들의 시선을 끈다.
현수막을 이곳이 게시한 이유는 포천선 전철 유치를 위해 등산객들의 서명을 본 현수막에 직접 받고자 함이다.
며칠 전 광덕산 정상에도 있더니 이곳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포천 소재 명산 모두에 이런 현수막을 걸어놓은 모양이다.
이런 수고가 빛을 발해 모쪼록 염원이 현실화되기 바란다.
주변이 막혀 있으니 오래 머무를 일도 없고 해서 곧장 흥룡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행을 계속 한다.
병꽃나무가 좀 더 머무를 걸 권했지만 녀석은 이 산 저 산에서 너무 자주 만나 식상해져 있기에 그 권유를 묵살해버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산에는 병꽃나무가 참 많기도 하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풀솜대는 이곳에서도 발견된다.
작년에 맨 처음 수목원에서 보았을 때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 없더니 산에 갈 때마다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귀한 야생화는 아닌 듯하다.
얼레지는 삼각형의 열매 속에서 씨앗 만들기에 진력하고 있다.
어느 정도 걷다 보니 백운산은 그간 시야를 터주지 못한 게 못내 죄스러웠던지 좌측으로 조망대를 하나 내준다.
양쪽에 소나무가 서 있고 그 터진 틈 사이로 앞 산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다.
마침 앞에 넓지막하고 편평한 바위가 하나 있어 앉아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골짜기를 훑고 올라온 바람이 소나무 장식 액자 풍경 속에 들어와 스스로 갇힌다.
앞 산에서는 하얀 꽃을 피운 층층나무가 녹색 일색의 단조로운 색감에 약간의 변화를 주고 있다.
디카를 꺼내 그 수려한 풍광을 담아보지만 두 손에 쥐어진 디카의 액정에 나타난 산에는 실물에서 만큼의 깊이가 없다.
하물며 그 깊이의 의미를 내 마음에 담기는 얼마나 더 힘들런지.
등산로 옆에 신갈나무 거목이 하나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다.
뿌리 부분을 살펴 보니 뿌리가 땅속으로 파고 들다 바위를 만나자 그 바위를 감싸안았다.
문제는 그 바위가 작기도 하고 땅속에 깊이 박혀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차라리 바위를 포기하고 뿌리를 땅속 깊히 박았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인다.
신갈나무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 되었음을 불행이 초래된 후에야 비로소 알았을 것이다.
선택이란 비단 동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리라.
하긴 저 나무만 탓할 일은 아니다.
나도 저렇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멀리 내다보지 못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한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신갈나무의 불행이 내 반성의 거울이 된다.
나무는 뿌리에서 굵은 줄기 세 개를 내었다.
그 세 줄기 모두 고사해가고 있는 중인데 유독 쓰러진 맨 윗 줄기 아래쪽에서 뻗은 가지 하나만이 살아남아 잎을 꽤 많이 달고 있다.
아마도 뽑히지 않고 땅속에 박혀 있는 몇몇 뿌리가 아직은 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모양이다.
공급되는 영양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저 가지를 살리기로 한 나무의 선택이 비록 뒤늦긴 했지만 놀랍다.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 라는 말이 저절로 실감이 난다.
3.15km를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정표가 여기서 흥룡사는 1km 정도이고 흥룡봉은 3.8km라는 정보를 주면서 내 선택을 촉구한다.
기왕 식물 관찰을 거의 포기하고 등산 체제로 전환한 김에 흥룡봉 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약 3km 정도를 걸은 후 만난 이정표는 이번에는 흥룡봉이 4km나 남았다고 한다.
이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아마도 중도에 있는 어떤 갈림길에서인지 내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다.
내 기억에 내려오면서 갈림길은 없었는데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곳을 인식하지 못한고 그냥 지나쳤지 않나 싶다.
잠시 망설이다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선 탓에 시간도 충분하고 하여 내친 김에 흥룡봉까지 가보기로 한다.
여기서 흥룡사는 1km 정도밖에 남지 않았으니 거의 백운산 아래 계곡까지 내려온 셈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흥룡봉을 오르면 다른 산 하나를 처음부터 다시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산을 오르면서도 몇 번이나 그냥 포기할까 했는데 마음보다 발걸음이 먼저 앞서가는 바람에 별 수 없이 결정을 강행키로 한다.
등산로 옆에서 계속 동행하는 계곡물 소리가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망설임을 지워내며 나를 부단히 격려한다.
백운계곡은 폭이 넓고 유량이 풍부한데다 바닥이 넓은 바위인 곳이 많아 낙엽 침전물이 별로 없다 보니 물이 상당히 깨끗한 편이다.
거기다가 크고 작은 바위들이 계곡에 산재해 있는데 그 틈새를 비집고 흐르는 물이 낙차를 만날 때마다 떨어지면서 내는 소리가 그렇게 청아할 수가 없다.
한 지점에 이르러 등산로가 계곡을 가로지르더니 이내 계곡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든다.
경사가 갑자기 급해진다.
아마도 백운산 경사도의 두세 배는 되지 싶다.
인내심 가지고 그 급경사를 밟아나가다가 연리지 현상을 보이는 쪽동백나무 하나가 내게 쉬어갈 빌미를 제공한다.
뿌리에서 나온 줄기 둘이 위쪽에서 붙은 형상이 마치 사람이 다리를 꼬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붙었던 줄기는 그 위에서 다시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위로 뻗는다.
왼쪽 줄기가 위쪽에서 가지를 하나 내었는데 그게 옆으로 뻗다가 오른쪽 줄기를 만나자 거기서 잠시 다시 붙는다.
그러다가는 또 본래의 갈 길을 간다.
말하자면 이중 연리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연리지에 속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전에 어디선가 본 연리지는 두 줄기가 같은 높이에서 가지를 서로 상대쪽을 향해 내었는데 그게 중간에서 붙어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비유하자면 사다리의 발판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걸 연리지로 부르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쪽동백나무는 잠시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각각 제 갈을 간다.
이 경우는 모르긴 해도 연리지라고 하지 않는 게 맞을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나무가 붙은 부분을 떼어보려 했으나 떨어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수피는 붙었어도 내부의 체관을 통해 이동하는 양분은 서로 공유하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힘겹게 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팻말 하나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어디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단지 지금까지 올라온 방향으로 계속 가면 도마치계곡이라는 것만 알려준다.
봉우리가 작고 초라한 것으로 보아 이곳이 흥룡봉은 아니리라 생각하고 도마치계곡 쪽으로 계속 걷는다.
100m쯤 능선을 걷다 보니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데 흥룡봉은 이곳에서도 1.6km는 더 가야 한다고 적혀 있다.
흥룡봉과 직각 방향으로 1km를 가면 도마치봉이다.
그런데 도마치봉이 얼마나 험한 길이기에 등산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방향 표시 판넬이 거꾸로 붙여져 있다.
설마 의도적인 것은 아닐 것이고 설치 당시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이런 실수를 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정표가 흥룡봉 방향이라고 지시한 쪽으로 발걸음을 좀 하다 보니 길이 계속 내리막이다.
터진 시계에 든 흥룡봉의 뾰족한 모습으로 보아 한참을 걸어 일단 안부로 내려선 후 다시 급경사를 올라야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그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흥룡봉 코스 오르기 전 계곡에서 함박꽃나무가 보이기에 그곳으로 가려다 젖은 바위를 밟아 미끄러지면서 균형을 잡기 위해 좌측 다리에 힘을 좀 주었더니 그게 삐끗했나 보다.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그 작은 사고가 좌측 궁디에 남긴 욱신거리는 통증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혼자 하는 결정이고 그 결과도 혼자에게만 미치는 데도 난 아마도 포기라는 불명예가 꼬리처럼 따라붙는 게 싫어 스스로 적절한 명분을 축적하고자 별 걸 다 끌여다 붙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올랐던 길을 되짚어 하산한다.
경사가 급하니 하산 길도 만만치 않다.
3km 정도를 걸어 계곡으로 내려서니 물소리가 먼저 재회를 반긴다.
함박꽃나무가 있던 곳으로 가 잠시 꽃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함박꽃은 흐뭇한 미소로 계곡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함박꽃나무 곁에 미역줄나무가 있기에 살펴 보니 천마산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자료에 나와 있는 대로 가지에 사마귀 같은 돌기가 많아 우둘투둘하다.
좀 더 내려오다 보니 등산로 옆 계곡에 편평한 바위 위로 물이 급류처럼 흐르고 있다.
유량은 적어도 물살의 기세는 만만치 않다.
너덜바위 위를 쏜살 같이 내닫던 물길이 그 아래 소규모 소 같은 곳으로 떨어지면서 하얀 포말을 만든다.
그 소가 너무 작아 차마 머물지 못하고 다시금 솟구쳐 오른 물줄기는 바위 위를 적시고 다시 커다란 소를 향해 돌진한다.
거기서 한 바탕 자맥질을 마친 물살이 드디어 평정을 되찾고 잠시 주변을 맴돌다 아래로 아래로 흘러간다.
햇살이 그렇게 따갑지도 않고 바위의 넓이가 마음에 들어 잠시 앉아 손을 적셔 본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물이 차갑다.
불현듯 발도 담그고 옷을 훌러덩 벗고 몸도 담그고 싶어진다.
내 의도가 정말 몰지각한 행동으로 연결될 걸 걱정이라도 한 듯이 젊은 여자 둘과 남자 하나가 흥룡사 쪽에서 나타나더니 내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한다.
그들이 건네준 디카 액정 속에서 한 여자가 'V'자를 그려 보인다.
무슨 의미일까?
자신들이 드디어 쉬기에 아주 훌륭한 장소를 찾았다는 걸 자축하는 걸까?
아니면 내 장거리 산행에 대한 위로의 표시일까?
어쨌거나 그 스스럼없는 포즈 그 자체가 젊음인지라 보는 나로서는 부럽기만 하다.
하산 완료 지점에 흥룡사가 있다.
경내를 잠시 둘러본다.
입구에 있는 불두화와 안쪽 화단에 있는 작약은 그런대로 절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마당 한쪽에서 커다란 흰색 꽃을 듬성듬성 가지에 올려놓고 있는 일본목련은 아무래도 좀 어색하다.
절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고 경내도 그리 경건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아 개인적으로 크게 호감이 가는 분위기를 가진 절은 아닌 듯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 몇 백 미터 암반수라는 약수는 그 맛이 상당히 괜찮다.
한 바가지 크게 들이키고 나서 빈 수통에 또 한 가득 채워서 들고 나온다.
국도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버스정류장이 없다.
등산로 입구라서 당연히 버스정류장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동 쪽으로 한참을 걷다가 한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마음씨 좋아 보이시는 그 할아버지는 넉넉한 미소를 얼굴 가득 띠우시면서 30분 이상을 더 걸어가야 버스정류장이 있을 거라 하신다.
과연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31분을 걸으니 버스정류장이 아닌 버스 종점 차고지가 나온다.
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의 산행은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버스에 피곤한 몸을 내맡기는 일뿐이다.
하산 완료 후 일반 도로를 한 시간 동안 걸은 과외 수고에 대한 위로인 양 길은 내게 처음 보는 개미자리를 선물로 내놓았다.
오늘 산에서 길을 몇 번이나 잘못 들었기에 산행거리를 한 번 계산해 봤다.
광덕고개 들머리 --- 3.2km --- 백운산 정상 --- 3.15km --- 흥룡봉/흥룡사 갈림길 --- 3.1km --- 백운계곡 --- 2.7km --- 흥룡봉/도마치봉 갈림길 --- 3.7km --- 흥룡사 : 총 14.8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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