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 종류나 좀 관찰해볼까 하고 동네 하천으로 나갔다.
하천으로 내려 가는 길 아닌 길에 작년에는 이질풀 종류가 많이 피었었는데 지금은 텃밭을 일구는 동네 노인분들이 날이 가물 때 밭에 줄 물을 길러 가기 위해 진입로를 조성하느라 그 풀들이 모두 뽑힌 상태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한쪽 구석에 간신히 한 포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나보다.
살포시 자주색 꽃 두 개를 밀어 올려놓았는데 꽃잎 중 반은 떨어져나갔다.
아마도 적기가 아닌 시기에 꽃을 피우다 보니 꽃이 좀 취약했나보다.
초봄에 일찌감치도 꽃을 피운 큰개불알풀을 보고 그 꽃을 우연히 살짝 건드렸는데 바로 떨어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이 이질풀과 마찬가지 현상이리라.
빠른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이질풀 종류도 그 구분이 매우 까다로워 작년에 적극적인 노력을 경우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준을 세우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어떡하든 이 문제를 해결해봐야겠다.
갈퀴덩굴은 지금이 한창 개화기다.
열매를 같이 맺어 가고 있는데 열매는 두 개가 같이 붙어 있다.
이런 열매를 분과라 한다.
열매 겉에는 갈고리 같은 털이 많아 다른 물체에 잘 붙는다.
식물은 알면 알수록 그 궁금증이 더 깊어져만 간다.
갈퀴덩굴은 갈고리 같은 털이 있어야 다른 물체에 잘 붙음으로써 멀리까지 씨를 퍼트릴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동물이나 식물이나 공히 근친교배는 여러가지 우성인자를 받아들일 기회를 상실하는 걸 댓가로 치뤄야 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식물은 씨앗을 가능한 한 모체로부터 멀리 내보내야 한다.
그런데 갈퀴덩굴은 이런 사실을 또 어떻게 알았을까?
동물의 뇌에 해당하는 부분이 과연 식물에게도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이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내 무지는 단순히 독서량 부족의 소치이리라.
오늘 목표로 정한 바대로 여러 가지 사초 종류를 디카에 담았다.
사초는 대부분 꽃차례가 다른 식물들에 비해 가늘고 길쭉한데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흔들거려 사진에 담기가 참 어렵다.
까다로운 사초 종류를 동정하기가 겁이 나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형태의 사초를 제대로 담아내기가 어려워 대부분 사초를 기피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꼈던 느낌이 컴에서 본 사진에서 그대로 되살아난다.
촛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사진이 상당히 많았고 설사 촛점을 제대로 맞췄다 하더라도 같은 초록 계열의 색을 가진 잡풀들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목표로 했던 피사체가 그 속에 묻혀버린 사진이 대다수다.
속상하지만 가지고 있는 카메라가 850만 화소짜리 디카이고 내 사진술이 그다지 출중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사진으로 담긴 사초 종류를 대충 동정해 보니 개밀, 새포아풀, 독보리, 뚝새풀 등인데 그 정체를 정확히 파악한 후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성질 급한 여뀌 종류 한 포기가 벌써 나와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에 뒤질세라 방동사니 종류도 몇몇 척후병을 급파했다.
마디풀의 꽃은 언제 봐도 아주 사랑스럽다.
길가에서 흙먼지를 잔뜩 뒤짚어쓰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꽃은 비록 작지만 마디풀의 미적 감각이 그 안에 유감없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그 예술적 행위는 인간이 아닌 곤충을 위한 것이긴 하지만...
선개불알풀은 육안으로 잘 식별되지 않는 꽃을 피우는데 열매도 다소 특이하다.
거꾸로 된 심장형의 열매는 납작하고 겉에 털이 있다.
이 열매의 모양이 뭐 닮았다고 하여 개불알풀이란 이름이 붙었다 하는데 열매가 그렇게 보이기는 보이는 건가?
최근에 문모초의 존재를 알고 나서 선개불알풀과 문모초는 식물체 형태가 비슷하여 구분이 까다롭다는 사실도 같이 알게 됐다.
선개불알풀의 줄기 밑 부분 잎은 대체로 큰 편이어서 육안으로도 그 형태의 관찰이 가능한데 마주나 있고 달걀형이다.
반면 문모초의 경우는 줄기잎이 선형인데 개인적으로는 이 점을 둘 간의 구분 포인트로 활용하고 있다.
이른 봄에 봄망초가 하나둘 피더니 이제는 개망초가 본격적으로 세를 넓혀가고 있다.
봄망초의 존재를 알고나서부터는 개망초 봉류만 만나면 줄기를 살짝 눌러본다.
푹 들어가는 느낌이 오면 그건 봄망초다.
식물 이름에 '개' 자가 들어가면 대부분 그 식물이 기본종보다 못하다는 의미인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어떤 경우에는 기본종보다 이름이 늦게 붙여졌기에 그런 접두어가 붙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개망초도 망초에 비해 꽃이 더 크고 보기 좋다는 게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도 있겠지만 개별꽃도 별꽃보다 자태가 더 곱다고 생각한다.
질경이도 한참 개화 중인데 외관상 보잘것없다고 마냥 외면만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디카에 담아봤다.
질경이 종류가 몇 가지 되는데 오늘 만난 건 털징경이다.
털질경이는 잎 표면과 꽃대에 털이 있다.
돎나물 꽃도 뒤늦게나마 봄의 향연에 가세한다.
야산 근처 길가를 지나다가 눈에 띈 것은 벌노랑이였다.
그 존재만 알고 있었던 것인데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아마도 남쪽지방에서나 피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우리 동네 풀밭에서도 자라고 있다.
잎 구조가 다소 특이한 편이다.
깃꼴겹잎인데 맨 아래 한 쌍은 거의 원줄기 근처에 붙어 있어 마치 턱잎처럼 보인다.
작년에 보았던 자리 근처에 드디어 자그마한 수레국화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꽃이 만개하지는 않은 상태다.
조만간 작년처럼 도로 절개지에 듬성듬성 피어날 것이다.
큰금계국도 출현했다.
자료를 보니 금계국은 가운데 부분의 통상화가 황갈색 내지 암자색이고 큰금계국은 황색이라 한다.
냇가에 다른 풀들과 뒤섞여 살짝 꽃을 피우고 있는 녀석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이름이 큰물칭개나물이었다.
대체로 곧게 서서 자라는 모양인데 이 녀석은 잠복근무하는 형사처럼 줄기를 옆으로 눕히고 바짝 몸을 낮추고 있다.
이 역시 처음 본 식물이다.
젓가락나물은 왜 이름이 젓가락나물인지 무척 궁금하다.
가끔 가다 동네 주변만 소요해도 이렇게 새로운 식물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오늘만 해도 큰물칭개나물, 벌노랑이와 생애 첫 대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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