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리비아에 부임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간 업무를 보기 위해서 시내에 간 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개인적인 외출을
하지 못했었지요.
총을 든 군인과 검문소 탱크 등이 주인공처럼 자리잡고 있던 길거리의 살풍경도
이제 어느 정도 정화된 것 같아 오늘은 모처럼 트리폴리 외곽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새로 이사한 사무실에서 약 6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브라타 유적지를
목적지로 삼았습니다.
10시 40분 경 도착했는데 내가 첫 손님이더군요.
요즘 이곳 분위가가 그런가보다 했는데 곧 이어 상당수의 내국인들이 내 뒤를
이어 입장했습니다.
전쟁 전에는 내국인은 무료이고 외국인은 6 디나, 그러니까 한화로 약 6천원
정도 하던 입장료가 국적 불문하고 무료로 바뀌었더군요.
사브라타 유적지는 그 격렬했던 내전도 잘 견뎌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천은 의구하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이미 오래 전에 폐허는 되었지만 그래도 금번 내전으로 인한 추가적인 피해는
없었거든요.
한때 이 건축물과 함께 했을 그 영화는 어디로 간 건지.
이 건축물이 굽어보는 지중해만이 유일한 증인이건만 지중해가 간직하고 있는
역사는 언필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웬지 그 함구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인간사 모두 부질 없다는 건 저 열주들이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습니다.
돌기둥이 제 아무리 높은들 지중해 깊이만 하리오.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하던 독재자는 저 기둥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겁니다.
얼마전 혹독한 시련을 겪은 저 리비아인들은 이 유적에서 어떤 의미를
간취해낼 것인지.
세세년년 이 자리를 지켜왔을 노란 꽃들이 계절의 은총을 최대한 향유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원형극장의 잔해 모습입니다.
오늘은 오후 3시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사브라타 일부만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남는 게 시간인데 조급할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입구로 나오니 소나무 한 그루가 작별인사를 합니다.
UN 번호판을 단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이 유적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이 유적지가 피해라도 입지 않았나 조사하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들이 타고 온 랜드크루저입니다.
둘 다 리비아에서는 평소 전혀 볼 수 없는 번호판을 달고 있더군요.
내친 김에 내 애마도 한 번 담어봤습니다.
상당수의 외국인 차량들이 도난을 당했는데 욘석은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아 기특하게도
내 충복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습니다.
유적지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가 언덕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내가 가본 곳 중에서 가장 풍광이 수려한 장소입니다.
내려다 보이는 바다는 변함 없는 옥빛 얼굴로 나를 반깁니다.
바다도 간단 없는 총성에 지쳤는지 파도 하나 없이 고요하게 누워 있습니다.
저 수평선 너머에 유럽이 있는 건가?
내 수평선도 저렇게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을까?
내 안의 수평선 너머에 있을 내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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