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에 갔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몇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야생화가 풍성한, 이런 산이 동네 인근에 있다는
게 행운이라면 행운입니다.
오늘은 평소 다니던 루트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지요.
무작정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능선이나 계곡을 타보기로 작정을 하고 산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혀 예기치 않은 식생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등산로도 없는 힘든
경사로를 오르는데 넉넉한 위로제 역할을 해주더군요.
그런데 어쩐지 산이스라지 꽃들이 빙그레 웃는 품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네요.
산은 애써 찾는 이에게는 선물을 주지 않고 그저 즐기는 이에게만 가끔씩 의외의 풀꽃을
선보이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깨닫고말았거든요.
뭐, 이럴 때 쓰기 위해 평소 준비해둔 마음가짐이 있어서 크게 낙담하지 않기로 합니다.
야생화와의 조우가 없다면 산행이라도 즐기면 되거든요.
힘겹게 능선에 올라 보니 등산로가 있네요.
그 길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자주 다녔던 천마지맥 등산로로 이어지더이다.
그 익숙한 길을 걷다가 한 지점에서 좌측에 뭔가가 있어 보이는 경사로가 나타나기에
무작정 내려가보았지요.
그랬더니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던 홀아비바람꽃 군락지가 나타나지 뭡니까.
우리나라가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아직도 전인미답의 오지가 군데군데 남아 있다는 게
갑자기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토 구석구석에까지 인간의 발길이 닿는다면 자연은 신비를 잃어버릴 겁니다.
이런 구석이 어딘가에 남아 있어야 우리에게서 희망이란 단어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광덕산에서 실컷 즐겼던 화원 풍경인지라 디카는 굳이 꺼내들지 않았지만 이
처녀지 발견의 기쁨을 한껏 구가하기 위해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참을 머물렀지요.
내 눈길이 닿자 낯선 이방인의 돌연한 출현이 어색했는지 홀아비바람꽃과 그 사이에 간간이
끼어 있는 각시현호색, 얼레지, 꿩의바람꽃, 피나물 등이 살포시 고개를 돌리고 바람을
매개로 지들끼리 뭔가를 속삭하는 듯합니다.
그 시골처녀 같은 부끄러움이 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어줍니다.
이대로 화원에 누워 하늘을 보다가 스스로 잠이 들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의 실현을 제어한
건 절대 빼먹을 수 없는 내 저녁 스케줄이었지요.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경사면 밑 쪽으로 계속 내려가 봤더니 이번에는 다산길 7코스가
나오더군요.
마석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이 둘레길을 천천히 소요하듯 걷습니다.
날씨가 좋으니 이 길이 마치 천국으로 가는 진입로 같이 느껴지더군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서 있는 산벚나무의 하얀 꽃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기보다는 한 소절의 감미로운 음악이 되어 잔잔히 내 귀에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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