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탐사를 위해 먼 곳이라도 찾아가고는 싶은데 그때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게 된다. 오늘은 그냥 간단히 동네 산이나 잠깐 올라가보기로 한다. 동네 산이긴 하나 해발 474m나 되며 버젓이 복두산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정상에 이르기 전에 봉우리 하나가 있는데 가벼운 산책 수준의 산행을 할 때는 통상 이 봉우리가 반환점이 된다. 오늘도 평소의 관례를 따르기로 하고 배낭도 없이 손수건 하나만 바지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반팔 티에 등산 조끼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선다. 티브이에서 초여름 날씨라 하더니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햇살이 제법 따갑다. 그렇지만 적당한 바람이 불러주고 있어 햇살이 의도한 만큼의 더운 느낌은 상당히 경감된 상태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와 주도로를 이어주는 유일한 진입로인 다리를 건너면서 습관대로 다리 밑 하천을 내려다본다. 이 하천은 건천이라서 비가 좀 심하게 온다 싶을 때나 하천다운 모습을 보이고 그렇지 않은 평소에는 거의 물이 없어 하천이란 이름은 무색하고 단순한 개울 수준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리 밑에도 물론 물은 흐르지만 그 위아래로 낮긴 하나 보가 설치되어 있어서 웅덩이나 다름없다. 그 열렸지만 eke힌 공간에 피라미들이 상당수 모여 유영을 즐기고 있다. 작년 늦가을 그 모습을 보고 저들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겨울이 다가오면 저들은 과연 어찌될지 내 일처럼 걱정까지 했었는데 막상 이곳에 살얼음이 얼 때가 되자 그 피라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하교하는 동네 악동들의 놀이나 철없는 어른의 낚시질 또는 투망으로 모두 희생된 거겠지 생각하고 말았는데 얼마 전에 보니 꽤 많은 물고기들이 그 자리에 다시 나타났다. 내 눈에는 잔돌밖에 보이지 않는 얕은 물속인데 어디로 피신해서 그 엄동설한을 견뎌냈는지 모르겠다. 오늘 보니 녀석들이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기까지 했다.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 탓에 내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하게 되어버렸지만 녀석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란 생각에 일말의 안도감을 느끼며 다리를 건넌다.
집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산행 들머리 직전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무심히 지나려다 뭔가 좀 이상해서 들여다보니 꼬리처럼 기다란 수꽃차례를 무수히 매달고 있었다. 마침 늘어진 가지가 있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별 수 없이 또 디카를 들이밀었다. 너무 심한 바람으로 초점 맞추는데 애를 먹으면서도 무리하게 대충 셔터를 눌러대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말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다행히도 몇 장 정도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나와 주었다. 수꽃은 가지 밑에 모여 달리지만 암꽃은 어린가지 위쪽에 한두 개씩 달린다 하니 다음에 시간 내서 암꽃도 마저 찍어놔야겠다.
들머리에는 가장 먼저 묘지가 나타난다. 그곳으로부터 위쪽으로 이어진 경사면을 따라 묘지 몇 기가 이웃하여 일렬로 늘어서 있다. 그런데 작년에 보니 유독 첫 번째 묘지에만 할미꽃이 피더니 올해도 그 현상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번 이곳을 지날 때 폈던 할미꽃은 누군가가 뽑아버렸는지 자취를 감췄고 다른 위치에 새로운 할미꽃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도 사람들이 그 할미꽃을 보기 위해 봉분을 밟고 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 그 무덤의 관리자가 뽑아버렸을 거라고 추측해본다. 할미꽃은 알칼리성 토양과 햇볕을 좋아하는데 무덤가가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할미꽃이 무덤가에서 많이 자란다고 한다. 봉분을 조성할 때 흙을 다지는데 석회를 사용한다 하는데 그 석회가 알칼리성이라 하니 과연 무덤가가 할미꽃의 생장조건에 안성맞춤인 곳인 셈이다. 할미꽃은 지난 번에 이미 찍었기에 오늘은 무덤 외곽에서 자라고 있는 꿩의밥이나 좀 디카에 담아봤다.
거기서 산위로 10분도 못 되는 거리에는 키 작은 사방오리가 한 그루 자라고 있다. 지난번에 이미 수꽃차례는 찍어두었는데 오늘 보니 수꽃은 수분을 끝냈는지 이미 거의 대부분이 가지를 떠났고 대신 암꽃들과 새로 돋은 잎들만이 무성하다. 아마도 사방오리도 근친교배를 피하기 위해 수꽃과 암꽃이 시차를 두고 피는 모양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수꽃도 뚜껑을 열고 수술을 밖으로 내보내느라 그 푸릇푸릇하고 토실토실하던 꽃차례가 축 늘어져 있다. 수꽃과 암꽃이 같이 매달린 가지를 찾아 디카에 담아보려 하다가 적당한 모델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줌으로 당겨보니 수꽃의 수술은 이미 꽃밥을 모두 날린 상태이고 꽃차례도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져버리고 만다. 임무를 완수했기에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게 그들의 운명이리라.
좀 더 오르다 이번에는 다른 쪽에 있는 무덤가로 가봤다. 그곳에서 작년에 이어 올봄 초에도 같은 자리에서 솜나물 하나를 보았는데 녀석의 안녕이 무척이나 궁금해서이다. 다행히도 녀석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녀리게 내밀었던 꽃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잎만 방사형으로 펼친 상태로 내 걱정스런 방문에도 아무 반색이 없이 무표정하기만 하다. 솜나물은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꽃을 피우는데 가을에 피는 꽃은 대부분 폐쇄화라 한다. 주변에 다른 솜나물이 없어 봄에는 수분이 불가능했겠지만 가을에는 폐쇄화 속에서 자가수분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이 녀석은 2년째 혼자서 외롭게 이 일대를 점유하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폐쇄화에 의한 번식이 말처럼 그리 녹록한 게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지나는 무심한 등산객에 의해 그 폐쇄화마저 훼손당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혼자라는 그 느낌이 내게 들어와 적잖은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부디 내년에는 식솔들이 좀 더 늘어나 있기만을 바랄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기에 황급히 그 자리를 뜨고 만다.
이 산은 야생화가 귀한 곳이기에 제1봉에 오르는 길목에서도 꽃을 피운 풀꽃은 양지꽃 외에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 해도 등산로 주변은 불과 일주일 정도 사이에 갈색의 낙엽 층 세력이 상당히 많이 축소되어 있다. 이름 모를 잡풀들을 위시해 애기나리와 둥굴레가 그새 줄기를 쭉 내밀어놓았다. 둘 다 꽃이 고개를 숙이고 피는데 그 정도의 속성만으로 둘은 깊은 유대감을 느꼈는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사이좋게 행동을 같이 하고 있는 그 우연이 불현듯 어색하게 느껴진다. 애기나리가 군집하고 있는 곳은 소나무 군락지 초입이다. 소나무는 자체에서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피톤치드를 내뿜기에 통상 그 밑에는 풀꽃들이 서식하지 못하는데 애기나리는 무슨 연유로 그 바로 근처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는지 의아해진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각시붓꽃 하나가 낙엽 밭 사이에 오롯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든다. 어저께 천마산에서 올 들어 처음 보고 좋아했었던 바로 그 꽃이다. 우리 동네 산의 봄꽃 개화 시기는 통상 근처 산에 비해 적어도 보름 정도 늦다는 것이 그간의 경험에 의한 인식이었는데 이 각시붓꽃이 총대를 메고 그 통념을 깨고자 홀로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 모양이다. 물오리나무와 서어나무는 길게 늘어진 꽃차례를 매달고 있던 가지 위에 어느새 꽤 많은 잎을 얹어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쭈글쭈글한 진달래는 이미 제철이 지났음을 예감했는지 제풀에 지쳐 시들시들하다. 산벚나무만이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잎과 꽃을 동시에 거느리고 있다. 봄 산을 노랗게 점점이 수놓고 있던 생강나무도 시든 꽃과 돋아난 잎으로 인해 이제는 제 빛을 잃었다. 가막살나무와 떡갈나무, 신갈나무, 참회나무는 이제야 자신들이 꽃망울을 내놓을 차례가 되었다는 사실에 신이 났는지 불어오는 바람을 싫다 하지 않고 그에 장단을 맞추느라 쉴 새 없이 가지를 흔든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가 명랑한 울음을 공기 중에 흩뿌린다.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니 새의 형체는 보이지 않고 대신 키 큰 물박달나무가 자랑처럼 긴 꽃차례를 무수히 달고 있는 굵은 가지를 너울거리고 있다. 순간 뜬금없이 “전화왔어요. 헤헤, 속았지? 메세진데”하는 휴대폰 신호음이 생각난다. 그럼 나도 바람소리였는데 새소리로 속은 건가?
제1봉에 오르니 저만큼의 거리에 있던 복두산과 천마산이 성큼 다가선다. 대기가 티 없이 맑으니 산과 나 사이의 거리가 그만큼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긴 시간 갈색 패션만을 고집하던 저 산들도 어느새 녹색으로 복장을 바꾸었다. 산에 박힌 나무와 바위 하나하나의 모습마저 인식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시원스럽다. 산정에 어린 하늘빛이 산색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떡갈나무 잎을 스치며 파도소리를 연출하던 바람이 소나무 숲에 이르러 예리한 바늘잎에 찔려 통증을 느꼈는지 갑자기 잦아진다. 그래, 이런 풍광 앞에서는 고요가 제격이다. 소리 없이 불어오는 미풍 정도나 되어야 이 한 폭 그림의 일부분이 될 자격이 있을 것이다. 시선을 타고 든 이 봄날의 하루 풍경이 원색의 물감이 되어 내 안에서 전위예술가의 붓을 따라 흩뿌려지는지 마음에 희열의 잔파도가 번진다. 이런 아스라한 날이면 난 왜 괜스레 술 생각이 나나 모르겠다. 나무그늘 아래 돗자리 깔고 술 한 잔 마시고 벌러덩 누워도 흐르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만 같다. 취기가 좀 오르면 그대로 살짝 잠이 들어도 좋겠지.
제1봉에서 복두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안부로 내려서야 한다. 그 안부에서 정상 가는 길의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버거워 오늘은 그 안부까지만 갔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오지 않고 안부 사거리에서 다른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그쪽에는 이름을 외웠다가 잊어버린 자그마한 절 하나가 있는데 그 절까지의 길에 초지가 제법 펼쳐져 있다. 작년에도 우연히 그쪽으로 길을 들었다가 뜻하지 않게 금난초와 은난초를 보게 되었기에 올해는 자연히 그쪽을 하산 길로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 동네 산이 야생화에 무척이나 인색한 점을 고려하면 그 초지는 너무 섭섭해만 하지 말라는 복두산의 배려인 것만 같다. 등산로를 벗어나 초지를 어슬렁거리다가 각시붓꽃을 여럿 만난다. 그것만으로도 황송한데 이 초지는 내친 김에 선심이나 쓰듯이 금붓꽃까지 대여섯 그루 선물로 내놓는다. 이미 어제 모두 디카에 담았던 것들이라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고 카메라를 꺼내지 않은 채 곁에 서서 애정 어린 눈길만 주다 자리를 뜬다. 둘러보니 여기서도 둥굴레가 꽤 많이 목격되고 하늘말나리인 듯한 것과 삿갓나물의 새싹도 눈에 띈다. 이곳에는 현호색의 개체수가 꽤 되는 편인데 현호색으로 통합되기 이전 같으면 댓잎현호색, 애기현호색, 빗살현호색으로 불릴 녀석들의 잎 모양이 모두 관찰된다. 이곳은 대체로 응달인데 그래서인지 열흘 정도 전만 해도 한창 개화중이던 현호색들이건만 벌써부터 꽃은 찾아보기 힘들고 발 빠른 녀석은 이미 꽃대에 길쭉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한쪽 바위 틈새에서는 매화말발도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어떻게 저런 척박한 곳에 뿌리를 둔 채 이렇게도 멋있는 꽃을 피워낼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해 있다 하여 우리가 함부로 어떤 식물을 동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건 모두 그들이 선택하고 적응한 최선의 결과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저 꽃은 동정해야 할 대상으로 나를 지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을 나서면서 다리 밑 웅덩이에 있던 피라미들에 대한 작년의 내 동정도 사실은 그들 입장에서는 지나친 관심일 수도 있겠지. 그들에게 왜 이런 열악한 환경에 자신들이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불평은 없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환경이 부여한 악재를 잘 극복하고 현재 이렇게 떳떳한 모습으로 성장했음을 자랑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시사점을 새삼스러운 듯이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그대로 하산할까 하다가 시간이 남아 다시 안부로 올라서 반대편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그쪽의 봄소식도 특별한 것은 없다. 하산 길 끝에 도착하니 송어횟집 근처에 심어진 벚나무와 앵두나무에서 날린 꽃잎들이 한 겨울의 강설 장면을 연출하면서 내 오늘 하루 일과의 마감을 경축해준다. 재빨리 디카를 꺼내들까 하다가 그만둔다. 내 사진 실력과 다카의 성능을 고려할 때 그 시도는 부질없는 짓임을 알기 때문이다. 시선으로 잡아당긴 그 장관을 마음에 바탕화면으로 올려놓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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