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 산 저 산 다니다 보니 지금 시기에 꽃을 피운 식물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하다.
요즘이 아마도 봄꽃과 여름, 가을꽃 사이의 휴지기인 때문인가보다.
봄꽃들이 나무가 잎을 무성히 내어 햇볕을 차단하기 전에 일찌감치 개화 의식을 치루고 그 다음에는 어느 정도 뜸을 좀 들였다가 일조량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풀꽃들이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천마산에도 여느 산과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오늘은 나무들이나 좀 관찰해보고자 산행에 나섰다.
이곳에도 나물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뭇가지를 잔뜩 어깨에 매고 내려오기도 한다.
가지의 모습을 보니 다행히 살아 있는 나무의 가지는 아니고 땅에 떨어진 가지를 주어 오는 듯했다.
땔감용 나무를 그 높은 곳에서부터 운반할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약재용으로 사용될 것이라 여겨진다.
입구 개울가에 쪽동백나무가 활짝 꽃을 피웠다.
꽃들이 긴 꽃대에 밑을 보고 조롱조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 언뜻 보면 때죽나무 같기도 하다.
산 입구 마지막 음식점이 근처에 있는데 대낮부터 술판이 벌어진 모양이다.
노래방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는데 그 큰 소리가 그대로 밖으로 울려 퍼진다.
한 사람이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인가를 부르는데 음정, 박자, 가사가 제멋대로인 게 어쩌면 나하고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러나 밖에는 비나 눈은 물론 오고 있지 않다.
바람도 비교적 잔잔한데 가끔씩 노래소리에 놀랐는지 돌풍이 한 번씩 불곤 한다.
음악이 아니라 소음 수준의 노래를 듣기가 거북했는지 쪽동백나무의 하얀 꽃들이 간간이 떨어져 계류를 타고 밑으로 흘러간다.
산 곳곳에 쪽동백나무가 가지마다 백색 장식등을 매달고 있는 가운데 가끔씩 층층나무도 보인다.
계곡 쪽으로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유람 나온 풍류객 같다.
이 산에서 목격되는 고광나무는 모두 흰털고광나무들이다.
잎자루, 꽃차례, 꽃자루, 새 가지 등에 흰털이 빽빽하다.
자료를 검색하면서 털고광나무인지 흰털고광나무인지를 가리기 위해 고심 좀 했다.
털고광나무에 대한 자료의 설명이 사진에 보이는 특색에 더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문제는 털고광나무가 진도에서 자란다고 되어 있다.
털고광나무의 잎가장자리에는 선상의 톱니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선상"이란 용어를 검색해 보니 '샘털 같다'는 말이다.
즉, 톱니가 털처럼 보인다는 말인데 이 점이 찍어 온 사진과 달랐다.
분포지역과 톱니 모양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아 털고광나무를 버리고 흰털고광나무로 결론을 내렸다.
쪽동백나무와 층층나무, 흰털고광나무가 득세를 하자 병꽃나무 종류와 귀룽나무, 야광나무, 매화말발도리, 조팝나무류가 순순히 권좌를 내주었다.
물러나는 자들은 내년에 대한 확실한 기약이 있어서인지 떠남에 있어 한줌의 미련도 없다.
가끔 가지에 남아 있는 몇몇의 꽃들은 미련이라기 보다는 치기어린 애교로 보인다.
국수나무는 산 아래쪽의 몇몇 나무만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하고 있고 산 위쪽에서는 아직 꽃대만 삐죽 내민 상태다.
나도국수나무는 꽃차례가 총상꽃차례라는 점이 원추꽃차례인 국수나무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에 국수나무만 만나면 꽃차례를 살펴보았는데 온통 국수나무뿐이다.
나도국수나무는 수목원에서 한 번 보았고 야생에서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국수나무의 꽃차례는 이렇게 생겼고,
나도국수나무의 꽃차례는 이렇게 생겼다.
귀룽나무는 이미 열매 맺기에 돌입했다.
일찍 꽃을 피운 만큼 열매도 일찍 맺으리라.
간밤에 바람이 거셌는지 계곡에 매실 같이 생긴 열매가 많이 떨어져 있다.
무언지 궁금했지만 이 열매의 주인인 듯한 옆에 서 있는 나무가 너무 높아 잎 모양이 제대로 관찰되지 않는다.
그냥 돌아서려는데 수피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굴참나무 수피 같다.
이전에 굴참나무와 개살구나무는 모두 수피에 코르크 질이 발달했다는 걸 본 적이 있어 혹시 개살구나무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보니 마침 잎 하나가 떨어져 있다.
가지고 간 도감의 설명과 그 잎을 대조해보니 개살구나무가 맞았다.
이렇게 해서 야생에서 처음 만나는 나무들 목록에 개살구나무가 하나 더 추가되게 되었다.
굴참나무 잎이야 알고 있는 것이니 다음에 이런 수피를 가진 나무를 만나면 잎만 관찰해봐도 굴참인지 개살구인지 금세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전에 광덕산에서 미역줄나무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었던 게 생각나 그 나무를 관찰해 보기로 한다.
한참을 찾다 보니 미역줄나무로 보이는 나무가 눈에 띈다.
일단 미역줄나무는 덩굴성이므로 가지가 얽혀 있어 찾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 산에 개체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는지 시간은 좀 걸렸다.
우선 가지를 살펴 보니 제멋대로 휘어져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가지끼리 얽혀 있는 것도 있다.
가지가 사마귀 같은 돌기로 덮혀 있고 5개의 능선이 있다고 하는데 가지에 껍질눈 같은 건 많이 보였지만 그게 사마귀 같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모가 진 가지도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가지는 그냥 둥그렇다.
가지가 작아 모도 몇 개가 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잎을 보고 가져간 도감의 설명과 비교해 봤는데 양자가 모두 일치했다.
이렇게 해서 미역줄나무도 다음에 만났을 때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됐다.
작년에 명성산에서 처음으로 이 나무를 만나 꽃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 이후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물론 이 나무가 덩굴성인지 아닌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었다.
나무의 종류가 하도 많으니 이런 정도의 시행착오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겠으나 사람에 따라 그 횟수에 대한 차이가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산에는 뽕나무 종류가 많은데 모두들 알알이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붉은색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아직 녹색이라서 따먹어볼 시기는 되지 않았다.
열매를 볼 때마다 눈여겨 봤는데 나무마다 열매의 크기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도감을 보니 도감 사진에서도 그런 현상이 관찰된다.
잘 하면 열매 모양만으로도 뽕나무 종류를 알아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다른 자료를 보니 그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열매의 모습은 대개 비슷한 것으로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별 수 없이 잎의 생김새로 판별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뽕나무 종류의 잎 생김새를 정리하다 보니 꾸지뽕나무와 꾸지나무의 잎 모양이 서로 비슷해서 헷갈린다.
꾸지나무는 꾸지뽕나무와 달리 잎이 마주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한다는데 아무래도 나중에 산에서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나 보다.
찍어 온 잎 사진이 부실해서 뽕나무 종류에 대한 구분은 다음 산행의 과제로 미루어놓기로 한다.
보리수나무의 꽃이 누런색인 것으로 보아 서서히 개화기를 마감할 단계이다.
보리수나무는 꽃이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누런색으로 변한다.
산을 내려오면서는 풀꽃에 좀 신경을 쓰기로 한다.
가장 먼저 냉이 종류 하나가 눈에 띈다.
줄기가 가늘고 길쭉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그대로 부러져버릴 것만 같은데 녀석은 건들거리면서 잘도 버텨낸다.
그 모습이 뒷골목에서 보스의 시중을 드는 똘만이 같다고 말하면 녀석이 기분 나빠 하겠지.
냉이 종류라고 본 것은 꽃이 십자화인데다 꽃 밑에 냉이류들처럼 길쭉한 열매를 매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 많은 냉이 종류 전체를 숙독해 보아도 사진과 일치하는 설명이 없다.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럴 때는 정말 식물 공부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담배 한 대 피며 쉬는 동안 수일 전 사진에 담았던 산장대가 떠오른다.
그것도 냉이 종류인 줄만 알았는데 이름에 "장대"가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다시 장대 종류를 모두 검색해 보았다.
하나 하나 설명을 읽어 내려가는데 도통 사진과 일치하는 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참 만에야 바위장대가 이제 그만 수고해도 된다고 위로를 한다.
에효, 찾는 건 왜 이리 늦게 나타나는 건지.
뿌리잎과 줄기잎, 열매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 거의 사진과 일치했기에 바위장대가 녀석의 이름으로 최종 낙찰됐다.
며칠 전 산장대의 경험이 없었다면 냉이란 이름에만 집착하다 영원히 정체를 파악하지 못할 뻔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라고 스스로 위안해본다.
풀솜대로 보이는 식물의 꽃차례가 좀 엉성하여 혹시 유사종이 아닐까 하여 사진을 열심히 찍어왔는데 결국은 풀솜대가 맞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양지꽃 종류가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냥 스치기만 하다가 양지꽃 종류도 많은데 혹시 이제까지 못 보던 건 아닐까 해서 그 중 하나를 살펴 보기로 한다.
언뜻 보니 뿌리잎이 5출엽이고 줄기잎이 3출엽이라 가락지나물 같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꽃이 대기중인 것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많다.
내 기억 속의 가락지나물은 꽃이 가지에 하나씩 피고 있었다.
이번에는 줄기잎이 다소 특이하다.
한 곳에서 세 개의 잎이 돌려났고 그 중 두 개의 잎은 3출엽이고 다른 하나는 5출엽이다.
오호라, 이건 분명히 처음 보는 양지꽃 종류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사진을 찍어 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바로 가락지나물이었다.
허탈, 허탈...
까마귀머루 잎 위에 까마귀가 아닌 나방 하나가 앉아 있다.
나비는 앉을 때 날개를 펴고 나방은 날개를 접는 것으로 구분한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산을 내려오면서 5시에 있는 마을버스 막차를 탈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친 김에 그냥 걸어서 가기로 한다.
길 위의 연인들이 아닌 길 위의 풀꽃들을 관찰해 보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의 걷기를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풀꽃들을 관찰하려면 길거리를 외면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가장 먼저 망초 종류 하나가 나를 불러 세운다.
개망초가 벌써 핀 건가 하면서 일단 줄기부터 엄지와 검지로 눌러본다.
어느 정도 힘을 주니 쑥 들어간다.
속이 비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봄망초다.
꽃봉오리를 매단 꽃차례가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 점도 봄망초의 특징이라는데 실제로 작년에 개망초를 관찰해 보니 그때 날씨가 더운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망초도 꽃봉오리 상태의 꽃차례가 고개를 꺾고 있었다.
그 이후 이 특징에 의한 봄망초 판별 방식은 버리기로 하고 속이 비어 있는지 차 있는지를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
산들깨가 산이 아닌 민가 근처 돌담 옆에 피어 있다.
작년에도 같은 자리에서 본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름은 도감을 다시 찾아보고야 알았다.
머리 나쁘면 이렇게 이중으로 고생을 한다.
밭 옆 도랑에 메일 몇 그루가 꽃을 피웠다.
이 녀석은 고맙게도 내 이중 수고를 덜어주었다.
어느 집 화단에 디기탈리스가 심어져 있었는데 지나가는 내게 확성기에 대고 뭔가를 말하려 한다.
목이 잠겼는지 확성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고 대신 곁에 있던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다.
산을 다니다 보면 대체로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지들이야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묶여만 있어서 그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겠지만 듣는 나는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떤 녀석은 덩치가 작아 묶어놓지 않은 모양인데 무지 앙칼지게 짖어대며 끝장을 보겠다는 듯이 덤벼들기까지 한다.
대체로 땅에서 돌이나 막대기를 집어드는 시늉을 하면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던데 이 녀석은 그럴수록 기세가 더 드높다.
심지어 일전에 한 녀석은 잔디 위에 철퍼덕 주저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뒤로 돌린 채 그냥 재미삼아 짖어댐으로써 내 자존심을 팍 구겨놓은 경우까지 있다.
에효, 나 왜 이렇게 사는지 몰라.
길가 한쪽에 자잘한 흰색 꽃을 피운 가녀린 풀꽃이 잔뜩 모여 있던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바로 애기봄맞이였다.
그러고 보니 꽃은 봄맞이에 비해 아주 작았지만 식물의 생김새가 봄맞이와 유사하다.
마침내 새모래덩굴이 꽃을 활짝 피웠다.
암수한그루인데 여전히 암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올봄 초에 어느 산에선가 생강나무의 암꽃을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쓰다가 간신히 한 그루 발견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식물의 암꽃에 관심을 가졌는데 특히 암수딴그루인 경우 암그루가 쉽게 눈앞에 나타나주질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아무래도 수그루보다는 암그루가 훨씬 더 귀한 모양이다.
이외에도 벼과와 사초과 종류를 꽤 많이 찍었는데 동정이 까다롭고 귀찮아서 참새귀리, 큰조아재비 정도만 이름을 찾아보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그냥 무명 꽃으로 방치하고 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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