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금산을 가고자 집을 나선다.
수동에 있는 몽골문화촌 쪽으로 올라 시간이 되면 철마산과 복두산을 거쳐 동네까지 종주하고 중간에 너무 무리다 싶으면 주금산에서 바로 베어스타운으로 하산할 생각이다.
일단 금곡에서 330-1번 버스를 탄다.
이 버스 정류장 중에 '축령산 입구' 라고 있다.
작년에 축령산에 가기 위해 이 정류장에서 내렸었는데 실제로 등산로 입구는 도보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버스 안내방송에서 '축령산 입구' 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난 당연히 이 씁쓸한 기억을 되살렸다.
그런데 이 정류장을 지나 두어 정류장 후에 있는 정류장 이름이 '축령산' 이다.
작년에 여기서 내렸어야 하는데 멍청하게 '축령산 입구' 에서 내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축령산을 오르고 싶어진다.
그 생각이 순식간에 행동으로 옮겨진 결과 버스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뎅그러니 남겨졌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목적지 변경이다.
그런데 이 정류장에서도 근 한 시간 정도를 걸은 후에야 비로소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이런, 같은 산을 가는데 두 번이나 속은 셈이다.
이 오류는 내 사전 정보 파악 부재 탓도 있긴 하나 이 노선의 모호한 정류장 이름 표기 탓이 훨씬 더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정류장 이름을 붙인 건 버스 회사의 얄팍한 상술이 개입된 결과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짜증내봐야 누워서 침 뱉기 꼴이니 그냥 이것도 산행의 일부라 마음 편히 생각하기로 하고 느긋한 걸음걸이로 길을 걷는다.
가는 중에 사초가 몇 종류 눈에 띄기에 디카에 담는데 배경 처리가 어려워 여간 힘이 들지 않는다.
고개 하나를 넘고 터널 하나를 지나니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난다.
작년에 '축령산 입구' 라는 정류장에 내렸을 때 걷던 길이다.
길가에 있는 어느 집 화단에 마가렛이 활짝 펴 있기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가을 여인 같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좀 더 걷자니 이번에는 커다란 말채나무 한 그루가 천변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층층나무이겠거니 했는데 잎맥이 5쌍이고 잎이 마주난 것이 말채나무다.
유사종으로 곰의말채나무는 잎맥 수가 6~10쌍이고 층층나무는 잎이 어긋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축령산은 입장료 천 원을 받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사유지인 모양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바로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으로 가면 서리산이고 우측으로 가면 축령산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리산 쪽으로 방향을 잡을까 하다가 둘 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니 축령산으로 올라 서리산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택하기로 한다.
갈림길에 있는 작은 도랑을 일부러 살펴본다.
돌소리쟁이가 잎을 무성하게 내놓았다.
작년에 이곳에서 돌소리쟁이 꽃을 찍었으나 끝내 이 식물명을 알아내지 못해 '동정하지 못한 것들' 속에 넣어두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어느 분이 고맙게도 댓글로 이름을 알려주셨던 사연이 있는 풀꽃이다.
들머리에서부터 길고 구불구불한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우측에 산길로 올라서는 소로가 보이기에 그곳으로 무작정 들어섰다.
산에 왔으니 당연히 흙을 밟고자 하는 것이 산객의 마음인 것이다.
그러데 이 소로를 이용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지 길은 다져저 있지 않은데다 경사도도 만만치 않다.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비친 공기 중에는 미세한 먼지 같은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마도 송홧가루인 듯싶다.
어느 정도 경사를 오르고 나니 능선이 나타난다.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하는 녀석이 있어서 보니 이제 막 싹을 낸 잣나무다.
아직까지 종자를 머리에 있고 있으니 인간으로 치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쯤 될려나.
모쪼록 행운이 있기를 빌어준다.
수피에 코르크층이 발달한 나무가 눈에 띈다.
이런 수피를 가진 나무는 대략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황벽나무, 개살구나무 등이다.
다른 나무들은 다 보았으나 황벽나무는 야생에서 아직 보지 못했다.
수피를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쑥 들어간다.
이번에는 주먹으로 두드려보니 역시 쿠션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고 손은 전혀 아프지 않다.
이것이 황벽나무 수피의 특징이다.
아, 드디어 황벽나무를 산에서 보게 되는구나 하면서 위를 올려다 보니 과연 깃꼴겹잎이다.
굴참이나 상수리, 개살구의 잎은 모두 깃꼴겹잎이 아니다.
능선을 어느 정도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내가 왔던 등산로 앞에는 '등산로 아님' 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300m쯤 더 가니 수리바위가 나타난다.
축령산에는 예로부터 독수리가 많았는데 이 바위를 멀리서 보면 독수리의 머리처럼 보인다는 데서 수리바위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이 바위 틈에서 한 쌍의 독수리가 둥지를 틀었었다 한다.
지금은 그 많던 독수리들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줄기가 크게 둘로 갈라진 노송 한 그루만이 전설의 파수꾼인 양 이 바위를 홀로 지키고 있다.
축령산은 이곳처럼 시야가 확보되는 곳이 가끔씩 나타나준다.
수리바위에서 약 900m쯤 떨어져 있는 남이바위도 그중의 하나다.
남이바위는 조선의 명장 남이장군이 지형지물을 익히기 위해 자주 이 산에 올랐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바위 위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늘은 남이장군을 대신하여 일단의 등산객들이 바위 위에 올라 산 아래 지역 이름 알아 맞추기를 하고 있다.
등산로 옆 경사면 저 아래 풀밭에 배낭이 하나 보인다.
주위를 둘러 보니 근처 나무 뒤에서 한 사람이 아생화 앞에 엎드려 조심스럽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
멀리서 봐도 그 야생화는 감자난초다.
감자난초야 이전에 이미 만난 적이 있으나 그 주변에 혹시 다른 야생화라도 있을까 싶어 아래로 내려가 본다.
주변에 감자난초가 상당히 많이 자생하고 있다.
이 역시 야생에서는 처음 만나는 풀꽃이다.
감자난초 혼자 이 공간을 독차지하는 걸 시샘했는지 털큰앵초가 곳곳에서 제 꽃 색이 더 화사함을 자랑하고 있다.
꽃대와 잎자루에 털이 많아 털큰앵초다.
앵초의 잎은 달걀형이고 큰앵초의 잎은 신장상 심장형인 점이 서로 다르다.
나중에 축령산에서 서리산으로 넘어가는 길에서도 털큰앵초의 군락지를 하나 발견했다.
등산로 옆 양지바른 바위 곁에 조팝나무 종류로 보이는 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다.
잎이 달걀형이고 중간 이상에 갈색의 겹톱니가 있는 점으로 보아 인가목조팝나무로 보이는데 문제는 이 나무의 잎 표면에 인가목조팝나무에는 없는 털이 있다는 것이다.
떡조팝나무는 잎 상반부에 날카로운 겹톱니가 있고 잎 뒷면 맥 위에 털이 있는 점은 사진과 일치하나 잎 모양이 달걀꼴 원형인 점이 다르다.
잎 모양이 당조팝나무와도 비슷한 것 같았으나 당조팝나무의 잎 상반부에만 있는 톱니는 겹톱니가 아니라서 사진과 일치하지 않는다.
찍어 온 사진 속 잎은 상반부 가장자리에 갈색 복거치가 있고 잎자루와 잎 표면에 잔털이 있고 잎 뒷면은 회백색이며 맥 위에 털이 있다.
이와 유사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털인가목조팝나무라서 이것으로 최종 동정했다.
남이바위 한쪽 옆에는 털팥배나무가 자라고 있다.
한때 우국충정으로 고뇌에 찬 남이장군의 표정을 지켜봤을 이 나무는 어떡하든 생명을 유지하여 후세에 장군의 뜻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이라도 있는 건지 잎의 윤채와 빛깔에서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잎 표면의 털이 가을까지 남아 있고 뒷면 옆맥에 털이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을 털팥배나무로 따로 분류해 놓았는데 이 나무의 잎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되어 일단은 털팥배나무로 동정한다.
팥배나무도 잎 표면과 뒷면 맥 위에 털이 있다가 점차 없어진다고 하는데 사진 속의 나무가 털이 없어지기 전의 팥배나무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축령산에는 털팥배나무, 털큰앵초, 털인가목조팝나무, 흰털고광나무 등 유난히 털 자가 들어가는 나무가 많다.
축령산 정상에도 여느 산 정상에서처럼 태극기가 반공에 휘날리고 있다.
펄럭이는 태극기에서 분출된 기세만큼 파란 하늘은 더 높아진다.
축령산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서리산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길목에서 백당나무를 만났다.
백당나무는 꽃 형태가 아름다워 나도 모르게 막연히 원예종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렇게 야생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걸 직접 목격하고 나니 놀랍기만 하다.
축령산에서 서리산으로 가기 위해서 일단 안부로 내려서야 한다.
이 안부의 이름이 절고개다.
절고개 주변은 큰 나무들이 없어서 시야가 시원하게 터진다.
안내문을 보니 이 지역은 경기도에서 자연학습원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자생하고 있던 커다란 나무들을 다 베어버리고 넓은 면적에 어린 구상나무와 주목 등 몇 가지 나무를 심어 놓은 모양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본래의 자연미를 살려가면서 자연학습원을 조성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싶지만 봉황의 뜻을 내가 어찌 헤아리랴.
어쨌거나 이 자연학습원 조성 덕분에 산에서 구상나무 열매를 처음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항상 사진에서만 보면서 그 생김새와 색감에 마음을 빼앗겼었는데 막상 실물을 보니 사진 속에서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나무가 키도 크지 않은데 한 나무에 열매가 많이도 열렸다.
구상나무의 열매도 소나무의 열매처럼 구과인데 열매가 하늘을 향해 곧게 선 모습과 열매의 색, 열매 겉에 있는 비늘 모양의 돌기가 눈길을 끈다.
절고개를 지나 첫 번째 봉우리에서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길이 훤히 드러난다.
완만한 축령산의 산세가 무척이나 여유로워 보인다.
햇살이 곱고 하늘이 더없이 푸르니 산속의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속도가 눈에 보일 듯하다.
날씨와 산세의 조합이 아주 환상적이다 보니 그 속에 폭 파묻혀 한 동안 혼곤한 잠 속에 빠져들고 싶은 욕구가 저절로 인다.
아, 이럴 때 나처럼 여유 아닌 여유를 부리고 있는 지인 하나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자연과의 친화만으로 정서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인가보다.
축령산에서 서리산까지의 등산로는 거의 신작로 수준이다.
안부와 봉우리가 번갈아 나타나기는 하지만 길이 넓고 편평하여 걷기에 아주 편하다.
이 길도 자연로가 아니고 절고개에 조성된 자연학습원의 연장인 모양이다.
축령산에서 서리산으로 넘어가는 길에 몇 가지 쥐오줌풀 종류를 만났다.
한 산에서 기본종 이외에 이렇게 여러가지 종류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우선 광릉쥐오줌풀은 다른 쥐오줌풀들에 비해 잔꽃이 많이 달린다.
총포는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다.
넓은잎쥐오줌풀은 총포가 마치 잎처럼 생겼다.
다른 쥐오줌풀류는 잎 두 개가 마주나는데 설렁쥐오줌풀은 잎이 삼출엽이다.
이렇게 기본종 이외의 것까지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으려면 평소의 공부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식물의 종류가 하도 많다 보니 그 특징들을 아무리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다고 백과사전 같은 도감을 들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펼쳐보기도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메모 노트의 활용이다.
오늘의 이 성과도 다 이 메모 노트의 덕분이다.
노트에 적힌 쥐오줌풀 종류에 대한 구별 포인트를 보면서 즉석에서 눈앞에 있는 식물과 비교를 해보니 그 특징이 바로 확인된다.
문제는 메모 노트를 충실히 작성하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열심히 적어나가다가도 이 일이 식상해지면 한 동안 그냥 내팽겨쳐두곤 했었는데 다행히 쥐오줌풀에 대해서는 최근에 적어둔 게 있었다.
오디를 달고 있는 나무가 보여 잎을 관찰해본다.
뽕나무, 돌뽕나무, 꾸지뽕나무, 가새뽕나무는 잎이 모두 갈라지고 산뽕나무는 갈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건 당연히 산뽕나무겠거니 하고 돌아서려는데 잎 끝이 눈에 띈다.
잎 끝이 꼬리처럼 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꼬리뽕나무다.
이곳에는 층층나무가 상당히 많다.
안내문 설명에 의하면 숲 속에 길이 나거나 공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들어와 자란다 하여 층층나무는 '숲길의 파수꾼' 이란 별명을 갖고 있으며, 같은 나무끼리의 경쟁을 피하고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제압하기 위해 한 그루씩 따로 떨어져 자란다 하여 '숲속의 무법자' 란 별칭도 아울러 갖고 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이 두 산에 현재 개화중인 나무의 꽃은 거의 대부분이 흰색이다.
흰털고광나무, 층층나무, 쪽동백나무, 털인가목조팝나무, 털팥배나무, 백당나무, 노린재나무 모두 흰색의 꽃을 피우고 있다.
서리산 정상(832m)에는 태극기가 없다.
대신 단정한 정상석과 돌탑이 이보다 못한 축령산 정상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산해야 할 곳 이름이 '제1주차장' 인데 팻말을 보니 제1주차장이 내가 왔던 길 쪽으로 화살표를 보내고 있다.
때마침 올라온 등산객에게 물으니 그 화살표대로 가도 되고 그냥 직진해서 가도 된다고 한다.
당연히 왔던 길을 되짚어 가기 싫어 직진하기로 한다.
서리산 정상으로부터 하산길 쪽으로 면적 약 13,000평방미터, 길이 700미터의 지역을 철쭉동산이라 한다.
이곳의 철쭉은 키가 커서 터널을 이루고 있다는데 지금이야 물론 꽃이 진지 오래다.
개인적으로 철쭉 꽃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고 있기에 개화기가 이미 지났다는 사실에 아무런 아쉬움도 없지만 철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개시기에 한 번쯤 찾아와 감상하기에 손색이 없는 장소 같다.
비짜루도 옆으로 누운 채 꽃을 피우고 있다.
비짜루는 어느 정도 컸다 하면 어김없이 옆으로 누워 있는 모습만 관찰되는 걸 보면 원래 그렇게 자라는 식물인가보다.
작년에는 참 구경하기 힘들었던 민백미꽃이 올해는 어느 산엘 가나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그다지 귀한 야생화는 아닌 듯싶다.
꽃대 끝이 불염포 옆으로 삐져나와 있는 점박이천남성 하나를 발견했다.
바람에 일시적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닐까 살펴봤는데 원래부터 이렇게 자란 것이었다.
어떡하든 좀 튀어서 누군가의 눈에 들고자 하는 연예인 지망생쯤 되는 건가.
축령산과 서리산에는 점박이천남성 총 본부나 되는 듯이 산 전체에 이들이 산재해 있다.
다른 종류의 천남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외에 하신길에 만난 것들은 사진과 이름만 올린다.
할미밀망
까치고들빼기
구름패랭이꽃
인동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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