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만 되면 으레 야생화 출사를 나가곤 했지요.
어제는 모처럼 그런 취미생활을 빼먹고 나들이를 갔습니다.
이전에 보아둔 저수지를 현장 직원들에게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어 같이 그곳으로
민물낚시를 가기로 하였거든요.
리비아는 물이 아주 귀한 나라입니다.
지중해를 머리에 이고 있어 해수는 풍부하니 이 말이 틀릴 수도 있겠네요.
식수나 농,공업용수 등의 담수가 부족하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겁니다.
오직하면 지하에 있는 방대한 수원에서 물을 퍼올려 거대한 관로를 통해 주변 도시로
이를 보내는 소위 대수로작업을 하기에 이르렀겠습니까?
덕분에 우리나라의 동아건설과 대한통운이 쏠쏠한 재미를 보았지요.
그러다 보니 육상에 물이 고여 있는 장소를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폭우나 좀 내리면 그러싸한 배수시설이 없는 이 나라에서 빗물이 도로나 길가 등지에
한 동안 고여 있는 게 우리가 볼 수 있는 담수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평소 목말랐던 토양이 이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여 그 생명력이 길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누군가로부터 이 나라에도 저수지가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지인을 통해 그 위치를 대략 파악한 뒤 혼자 찾아가봤지요.
정말 있더군요.
긴 콘크리트 제방으로 빗물을 가두워둔 것입니다.
이곳에서 수십년 생활한 한국인 말에 의하면 이 저수지에서 밤낚시까지 했었다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현장직원들과 어제의 나들이가 성사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낚시가 끝난 후 현장 직원들과 헤어져 인근 산정에 올라 저수지를 조망해 본 겁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특출한 광경은 절대 아닐텐데도 이곳에서는 이런 저수지 하나 봤다는
것 조차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수초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수초가 가져다 주는 저수지 이미지에 익숙한 제게는 이런 밋밋한 물가가 다소 낮설더군요.
우측 제방 위쪽에 있는 갈대밭 정도가 그나마 저수지 기분을 돋구어주고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 이곳이 나들이 장소로 손색이 없는지 이날도 많은 차들이 수시로 저수지를
들락날락거렸습니다.
저수지 북단에는 이 나라에서 아주 흔하고 제가 임의로 파랑고무나무라고 작명한 유칼립투스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들이 드리우는 그늘이 현지 상춘객들에게 좋은 유혹이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춘래불사춘 같은 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에서처럼 사람들 감각의 허점을 이용해
슬그머니 도래하고 있거든요.
환경만 좋으면 100미터까지도 자란다는 유칼립투스들이 저수지를 굽어 보며 파란 하늘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방담을 하고 있습니다.
밀려 오는 잔물결이 바람의 방향을 일러줍니다.
내 관심은 그보다는 그들과의 소통통로였는데 물결은 끝내 제게 그에 대해 아무런 귀띔도 하지 않습니다.
이곳 사정을 대충 알고 왔을 현장 직원들이 부임 시 설마 민물낚시 채비까지 챙겨 오지는
않았을 거란 지레짐작이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역시 꾼들은 언제 어디서나 준비가 되어 있더군요.
낚싯대 한 대를 펴는 걸 보고 직원 한 명과 같이 인근 마을로 돗자리를 사러 갔습니다.
운 좋게 그곳에 섰던 장터에서 돗자리 하나를 사서 돌아왔는데 그새 남은 직원들은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어두었더군요.
고기 한 마리가 낚싯대를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합니다.
낚싯대가 총알같이 끌려 들어간 것으로 보아 상당히 큰 고기였을 거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습니다.
끝내 낚싯대는 회수하지 못했지만 놓친 물고기는 그들의 무용담 속에서 점점 자라났습니다.
그러다가 물고기 크기가 저수지 크기보다 더 커지지 않도록 적당히 하자는 누군가의 제안에
한 바탕 폭소를 날린 것으로 그 낚싯대에 대한 미련을 접었습니다.
그 이후 남은 낚싯대로 향어 두 마리를 잡았는데 첫 번째 향어는 몸체에 묻은 흙을 씻어내다가
미끄러워 놓쳐버렸고 사진 속의 것은 두 번째 잡은 겁니다.
기념촬영만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설마 이곳에 고기가 있을까 했는데 이날의 경험은 상당수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을 거란
추정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저수지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몰라도 초기에 누군가가 치어를 방류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수한 빗물만으로 조성된 저수지에 이런 물고기가 있을 리가 없을 겁니다.
현지인들은 바다낚시는 종종 하지만 민물낚시는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도 물론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은 우리 일행뿐이었습니다.
현장이 멀어 2시경 철수하기로 하고 출발 전에 기념사진 몇 장 찰칵~ 했습니다.
모자와 선클라스가 우리 현장 직원들의 출중한 외모를 가리고 있습니다.
밝은 데서 보면 모두들 장동건, 원빈, 이병헌, 송승헌입니다.
아닌가?~~~~
아님 말구.
저는 목 위가 피사체로는 전혀 적합하지 않기에 직원들의 한 방 권고를 극구 뿌리쳤답니다. ^^
갈 길이 먼 현장 직원들 먼저 보내고 홀로 근처를 배회했습니다.
사진 속의 것은 제방 및 저수지 감시탑 정도로 보이는데 이전 방문 시에도 모양이 특이해서
한 번 찍어봤던 건데 그때에 이어 이날도 역시 사진의 수평을 제대로 못 맞췄습니다.
감시탑 좌측에 있는 건물이 기울어져 있네요. ㅠㅠ
네? 사진은 찍는 사람의 마음의 거울이라구요?
에고......
감시탑을 뒤쪽에서 찍어봤습니다.
비상하는 가오리 같습니다.
리비아에서 언제까지 체류하게 될지 알 수는 없으되 열악한 환경에서 신고(辛苦)하고 있는 우리
현장 직원들의 미래 속에도 저런 비상 이미지가 상존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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