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천마산에서 만난 한 야생화 애호가로부터 안양에 있는 어떤 산에 가면
변산바람꽃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지요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어제 갑자기 그 생각이 나더군요.
변산바람꽃 하나 찍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편도 세 시간도 더 걸리는 그곳까지
가는 게 아무래도 허세인 거 같아 망설이다가 마침 시간도 비고 하여 큰 맘 먹고 야생화
광팬 흉내 한 번 내보기로 했지요.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 블로거가 변산바람꽃 군락지 위치를 약도까지 곁들여
자세히 설명해놓았더군요.
덕분에 크게 해매지 않고 원하는 장소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기에 배낭도 없이 디카만 하나 달랑 주머니에 넣고 갔지요.
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진입로를 털레털레 걸어 목적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다수의
방문객들이 변산바람꽃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더군요.
큰절을 넘어서 아예 그 작은 변산아씨들 앞에 복배까지 하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경배가 너무 심하여 한 번 엎드린 후에는 도통 일어날 줄들을 모르더군요.
이전의 경험으로 그 곁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 게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돌아다녔지요.
이 변산아씨 숭배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나중에 다시 오면 되니까 뭐 계곡을 좀 더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 하는 수고만 감수한다면 큰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은 때가 좀 일러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되 군락지라는 이름이 다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체수는 그다지 많은 편이 아니었고 분포 면적도 별로 넓지 않더군요.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변산아씨들이 선답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느라 진력해
피곤한 몸을 모로 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일부는 세상구경을 서두른 죄로 무참히 허리나 목이 꺾이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더군요.
주변환경은 소위 애호가들의 잦은 발길로 반들거릴 정도로 다져져 풀도, 낙엽도 없는 맨땅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일부 애호가들이 측은지심이 들었는지 제대로 서 있는 아씨들 주변에도 잔돌을 갖다 놓거나
이끼를 깔아준 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알몸을 들키기라도 한 듯 변산아씨들이 수줍어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연민의정이 샘솟더군요.
산을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아씨들에게 이전의 행복을 되찾아주는 유일한
방도는 이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뭇 한량들이 기생 찾아다니듯 무시로 출입하는 일을
금지시키는 일뿐이라는 것이었지요.
오죽하면 나라도 아씨들 안녕을 지켜주기 위해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을까요.
미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지켜지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에게나 꽃들에게나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럽지요.
어찌 보면 진정한 야생화 애호가는 거의 없고 광적인 사진작가만 있는 건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나라고 그런 자칭 애호가의 범주 밖에 고고하게 머물고 있다고 자부할 자신은
없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야생화의 건강보다 멋있는 사진을 우선해 그간 적잖은 비행을
서슴치 않고 저질러 왔을 테니까요.
그런 연유로 그간 블로그에 이런 류의 글 거의 올리지 않았던 건데 이번에 갔던
장소에서는 그 참상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자성 겸 소망을 이 정도로 피력해봅니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란 문제는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네요.
아래 정도면 변산아씨들 피로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겁니다.
0.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은1993년에 전북대학교 선병윤 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채집해 발표한 한국특산종
이기에 학명(Eranthis byunsanensis B.Y. Sun)에 변산이란 이름과 이 교수의 이름이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변산이지만 실제로는 마이산,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등지에서도 자라고 있다네요.
개인적으로 변산바람꽃과는 이번이 생애 첫 만남인데 외관만 보아서는 너도바람꽃과 쉽게
구분이 되지 않더군요.
그러나 사진으로 보면 꽃잎의 꿀샘과 꽃밥의 색이 다릅니다.
너도바람꽃의 꿀샘은 노란색이고 꽃밥은 분홍색인데 비해 변산바람꽃은 각각 연록색과
연한 자색입니다.
아래 두 장의 사진 속 식물은 차례대로 너도바람꽃과 변산바람꽃입니다.
둘 다 일반적인 꽃잎처럼 보이는 건 꽃받침이라는 점만 유의한다면 사진 상으로 둘을
구분해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이하는 이번에 디카에 모시고 온 변산아씨 자태들입니다.
대부분 해를 등지고 있거나 그늘 속에 피어 있더군요.
분류하기 귀찮아서 그냥 찍은 순서대로 올립니다. ^^
0. 노루귀
다른 장소에 노루귀 몇 포기가 막 돋아났더군요.
짙은 분홍색 노루귀도 있던데 포복자세를 취한 한 애호가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기에
그냥 와버렸습니다. ㅠㅠ
노루귀야 뭐 다음에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찍을 기회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0. 현호색
현호색은 딱 한 포기 눈에 띄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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