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변산바람꽃
경기도 소재 모 고산에도 변산바람꽃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올해 처음 알았습니다.
선답자들의 인터넷 포스팅을 살펴보니 이곳 변산바람꽃의 개화기가 지금쯤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래서 이틀 전 대략적인 서식지 위치만 파악하고 이 귀한 녀석을 찾아 나섰습니다.
산이 높아 등산이 쉽지는 않았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지요.
한 장소에 이르니 변산아씨들이 이제 막 무더기로 돋아나고 있더군요.
개화 초기인데도 개체수가 상당히 많은데 앞으로 만개했을 때의 풍경을 그려보자니
하얀 소금 밭이 연상됩니다.
그것도 꽤 넓은 면적의 소금 밭이지요
수도권에서 변산바람꽃 서식지로 유명한 수리산의 것들보다는 언뜻 보기에도 야성이
더 뭍어나더군요.
표고가 높은 곳에 자생하고 있는 까닭에 열악한 기상 조건을 견뎌내며 자라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자연환경을 감안하니 이 아씨들의 가녀리면서도 앙증맞고 다소곳한 자태가 그렇게
강건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이들과의 오랜 대면 중에 문득 이들이 이 넓은 산에서도 유독 이 한 장소에서만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는 사실에 상도하니 이번에는 불현듯 연민의 정이 듭니다.
이 복합적인 감정이 작은 소회를 자극하기에 여기에 간단히 적어 봅니다.
시인 김춘수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던 "그"에게
이름을 불러주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게 했다지.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자연 현상을 구체적인 사물로
만들 수 있었다는 말일 거라 짐작이 돼.
그 사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지는 "나"의
품격에 달려 있다는 게 문제일 거야.
변산에서 처음으로 네 동료들에게 변산바람꽃이란
이름이 주어졌을 때,
네 귀에는 긴 은둔과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을 거야.
과객들의 눈과 가슴 속에 담겼던 몸짓이 그때부터는
그들의 차가운 손길과 카메라 속에 갇힌 "의미"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니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지만 득명 이전의 여기지
이후의 여기는 아니지.
부디 이름표를 달고라도 여기서 견뎌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 소망의 성취 여부는 네 의지에만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메마른 현실이 서글프긴 해.
혹여 또 다시 몸짓이 되기 위해 다른 정착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나려거든
부디 고적한 여행이 되기를 바라.
0. 너도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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