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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러리-풀꽃나무

식물 탐사 일기 - 천마산

by 심자한2 2008. 4. 26.

 

비가 내리기는 해도 양이 많지 않을 거라 해서 우산 챙겨 들고 천마산으로 향했다.

들머리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도중에 있는 야산에 분홍색 꽃을 피운 병꽃나무 종류가 보인다.

올라가서 보니 소영도리나무다.

평소 같으면 병꽃나무이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쳤을 텐데 수일 전에 병꽃나무 종류 구분법을 좀 공부한 덕을 봤다.

산소영도리와 달리 소영도리는 꽃받침통에 털이 있다.

둘 다 다른 병꽃나무 종류와는 달리 꽃이 분홍색이다.

 

내친 김에 도로로 내려서지 않고 그냥 산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평소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봄이면 약초꾼들만 가끔 드나드는 곳이라서 길이 따로 나 있지는 않아 불편하지만 그만큼 훼손되지 않은 야생화들이 의외로 나타나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기로 한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야산은 선밀나물을 먼저 선물로 내놓는다.

올해 처음 만나는 녀석이다.

꽃자루가 긴 연록색 꽃이 구형으로 모여 피기 때문에 사진 찍기가 좀 까다롭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밀나물이 있는데 밀나물은 여름꽃으로 분류되며 선밀나물보다 좀 더 늦게 핀다.

 

제비꽃 하나가 나타나는데 제비꽃 같기도 하고 호제비꽃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잎의 모양이 좀 달라 보인다.

일단 사진을 찍고나서 조사해보니 흰털제비꽃이다.

흰털제비꽃은 잎자루에 흰색의 퍼진 털이 빽빽히 나는 점이 특징이다.

 

콩제비꽃도 드디어 첫선을 보였다.

제비꽃은 종류도 많지만 그 개화시기도 조금씩 다르다.

한참 세를 과시하던 남산제비꽃, 태백제비꽃, 단풍제비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자취를 감춘 게 아니고 꽃이 지고 한참 열매를 맺는 중이다.

 

야산이긴 하나 경사도가 만만치 않고 사람의 발길에 다져지지 않은 낙엽층 때문에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고 미끄러지기도 한다.

군데군데 피나물이 풀밭에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주고 있다.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액체가 나온다 하여 피나물이라 부르는데 누구의 한 맺힌 절규를 대변하기 위해 피나물은 이맘 때쯤이면 그리도 온 산에 만발하는 건지.

피나물은 꽃대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데 꽃대가 뿌리에서 직접 나오는 매미꽃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다.

 

천남성이 눈에 띈다.

잎이 하나이고 작은잎이 5개이면 천남성인데 자료의 설명에 의하면 생육환경이 좋지 않을 경우 잎이 3개만 달리기도 한단다.

주변을 살펴보니 잎이 3개, 5개는 물론 4개짜리도 있다.

 

홀아비꽃대도 여럿 보인다.

 

눈을 드니 저만치에 어떤 나무가 흰 꽃을 잔뜩 매달고 있다.

일단 사진만 열심히 찍고 나중에 동정해 보니 야광나무다.

작년에 보았던 나무이건만 그 정체에 대해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일 년 동안 습득했던 풀꽃나무들에 대한 지식은 다음해에 도대체 얼만큼이나 살아 있는 걸까?

어떤 건 한 번 익히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데 어떤 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 까만 장막이 쳐진다.

 

비가 단속적으로 내리기에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느라 꽤나 귀찮다.

줄딸기에 포커스를 맞추는데 액정에서 배터리리 표시등이 깜빡인다.

배터리는 어젯밤 내내 충전하였기에 꽉 차 있을 것이고 그런 경우 계속해서 사진을 찍어도 3시간 정도는 버텨주는데 오늘은 한 시간 내외밖에 찍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우중에 없는 빛을 끌어 모으느라 녀석이 일찌감치 진력한 것인가?

그냥 대충 버텨보려 하는데 이번에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닫힌다.

배터리가 다 되었다는 얘기다.

이런, 아직 목적지인 천마산에는 한 발도 들여놓지 못했는데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오늘 따라 여분의 배터리를 가져 오지 않았기에 별 수 없이 일단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집에 간 김에 싸갔던 점심을 풀어놓고 그것으로 한 끼를 떼운다.

다시 산행에 나설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른 배터리를 카메라에 넣고 과감히 일어선다.

아까 중단했던 지점으로 다시 가니 그새 하늘이 말짱해졌다.

 

누군가가 피나물 여러 그루를 캐서 비닐봉투에 잔뜩 담아놓고는 그대로 버리고말았다.

기왕에 가져가려던 것이었으면 집에 가서 잘 키워나 볼 것이지, 아무리 말 못하는 식물이지만 저리 못 살게 구는지 모르겠다.

급경사를 돌아드니 평지가 나타난다.

 

앵초가 간간히 눈에 띈다.

작년에 산에서 처음으로 앵초를 보았을 때는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앵초는 원예종으로 화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야생화였던 것이다.

 

이곳에도 며칠 전 갔었던 명성산에서처럼 매화말발도리와 병꽃나무가 지천이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의하면 붉은병꽃나무는 붉은색 꽃이 잎겨드랑이에서 1개씩만 달리고 여러 개 달리는 것을 골병꽃나무라고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골병꽃나무를 그냥 붉은병꽃나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이 틀릴 수도 있기에 이걸 야생에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데 주변엔 온통 병꽃나무들 뿐이어서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더 이상 특별한 식생이 눈에 띄지 않기에 도로로 내려와 천마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3시가 다 되어 가니 좀 서두르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계곡을 탐방로로 택했다.

그새 얼레지,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큰괭이밥 등은 모두 활짝 피었던 꽃들을 거두었다.

계곡에는 온통 는쟁이냉이 투성이다.

이렇게 개체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이 녀석의 생명력이 강인하다는 걸 의미하리라.

미나리냉이는 어쩌다 눈에 띈다.

내려올 때 보니 미나리냉이는 원래 물가보다는 맨 흙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는쟁이냉이의 파죽지세에 주눅이 들어 쫓겨났는지 등산로 주변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는쟁이냉이의 잎은 둥근 달걀형이고 미나리냉이는 깃꼴겹잎이라서 그 둘은 쉽게 구분이 된다.

 

한쪽 구석 바위 밑에 방사형의 이상한 꽃을 피운 게 눈에 띈다.

다가가서 보니 꽃이 아니라 열매다.

잎 모양으로 보아 너도바람꽃인데 열매가 꽃만큼이나 예쁘다.

 

바위 틈새에 족도리풀이 하나 보이는데 잎에 얼룩이 있다.

언뜻 무늬족도리풀이란 이름이 떠오른다.

개족도리풀도 잎에 무늬가 있는데 잎 색이 무늬족도리풀에 비해 진한 것 같다.

잎을 들춰보니 바다에 꽃이 세 송이 있는데 꽃잎에 점이 많이 박혀 있다.

모르긴 해도 무늬족도리풀이란 이름은 잎의 무늬가 아니라 꽃잎에 있는 이 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사초류도 세 개 만났는데 하나는 낚시사초였고 또 하나는 개찌버리사초였는데 다른 하나는 끝내 동정해내지 못했다.

낚시사초는 줄기 끝에 수꽃이삭이 달리고 중간에 암꽃이삭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서 한 번 익히면 잘 잊혀지지 않는 것 중 하나다.

가느다란 물체는 정말 사진 찍기가 힘들다.

수십 장 찍은 것 중 건진 건 한 장뿐이다.

개찌버리사초는 작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서인지 도감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수목원에서 먼저 만났던 벌깨덩굴이 야생에서 드디어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명성산에서 보았던 풀솜대가 여기서도 똑 같은 꽃대를 올리고 있다.

둥굴레는 아직 꽃망울을 매달고 있지 않다.

 

큰괭이밥의 위로 솟아 있는 열매는 마치 푸른 촛대 같다.

 

만주바람꽃도 두 개의 열매를 팔자 형태로 매달고 있다.

열매도 미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만주바람꽃의 열매는 너도바람꽃 곁에 서기 좀 민망하다.

 

드디어 새로운 봄꽃을 하나 또 만났다.

당개지치다.

잎은 어긋나는데 줄기 위쪽에서는 마디 사이가 아주 짧아 5~6개가 돌려난 것처럼 보인다.

그 위로 환형 장식품 같은 보라색 꽃을 밀어내놓고 있다.

꽃잎 밖으로 길게 나와 있는 암술대도 그렇지만 꽃받침에 잔뜩 나 있는 털도 인상적이다.

 

애기괭이눈도 산괭이눈도 종지그릇에 빨간 구슬 같은 열매를 잔뜩 담고 있다.

금괭이눈은 꽃도 늦게 피더니 아직도 창고문을 굳게 잠그고 열매들에게 세상구경을 시키지 않고 있다.

순서를 지킨다는 건 자연계에서 묵시적인 철칙이다.

그래야만 상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리라.

공생을 위한 자연의 질서가 돋보인다.

 

애기나리의 이제 갓 피어난 꽃이 싱싱하다.

카이저 수염 같이 갈라진 암술머리와 노란 꽃밥이 멋을 더한다.

산 아래쪽에서는 아직 개화전이던데 이상하게도 산 위쪽에서 먼저 꽃을 피웠다.

 

연복초도 보름쯤 전에 한 번 눈에 띄더니 그 이후로 군데군데에서 자주 목격된다.

꽃잎 비를 맞은 채 함초롬히 피어 있는 자태가 자못 숙연한 느낌을 준다.

자연의 질서는 존중해야 하지만 떠나는 자의 흔적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적당한 높이까지 오르다 시간이 늦어 하산하기로 한다.

언제나처럼 내려올 때는 등산로를 이용하기로 한다.

계곡을 가로지르려는데 물 위에 꽃들이 무수히 떠 있다.

바위 위에 있는 걸 하나 집어들었는데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키가 큰 단풍나무만 보일 뿐이다.

고맙게도 순간 이게 바로 고로쇠나무 꽃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준다.

고로쇠나무 꽃은 수목원에서 이미 관찰한 바 있고 고로쇠나무도 단풍나무과이라는 사실이 연상작용을 제대로 해낸 모양이다.

고로쇠나무 잎도 단풍나무처럼 5~7개로 갈라지는데 단풍나무 잎은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는데 반해 고로쇠나무는 밋밋하다.

 

떠나야 알 때를 알고 미련 없이 자리를 내주는 모습은 식물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마지막까지 몸 담았던 계곡을 위해 장식으로 잠시 머물러 주는 여유가 저 꽃들에게 있다는 게 부럽다.

 

이외에도 내려오면서 귀룽나무, 금붓꽃, 꾸지나무, 나도개감채, 말냉이, 물푸레나무, 털장대, 산냉이, 산옥매, 새모래덩굴, 섬남성, 유럽나도냉이, 죽단화, 털회잎나무 등과 조우했다.

(글 쓰기 힘들어서 얘들에 대한 건 생략한다. ㅠㅠ.  나중에 각 식물별로 별도의 항목으로 올리기로 한다.)

 

하산을 완료하고 다시 저수지 길을 걷는데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다.

길가에 자라고 있는 야광나무, 매화말발도리, 귀룽나무, 조팝나무의 하얀 꽃들이 어둠이 내리자 더욱 빛을 발한다.

서로 누가 더 하얗고 밝은지 견주는 선의의 경쟁 덕분에 어둠이 잠시 보조를 늦춘다.

그 중 압권은 역시 야광나무이다.

밤에도 빛을 낸다 하여 붙여진 그 이름이 과연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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