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는 언제나처럼 홍릉수목원에 갔다.
홍릉수목원은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다.
3월초부터 일요일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갔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으로 있으니 개근상쯤 노려볼 만하다.
에고, 그런데 이게 왠 일이란 말인가.
조류독감 때문에 휴원이라네.
이렇게 되면 다음주까지 보름 동안 수목원 내 식물들을 관찰할 수 없게 된다.
그 기간이면 많은 풀꽃나무들이 폈다 져버릴 텐데, 아쉽기 그지 없다.
이곳은 동물원도 아닌데 조류독감을 휴원의 명분으로 내세운 게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어쩌랴,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왕복 세 시간 정도를 허비한 것이 허망해서 동네 산이라도 잠시 돌아보기로 했다.
이번엔 오남중학교 뒤쪽으로 올라 복두산 정상과 제1봉 사이의 안부에서 절 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집에 와 점심을 먹고 잠시 눈 좀 붙인다는 것이 몇 시간을 자버렸다.
감기 기운이 있는 몸이 스스로 자구노력을 기울인 모양이다.
4시 반 경 늦은 출발이 발걸음에 속도를 더해 놓았지만 들머리에서 미나리아재비 등을 만나는 바람에 멈춰서지 않을 수 없었다.
미나리아재비는 이 곳 저 곳에서 간간히 보았지만 사진 찍기가 까다로워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는데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다.
녀석이 길쭉해서 배경으로 잡히는 잡풀들 때문에 내 실력으로는 사진 속에서 녀석의 형체가 뚜렷하게 부각되질 않는다.
꽤나 성가셨지만 갖은 노력 끝에 그런대로 흡족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진에 있는 게 아니고 이 녀석을 당연히 미나리아재비인 걸로 알고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자료를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미나리아재비의 잎 갈래조각에는 톱니가 없는데 사진 속의 것은 뚜렷한 톱니를 보이고 있다.
많기도 많은 미나리아재비 종류를 인내심 가지고 모두 조사해 본 후 최종적으로 왜미나리아재비가 경합을 벌였다.
그런데 왜미나리아재비는 계룡산과 강원도 이북에 난다고 되어 있고 취산화서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을 들어 대상에서 탈락시켰다.
결국은 산미나리아재비로 동정하긴 했는데 자료에 산미나리아재비의 잎에 대한 설명이 누락되어 있어서 그리 개운치는 않았다.
산미나리아재비는 취산화서에 꽃이 피고 꽃대가 길며 줄기에 퍼진 털이 있고 꽃받침잎에도 털이 있다는 점이 사진과 일치했다.
근처 묘역을 멀리서 바라볼 때는 특별히 눈에 드는게 없더니 막상 그 안으로 들어서니 야생화 두엇 정도가 눈에 띈다.
구슬붕이와 장대나물과 산솜방망이로 보이는 것들이 그것이다.
장대나물은 참장대나물과 유사한데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없는 점이 다르다.
그런데 구슬붕이는 유사종이 큰구슬붕이, 봄구슬붕이, 좀구슬붕이 등 여섯 가지나 된다.
식물체를 살펴 보니 큰구술붕이와 달리 잎 뒤에 자줏빛이 돌지 않아 당연히 구슬붕이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유사종들이 많으니 하나 하나 다 조사해보지 않을 수 없다.
백두산구슬붕이야 백두산에만 살고, 좀구슬붕이는 뿌리잎이 선형이며, 봄구슬붕이는 꽃받침통이 화관의 1/3 정도인데다 부화관이 반원형이고, 고산구슬붕이는 뿌리잎이 도란형이다.
사진 속 식물은 꽃받침통이 화관의 1/2 정도이고 꽃 색이 연한 자주색이며 뿌리잎이 난형인지라 구슬붕이가 맞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구슬붕이의 다른 몇 가지 특성은 사진 속에 나타나지 않아 다음에 다시 한 번 그 자리를 방문해야 할 것 같다.
산솜방망이로 보이는 것은 찍어온 사진이 부실한 탓에 도감의 설명과 대조해 보기가 어려워 일단 동정을 미뤘다.
산을 오르다가 사초 종류 둘을 만났다.
하나는 개찌버리사초인데 다른 하나는 아무리 도감을 뒤져봐도 유사한 게 눈에 띄지 않아 역시 동정을 포기했다.
사초 종류는 많기도 하고 모두가 비슷비슷해서 참 어렵다.
리기다소나무와 소나무의 암,수꽃을 찍어봤는데 사진을 찍다 보니 리기다소나무의 꽃이 소나무의 꽃보다 더 커 보였다.
이거야 뭐 대상 식물의 크기에 따른 차이일 수도 있으니 둘 간의 차별화된 특성으로까지는 고려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제1봉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 후 절 쪽으로 하산한다.
며칠 전에 절 쪽 하산길 초지에서 보았던 은난초 종류가 지금쯤은 꽃을 피웠으리라 짐작하고 그걸 관찰하기 위해서다.
내심 은난초와 유사종인 꼬마은난초, 은대난초 모두가 눈에 띄기를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그곳에 살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은대난초뿐이었다.
은난초와 은대난초는 잎의 갯수로도 구별이 되지만 잎의 갯수야 뭐 가끔 실물과 도감의 설명이 틀리는 경우도 있기에 포의 모습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해 보니 그곳에 핀 것들은 모두 다 첫번 째 포가 꽃대보다 훨씬 더 길었다.
참고로 잎의 갯수를 세어 보니 모두 7개가 넘었기에 은대난초의 특성과 일치했다.
꼬마은난초는 잎의 갯수가 1~2개이고 은난초나 은대난초와는 달리 꽃잎이 벌이지는 특징이 있다 하는데 아직까지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하산하다가 수영으로 보이는 것 사진을 찍어 왔는데 도감 설명에 의하면 수영의 꽃자루는 짧은 녹갈색이라 하는데 접사한 사진 속에서는 꽃자루가 길고 붉은색이다.
더군다나 도감의 사진 속에서 보이는 꽃받침잎은 녹색인데 내가 찍은 사진 속에서는 꽃받침잎마저 붉은색이다.
꽃자루의 장단이야 관찰자의 주관적 견해가 반영되는 것이니 일단 무시한다 해도 꽃자루나 꽃받침의 색이 문제다.
내가 사진을 찍은 녀석은 이제 막 꽃을 피운 것으로 보이는데 시간이 지나면 혹시 꽃자루나 꽃받침이 녹갈색으로 변할지도 모르기에 좀 더 관찰이 필요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