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귀한 휴가 중이긴 하나 아직까지는 일정이 빡빡하지 않아 어제는 나들이를 나서봤습니다.
조금 귀찮다고 미루다보면 아무래도 산행은 단 일 회도 기록하지 못 한 채 그대로 리비아로
다시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서였지요.
목적지는 동네 근처에 있는 천마산이었습니다.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등산 코스도 이젠 지명도가 상당히 높아진 모양인지 꽤나 많은 등산객들과
야생화 출사객들이 있었습니다.
그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은신처가 다수의 인간들에게 노출된다는 게 각종 야생화들에게는
그만큼 그들의 미래에 그늘이 드리워진다는 걸 의미할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작년에 나와 인연을 맺었던 봄꽃들이 그 해후를 소중히 여겼던지 제철이 지났음에도 차마
지지를 못 하고 저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그 단성이 너무나 고마워 만나는 녀석들마다 한참씩 머물다 왔더니 거리로 보면 그다지 길지도 않은
등산로 주변에 펴 있는 야생화 탐사에 무려 8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레지와 미치광이풀은 한참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이미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
주었어야 할 노루귀, 꿩의바람꽃, 만주바람꽃, 큰괭이밥 등등도 몇몇 잔류병을 남겨 제게
굳이 하직인사의 예를 갖추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꽃들을 보아도 선뜻 디카에 손이 가지 않더군요.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들었고 무얼 찍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생육환경이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리비아 식물들을 한 동안 보아왔던지라 아마도 그새
우리나라 풀꽃에 대한 제 감각이 뭔가 달라져도 달라진 모양입니다.
특별한 기준 없이 사진을 찍은 순으로 올리기로 합니다.
1. 산괴불주머니
2, 앉은부채
봄이 되면 가장 먼저 피어나는 앉은부채이기에 지금은 모두 아래 사진에서처럼 잎만 무성하였습니다.
당연히 앉은부채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초부터 접었었지요.
그런데 우연히도 산 7부 능선쯤에서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녀석 하나를 만났지요.
대개는 들쥐 같은 산짐승들의 먹이로 전락했을 텐데 이 녀석은 그 수난의 현장에서 간신히 벗어난 행운아입니다.
꽃은 수꽃입니다.
3. 개별꽃
4. 산개별꽃
정말 오랜 시간 이 녀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자료를 뒤져봤지만 끝내 석연치 않습니다.
국표식에서 여러 가지 개별꽃 종류룰 다 살펴 보니 가장 유력한 휴보자로 큰개별꽃과 산개별꽃이 남더군요.
큰개별꽃은 꽃잎 갯수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꽃잎 끝이 둔하다고 하고 꽃밥은 황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아래 사진과는 일치하지 않았지요.
국표식에 사진이 3장 올라 와 있던데 그 중 하나는 꽃잎 끝이 V자로 패여 있고 다른 둘은 아래 사진과 유사합니다.
즉, 서로 다른 사진을 큰개별꽃이라고 올려 놓은 겁니다.
인터넷에 올라 와 있는 사진들도 구구각색입니다.
꽃잎 끝이 패여 있는 것과 없는 것, 꽃잎 갯수가 5개인 것과 그보다 많은 것 등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인터넷 사진을 살펴 봐도 꽃밥이 황색인 것은 없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큰개별꽃은 전국의 산지에서 자란다고 하던데 설마 그 많은 사진 중에 꽃밥이 황색인 게 없을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국표식 설명이 틀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간혹 꽃밥의 표면이 어느 정도 떨어진 후 남은 꽃밥이 황색인 사진들이 좀 있던데 국표식의 황색이란 말은
그걸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큰개별꽃의 암술대는 세 개로 갈라지고 수술은 10개라는 게 국표식의 설명입니다.
윗 사진에서 보듯이 수술은 11개이고 암술대는 3개로 갈라져 있습니다.
꽃밥은 완전한 것이나 수분이 어느 정도 진행된 것이나 모두 적갈색입니다.
윗 사진과 같은 걸 큰개별꽃이라고 올려 놓은 블로그나 카페들이 많던데 아무래도 이 녀석은
큰개별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건데 큰개별꽃은 이름 그대로 대부분의 특징은 개별꽃과 같은데
줄기 위쪽에 나 있는 2쌍의 잎이 유난히 크다는 점과 개별꽃과 달리 꽃자루와 꽃받침에 털이 없다는
점으로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꽃잎도 개별꽃처럼 5개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일단 꽃잎 끝이 개별꽃처럼 갈라지지 않은 것은 모두 큰개별꽃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지요.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합니다.
불행히도 인터넷에서 이 둘 간의 차이를 확연히 구분해 주는 설명이나 사진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산개별꽃에 대한 국표식의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꽃이 줄기 끝에 한 개만 달리고 꽃자루에 털이 없으며 폐쇄화의 수도 적고 꽃잎이 가늘며 끝이 뾰족하다."
그리고는 잎 모양이나 꽃 색, 암수술의 갯수 등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여하튼 이 간단한 묘사만으로 볼 때 찍어 온 사진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산개별꽃이라고 동정하기로 했습니다만 물론 정확성 여부는 의문입니다.
국표식에 의하면 산개별꽃은 제주도와 지리산에 분포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 점도 이 녀석을 산개별꽃이라고
확신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잎의 모양으로 볼 때도 이 녀석이 큰개별꽃이 아니라는 점에 가산점이 더해 집니다.
국표식은 큰개별꽃이 줄기 밑 부분의 잎이 주걱형이거나 도피침형이고 밑 부분이 좁아져서 잎자루처럼 된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아래 사진과는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피나물(노랑매미꽃)
피나물은 아래 사진에서처럼 꽃대가 잎겨드랑이에서 나옵니다.
꽃대가 뿌리에서 나오는 것을 매미꽃이라 하지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천마산에서 혹시 매미꽃이 자라나 눈여겨 봤는데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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