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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단상(斷想) 모음

흑백 뒤의 실체

by 심자한2 2010. 8. 19.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종류는 문제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의 수도 문제의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잡한 문제일수록 그 대안의 수는 많아지기 마련이다.

곁가지의 변수까지 고려한다면 경우의 수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해결책에 대한 접근방법도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일 것이다.

혹자는 그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나열해 놓고 각각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끙끙 거릴 것이다.

각 경우의 장단점과 강약점을 따져 표를 그려 가면서까지 마땅한

해결책 선정에 노심초사하는 이도 직장생활 중 심심치 않게 목격

하였다.

이런 사람은 답답해 보이기 일쑤지만 그 지나친 신중이 좋은 결과를

선물로 주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대충 골격에 해당하는 굵직한 대안 몇 개만 도마에 올려

놓고 단칼에 지느러미와 꼬리를 잘라내 버린 후 손쉽게 후보군을

압축하고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몸통을 골라낸다.

이런 사람은 쾌도난마처럼 시원스럽기는 하지만 그런 호기가

항상 통할 만큼 현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게 걸림돌이 된다.

어느 것이 옳바른 접근법이라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숲이 답이고 때로는 나무가 답이기 때문이다.

숲이 답이었던 문제도 상황에 따라서는 오답이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복잡해졌다.

물론 그 중간에는 천차만별의 접근법을 구사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충직한 권고는 최선을 다하라는 말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설사 선택이 잘못 되어도 후회가 그만큼 적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안 마련 시 타인이 변수로 개입되면 분류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가능한 한 허물을 남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타인이란 변수에게 전가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책정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평가자의 주관적 몫이다.

혹자는 거의 모든 허물을 타인에게 넘기고 자신의 주머니에는

공적만 집어 넣는 성향을 보인다.

진정한 성인군자 반열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그의 주머니 속에

담긴 건 허물뿐일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이와 같은 극단적 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범인은 그 사이 어딘가에 한 점으로 위치할 것이다.

그 좌표를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 각자는

사안 발생 시마다 동일한 좌표를 크게 벗어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 좌표는 그 사람의 평소 이미지가 된다.

이 고착된 이미지 때문에 어떤 사람은 간혹 진심어린 선행을 하더라도

평소 좌표의 위치가 부의 숫자를 갖고 있다면 그마저도 위선이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며칠 전에 직장 내에서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작은 언쟁을

한 일이 있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도록 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자료와 물품들을 준비해주었다.

그 불상사는 시간의 문제였지 충분히 예견 가능한 것이었다.

불행히도 상대는 내 충고를 그대로 다른 쪽 귀로 흘려버렸고

머지 않아 우려했던 불상사는 현실 속에 버젓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난감해진 상대는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때는 늦었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제3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마땅한데 상대는 내 상식적인 의중을 벗어나는 행태를

보임으로써 내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또 다른 예비책에 내가 미리 신경을

쓰지 않았던 점만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내 주머니를 허물로만 잔뜩 채우려는 그 파렴치가 내 인내의

한계선을 넘는 바람에 난 당연히 발끈했다.

 

다음날에도 상대는 사과의 자리에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는 변명을 뎅그러니 올려놓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할 말을 잊었지만 사태를 확산시키고

싶지 않아 대충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내 얼굴이 벌개진 걸 느꼈다.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 상대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새삼 되새겨졌다.

상대의 언행에 내가 발끈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실수의

몸체는 최소한도로 줄이고 상대의 허물을 침소봉대하려는

내 자기보호본능이 위력을 발휘한 탓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논쟁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차이에 난 흑백논리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에 불과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인다.

내 나이는 아직까지 그 수치 만큼의 완성도를 일구어내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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