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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단상(斷想) 모음

일체유심조

by 심자한2 2010. 8. 22.

 

"카멜, 라이언, 타이거.... " 

아랍어를 몰라 대표적인 동물 이름 몇 개를 예로 들었다.

물론 상대는 영어를 모를 것이기에 이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리란 확신은 없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상대가 아랍어 단어 한 마디를 내뱉는다.

아마도 동물원을 뜻하는 아랍어인 듯싶었다.

내가 동물원 가는 길을 묻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꽤나 눈썰미가 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알 수 없는 아랍어 몇 마디를 더 하더니 손짓으로 내 차를 길가로 대라는

시늉을 했다.

그제서야 난 편도 1차선 도로에 그대로 차를 세우고 길을 묻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차를 길가에 세우자 녀석이 다시 한 번 알 수 없는 아랍어 몇 마디로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더니 답답했는지 열려진 창문으로 손을 집어 넣어 조수석에 놓아둔

디카와 핸드폰을 집어든다.

잠깐 그 두 물체로 교차로 형태를 만들면서 설명을 이어가는 듯하던 녀석이

갑자기 그대로 줄행랑을 친다.

순간적으로 녀석이 지금 절도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걸 인식한 난 차를 돌려

급히 녀석을 뒤따라 갔다.

녀석은 길 건너편에 있는 동네 어귀로 들어섰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아 더 이상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곳에 이르러서는

차에서 내려 녀석의 뒤를 쫒아 달리기를 했다.

녀석의 보속이 나보다 월등히 크다 보니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녀석이 어느 낮은 담을 넘어 모습을 감출 때쯤 난 뒤쫒기를 포기했다.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녀석이 저만큼에서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멀거니

관망해야만 했다.

달리는 동안 "알리바바"란 말을 계속 외쳤지만 이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되 사무실에 있는 현지인들이 가끔 이 단어를 "도둑질"

또는 "도둑놈"이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지금이 라마단 기간이라 마을 사람들은 지금쯤 모두들 집안에서 간밤의 피로를

풀고 있을 것이기에 내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 신세로 전락했다.

 

잠시 그렇게 녀석을 뒤쫒던 내 눈길을 황급히 거둔 것은 혹시 내 차마저

누가 훔쳐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잰 걸음으로 차쪽으로 가다가 저만큼 모퉁이에 내 차의 모습이 보이자 안도

하면서 보폭을 줄였다.

차안에 들어서자마자 에어컨부터 작동시켰다.

여기 저기 앉아 있던 미세한 먼지들이 에어컨 바람을 타고 차내를 부유한다.

녀석을 추적할 때 열려 있던 조수석 창문으로 들어온 먼지들로 인해 차내가

희끗희끗하다.

이 나라의 흙은 입자가 너무 고와 차라리 먼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이다.

포장도로까지 차를 몰고 나와 창문을 모두 내리고 환기를 시도하면서 방금

일어났던 상황을 되새겨봤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황당무계이다.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 상태에서 코가 베인 느낌이다.

평소 동료들과의 대화 중에 이 나라 사람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했던

내 정성이 부질없었다는 자책이 밀려들었다.

차라리 이만 하길 다행이지 운이 좀 더 없었더라면 차마저 강도질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었고 장소가 더 한적했더라면 그가 목숨마저 위협했을지도

모른다는 자위도 그 순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신뢰에 대한 배신감의 반작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내가 이곳 저곳 드라이브를 하면서 곤경에 처할 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도움들을 꺼내 놓고 하나하나 가위 표를 쳐나갔다.

가위 표가 늘어날수록 죄 없는 갑남을녀들이 악인의 범주로 내몰렸다.

 

하루밤이라는 시간이 지나 오늘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선과 악의 경계에

존재하는 격막은 어쩌면 종이 한 장보다도 더 얇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선설과 성악설의 양 극단에 위치하는 사람은 사실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서 필요에 따라 적절히 양자를 병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쪽 카드를 활용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심성과 주변 환경의 강요가

적절히 어우러져 만들어낸 순간적인 결정의 소산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방임일까?

녀석은 애시당초 절도 의사가 전혀 없었을 수도 있다.

단지 내 차 조수석에 놓인 그 두 물품을 보는 순간 도싱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녀석의 비행의 원인제공자는 다름 아닌 바로 내가 된다.

내가 좀 더 세심했더라면 녀석은 내 기억 속에서 착한 리비아인으로 영원히

남아 내 입을 통해 다른 한국인들에게 구전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한 현지인에게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보게

했더니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한다.

녀석은 자신이 가난해서 값 나가 보이는 물건 좀 훔쳤는데 뭐 크게 문제가 되느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핸드폰에 들어 있는 SIM 카드 정도는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한다.

SIM 카드는 핸드폰 값의 1/20 정도밖에 안 되는 저가의 부속품이다.

굳이 전화를 걸어본 현지인의 느낌이 아니더라도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녀석은 약간의 정신이상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든다.

그런 심리상태에 있는 녀석에게는 선행과 악행의 구분이 무의미할 수도 있다.

둘간의 경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악행이라고 생각되는 일도 그에게는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필요에 의한

당연지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추정으로 녀석의 비행에 대한 원인제공자로의 내게 스스로 일종의 면죄부를

주고 나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진다.

역시 일체유심조가 맞긴 맞나 보다.

어제 했던 그 잠깐의 뜀박질로 다리 근육이 뻐근하다.

본의 아니게 운동 한 번 잘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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