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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단상(斷想) 모음

완벽은 없다.

by 심자한2 2010. 8. 9.

 

평소 내게 그렇게도 밉보이던 A라는 현지인이 있다.

한 번 부정적인 이미지가 고착되면 모든 게 미워 보인다더니 녀석이 하는 짓은

하나 하나가 밉상이다.

꽤나 까다로운 이 나라 노동법 탓에 녀석을 쉽게 내보낼 수도 없다.

그러니 녀석이 자진해서 회사를 떠나기를 바랄 수밖에.

그런 내 유일한 소망의 풍선은 녀석의 무감각이란 바늘에 번번히 찔리고 만다.

반면 내 눈에 아주 유능해 보이는 B라는 녀석이 A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역시 이 나라 사람이다.

한참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연히 채용했던 B는 업무 안정에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자연히 B에 대한 신뢰는 쌓여 갔다.

일부러 저하시킬 필요도 없이 A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둘은 채용 당시 급여가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상대적 위상 차이는 자연 급여의 차이를 유발시켰다.

B의 업적을 인정했는지 A는 이 차이에 대해 그다지 괘념치 않는 듯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삶에는 반전이란 게 있기 마련인 모양이다.

두어 달 전 사무실 기강확립 차원에서 A와 B를 포함하여 사무실 내 모든 현지인들에게 경고장을 발부했다.

현지인들은 습성상 일 년 중 8시 출근시간을 지키는 날을 꼽는데 열 손가락도 남을 정도이다.

30분 이상 늦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도 4시 퇴근은 칼 같이 지키는 땡돌이들이다.

그러나 B는 퇴근시간을 넘긴 초과근무에 연연해 하지 않고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잔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아침에 좀 늦는다고 해서 이를 탓할 입장은 못 되었다.

평소에 녀석에게 아무래도 다른 현지인들의 준칙의식을 유도하기 위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내 생각을 비춘 일이 몇 번 있었다.

이 경우 형평을 고려하여 B에게도 표면상 동일한 처우를 할 수밖에 없으리란 내 고충도 곁들였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B는 벌칙부과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회유도 빼먹지 않고 전했다.

이 사전포석이 녀석의 충분한 이해를 이끌어냈으리란 내 착각은 거사일에 무참히 깨져버렸다.

가장 먼저 반박레터를 제출한 건 B였다.

녀석은 레터 말미에 퇴사의사까지 표명하는 극단적 반응까지 끼워넣었다.

반박레터는 곧 사직서였던 것이다.

녀석이 레터에 표현한 것보다 더 깊은 배신감을 느낀 건 나였다.

서로의 입장을 해명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녀석은 그간 꼭꼭 밀봉해두었더 불만보따리를

서슴없이 풀어헤쳤다.

난 내 입장을 녀석에게 주입시키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했다.

시간의 마법은 결국 녀석의 또 다른 사직 결심 배경을 녀석 입으로 발설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무실 근무시간의 반도 안 되는 시간에 우리 회사에서 받는 급여의 4.5배나 되는 급여를

향휴할 수 있는 교수인지 강사인지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녀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이지는 않았지만 평소 녀석의 성실도로 보아 충분히 보다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으리란 믿음까지 지워내지는 않았다.

내가 유발시킨 사건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사과 내지 해명을 하겠지만 보다 나은 처우 내지 미래에

대한 고려가 사직이유라면 당장 내가 힘들더라도 잡지 않겠다는 말로 사실상의 사표 수리 의사를

표명했다.

 

녀석이 떠난 뒤의 공백에 상도하기만 하면 이전 수준으로 업무의 질을 회복할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녀석과 유사한 인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이곳 현실을 감안하여 일단은 A를 대타로 활용하기로

마음 억었다.

그간 A에게 직접적으로 내가 업무를 지시한 적이 별로 없었기에 잘 몰랐었는데 막상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다 보니 A는 정말 막힌 곳이 많았다.

마음속에 잔 물결이 끊임없이 일었지만 당분간 마땅한 대안이 없는 내게 주어진 최선의 대응책은

인내뿐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다시 한 번 내 앞에 마법을 펼쳐 보였다.

전혀 탈출구가 보이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A의 답답한 성격과 뒤처지는 업무능력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A에게도 B가갖지 못한 장점들이 다수 존재했던 것이다.

단지 그간 내 선입견은 녀석의 그런 장점들을 발현시킬 만한 업무 할당을 차단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특정 분야에서 A의 노력도로 볼 때 B의 이전 업무태도가 상대적으로 안이했었다는

생각마저 새록새록  돋았다.

어떤 분야에서의 B의 열정은 어쩌면 다른 분야에서의 그의 단점을 덮기 위한 일종의 자구책

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느낌은 A에 대한 내 인내가 발견해낸 부산물이었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혹시 이런 현상을 내포하고 있느지도 모를 일이다.

항상 풀이 죽어 있었던 A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활기가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번졌다.

A와 B에 대한 애증의 감정 진원지는 결국 녀석들이 아니라 내 편견이었던 것이다.

 

그런 A와 B는 내 안에도 엄연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에 대해 자찬하거나 자책할 일은 아니다.

그 자찬이나 자책의 대상은 사실 내 성격이나 능력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남보다 우위에 설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 육성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건 초등학생 교육에만 국한된 잠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과정의 중요도를 감안한다면 자신의 모든 특성들을 어물전 생선처럼 나열해 놓고 그 중

에서 꼴뚜기와 준치를 가려내는 노력을 귀찮아 해서는 안 될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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