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 제 : 2021. 12. 31 (금)
● 누구와 : 나 홀로
● 어 디 : 경기옛길 평해길
● 코 스 : 구리시 딸기원 - 구리시청 - 구리전통시장 - 구리역
- 왕숙교 - 합수머리 세월교 - 미음나루 - 수석리 토성
- 조말생묘 - 덕소나루터 - 당정섬 - 팔당역
- 큰고니 탐조대 - 팔당댐 - 봉안터널 - 머루터널
- 다산생태공원 - 다산기념관 - 마재성지 - 능내역
- 운길산역
● 이동거리 및 소요시간 : 37.62 km. 10시간 55분
● 이동시간 및 소요비용
● 경기옛길 홈페이지 안내도
( https://ggcr.kr/?pg=10002&pgView=introduce&lNumber=1 )
요즘은 한파가 극성이다 보니 산을 찾기가 좀
꺼려지네요.
인터넷 검색 중에 마침 경기옛길의 존재를 알게
되어 올 겨울에는 산행 대신에 이 길 탐방이나 좀
해 보기로 합니다.
조선시대에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 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6개 도로망인 의주로ㆍ
경흥로ㆍ평해로ㆍ영남로ㆍ삼남로ㆍ강화로를
조선시대 실학자 신경준 선생이 집필한 역사지리서
‘도로고(道路考)’에 소개된 육대로(六大路)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조성한 길이 바로
‘경기옛길’이라는 게 해당 홈페이지에 소개된 내용
입니다.
이중 출발점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깝다는 이유
만으로 평해길부터 걸어 보기로 합니다.
평해길은 지금의 구리시 딸기원에서부터 시작해
지평까지는 전철인 경의중앙선의 주요역들을 따라
가고 그 이후에는 국철 중앙선을 따라 삼산역을 지나
원주시 경계에 있는 양평군 삼산2리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125km에 달하는 교통로인데 경기도에서는
이를 제1길 ~ 제10길까지 10개 구간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하루에 1개 구간씩만 걸으면서 각 구간에 흩어져
있는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곱새겨 보라는 취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경기옛길 탐방을 단순히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방편으로만 활용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평해길 전체를 내 체력과 대중교통 이용 편의를
고려하여 나름대로 4개 구간으로 재편했는데 그중
평해길 제1길 ~ 제3길까지가 오늘 걸을 첫 구간입니다.
평해길 제1길은 구리시에 있는 딸기원이라는 곳에서
시작되지요.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딸기원" 정류장에 내립니다.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횡단보도에
보행신호가 들어오기에 일단 아무 쪽으로나
건너가 보았더니 인도에 있는 전신주에 매달린
평해길 안내 리본이 눈에 띕니다.
오늘이 경기옛길에 첫발을 들이는 날인지라
정식 시작점에서부터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스마트폰 네이버지도에 "딸기원"을 입력한 후
그 안내를 따라 길 건너편으로 가 봤는데도
딸기원이라는 곳이 나타나질 않네요.
한참을 바장이다 결국 정식 시작점 찾기는
포기하고 다시 좀전의 안내 표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 표식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봅니다.
그랬더니 얼마 안 가 평해길 제1길 시작점을
알리는 안내물들이 나타나 줍니다.
그러니까 이곳이 정식 출발점이고 좀전의 안내
표식은 버스 정류장에서 이곳까지 탐방객들을
안내해 주는 유도용이었나 봅니다.
경기옛길 홈페이지에는 평해길 제1길인
망우왕숙길이 딸기원에서부터 미음나루까지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곳에 있는 안내물에서는
종점이 미음나루가 아니고 합수머리 세월교네요.
시종점에 특별한 의미를 둘 이유가 없기에 이
정도 오류는 눌러보기로 하고 안내판이 가르키는
구리시청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합니다.
딸기원이란 게 농장 이름쯤 되는 것으로 생각
했는데 마을 이름이었군요.
개인적으로 산행이나 도보여행 시 인증샷이나
스탬프 찍기에 전혀 관심이 없기에 스탬프함은
항상 홀대를 하였는데 욘석은 제법 툇마루까지
갖춘 초가집 형태라서 눈길이 가네요.
이후에는 안내 표식들만 따라가면 됩니다.
평해길은 조성된 지 1년 남짓밖에 안 되었지요.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 또는 인위적 훼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안내표식들이 적재적소에
매달리거나 부착되어 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단지 인위적 훼손 방지를 위해 의식적으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표식이 눈높이 위쪽 등 시각적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도 간간이 있기 때문에 걷는
내내 이 표식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오늘 신경을 바짝 쓴다고 썼는데도 이 표식을
놓쳐 알바를 여러 번 하게 됩니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표식은 리본인데 한참 동안
이 리본이 눈에 띄지 않는다면 길을 덧들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길은 망우리고개 쪽으로 이어지다가 얼마 안 가
좌측 망우산 쪽으로 휘어집니다.
망우산 자락의 망우리역사문화공원 입구에 있는
이정표들을 보니 언제부턴가 각 지자체들이
앞다퉈 둘레길을 조성하는 게 유행이 되어 버린
게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공원은 아직도 조성 작업이 한창입니다.
근심 먹는 우체통이란 것도 있군요.
단순한 유희용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대 시민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탐방할 구간 중에서 망우산 구간이 가장
경사도가 높은 길인데 그다지 심한 공력이
필요할 정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초반에 경사로를 걷는 것이 체온 상승
효과를 유발해 한랭한 아침 대기에 몸이 적응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줍니다.
"이태원 묘지 무연분묘" 안내판을 만납니다.
분묘까지는 가 보지 않았는데 괄호 속에 "유관순
열사 합장묘역"이라고 적혀 있기에 집에 와서 그
연유를 한 번 찾아 보았지요.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은 한 신문 기사 내용입니다.
( https://www.khan.co.kr/opinion/yeojeok/article/201909272018025 )
1919년 4월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동한 유관순은 일본 헌병 수색조에 체포됐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위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유관순은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에서도 유관순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20년 3월1일에는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일본 헌병의 고문으로 방광이 터지는 등 후유증이
컸다.
급기야 9월28일 감옥에서 숨졌다.
그때 나이 19세. 10월12일 모교 이화학당으로
시신이 운구됐다.
이틀 뒤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이태원공동
묘지에 안장했다.
1930년대 서울의 인구가 크게 늘자 일제는 대규모
도시 정비에 나섰다.
공동묘지가 포함된 이태원 일대는 주택지로 개발됐다.
1935~1936년 공동묘지의 이장이 진행됐다.
당시 이태원공동묘지의 무덤은 3만기가 넘었다.
그러나 가족이 이장한 유연고 묘는 4778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무연고 묘 2만8000기는 유해를 한데 모아
화장한 뒤 새로 개장한 망우리 공동묘지에 합장했다.
무연고 묘로 분류됐던 유관순의 유해가 망우리로
이장됐을 것은 불문가지다.
1936년 12월 경성부(지금의 서울시)는 이태원공동
묘지의 합장묘를 단장한 뒤 비석을 세웠다.
서울 망우리공원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가 그것이다.
열사의 주검이 무연고 분묘에 합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망자의 평화로운 영면을 비손합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한 길굽이에서
좌측으로 내려서야 구리시청 방향입니다.
안내표식에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면 이곳
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위 갈림길에서 구리시청까지는 산길입니다.
코스모스대극장 건물 곁을 지납니다.
곧이어 구리시청 정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구리시청 정문에서는 좌측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지요.
그런데 난 이곳에 있는 안내 표식을 놓친 채 걷던
걸음 그대로 직진을 하고 말았습니다.
가다 보니 안내 리본이 전혀 나오질 않기에 길을
덧들었다 판단하고 되돌아와 보니 안내 표식이
전신주 눈높이 위쪽에 달려 있네요.
비록 크게 길품을 판 건 아니지만 여하튼 여기서
오늘의 첫 알바를 기록합니다. ㅠㅠ
길은 이문안호수 곁으로 이어집니다.
이후 구리역까지는 도심을 통과해야 하는데
각종 구조물들이 엉기정기 흩어져 있어
신경 좀 쓰지 않으면 안내표식을 또 놓치게
됩니다.
평해길은 구리전통시장을 관통합니다.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추운 날씨 탓인지, 코로나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인파가 비비대기치는
모습은 연출되고 있지 않네요.
구리역 밑을 지납니다.
출발한 지 1시간 40여 분 후에 왕숙교를
만납니다.
여기서부터는 왕숙천변을 따라 걸으면 되지요.
우리 동네도 왕숙천변에 있어 왕숙천은 내게
친숙한 하천입니다.
토평교를 지납니다.
저만큼 구리타워도 보이는군요.
평해길 제1길인 망우왕숙길의 종점에 당도
합니다.
전술했듯이 경기옛길 홈페이지에서는 제1길의
종점이 미음나루인데 이곳에 있는 안내판에는
합수머리 세월교가 종점이라고 명기되어 있네요.
안내판 바로 앞에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교량명이 아마도 세월교인가 봅니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조금 걸으니 평해길
제2길인 미음나루길 안내물들이 반겨줍니다.
계획했던 대로 선걸음에 미음나루길로 들어
섭니다.
오래지 않아 수석교를 만납니다.
이곳이 바로 왕숙천이 한강과 합류하는 개어귀
인데 평해길 안내판에 합수머리라고 적힌 바로
그곳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강의 둔치를 따라 4대강 종주
자전거길이 쭉 이어지는데 오늘은 라이더들이
거의 보이질 않네요.
아마도 날씨 탓인가 봅니다.
중도에 미음나루 안내판을 만납니다.
안내판 위쪽으로 올라가 보니 도로변에 조형물이
하나 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미음나루가 있던
자리인가 봅니다.
다시 길을 잇다가 수석리 토성 안내판을 만납니다.
토성이란 게 어떤 건지 궁금하여 한번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현장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이 토성은 구릉 정상부를
편평하게 다듬고 경사진 부분은 흙을 쌓아 네모꼴로
만든 땅이라고 하네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의 모습이 아니라 망루라는
단어 정도가 어울리리라 생각되는 형상입니다.
토성 위 길체에는 비석조차 없는, 용도 모를 무덤 한
기가 있습니다.
잔디 묘판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유적지는 조성해 놓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올라온 길로 다시 내려가 평해길 안내를 따라
갔어야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 직진을 하면 당연히
평해길과 접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전방에 보이는
송전탑 쪽으로 가 봤지요.
얼마 후 조말생 묘역을 만나게 되는데 먼저
조말생기적비와 안내판이 나오네요.
조말생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함길도
관찰사를 역임한 분이라는 게 안내문의
설명입니다.
신분에 따라 봉분의 크기도 정해져 있는지는
모르겠으되 상당히 큰 봉분 규모가 인상적입니다.
교목세가의 분묘답게 장명등, 망주석, 석인, 석수,
동자석 등이 구비되어 있네요.
그런데 석인으로는 문인석만 있고 무인석은 없으며
석수로는 양석만 있고 마석은 없네요.
망자가 문인인 경우에는 문인석과 양석, 무인인
경우에는 무인석과 마석을 세우는 것인가 보다 하고
짐작만 해 봅니다.
그건 그렇고 이곳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모습이
가히 압권입니다.
명당의 조건이 뭔지는 몰라도 이 정도 입지라면
아무래도 후손들이 찾는 횟수도 그만큼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이곳에 우회로 안내판이 서 있는데 해석이 잘
되질 않네요.
우회노선을 이용하게 되면 조말생묘는 경유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난 아마도
안내판상 "당초노선"을 타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수석리 토성 안내판이 있던 곳으로 돌아
가기에는 거리가 좀 있기에 그냥 진행 방향으로
직진을 해 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길다운 길이 없네요.
막다른 곳에서 힘겹게 축대를 넘어 마을로 내려
섰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음 경유지인 덕소역까지는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습니다.
앱이 얼마 안 가 나를 평해길로 안내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네요.
고산로 갓길을 따라 한참을 걷습니다.
이 일대가 일종의 특화 거리인지 길가에 의류
아울렛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걷는 내내 우측 한강변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지를 계속 눈여겨보았는데 삼패사거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우측으로 남양주한강공원
삼패지구 주차장이 나타납니다.
다시 한강변 평해길로 내려서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포장된 보행로를 걷기가 싫어 선답자들이
만들어 놓은 흙길을 나도 따릅니다.
덕소나루터를 지납니다.
안내판 앞에 있는 개어귀 부근에 나루턱이
있었겠지요.
이곳을 이용했을 민초들의 그 많던 애환들은
지금은 모두 강심에 깊이 침잠한 채 함구무언
입니다.
기온은 낮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체감온도는
그런대로 적당히 유지가 되는 날씨입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구간은 해소수 전에 다산길
탐방 시 걸었던 길이어서인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군요.
당정섬이란 곳이 가까와 오니 이 지역은 수심이
낮은지 강 가운데 풀등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저 멀리 풀등 너머 육지처럼 보이는 게 당정섬인가
봅니다.
원래는 작은 풀등이었던 게 강물이 나르는 모래가
퇴적되어 저렇게 커진 건지, 아니면 원래 육지와
연결된 돌출 부위였는데 강물이 주변을 침식해
섬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저곳
에서 일상을 영위했던 사람들의 삶의 흔적은
지금은 한강의 유속보다도 더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강변 산책로를 걷다가 한 지점에서
평해길은 좌측 경강로 옆으로 올라섭니다.
이곳도 평해길 안내표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
중의 하나합니다.
안내표식이 도로 갓길을 피해 마을 속길로 나를
안내하네요.
그러다가 반사경이 있는 곳에서 갑자기 길이
우측 직각 방향으로 꺾입니다.
반사경 위에 있는 안내판이 눈높이 위에 있는데다
크기가 작아서 하마터면 보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할
뻔했습니다.
팔당2리 안내 입석이 있는 곳에서 좌측 소로로
들어서야 합니다.
평해길 안내판은 마을 입석 옆 철주에 매달려
있는데 선뜻 눈에 띄질 않아 이걸 찾느라 여기서
잠시 지정거렸습니다.
길이 오솔길로 이어집니다.
드디어 평해길 제2길인 미음나루길의 종점
팔당역에 당도합니다.
아직까지 체력에 무리가 없기에 원래의 계획을
고수하여 오늘 제3길인 정약용길까지 마저 탐방
하기로 합니다.
일단 정약용길은 경강로 갓길로부터 시작하네요.
오래지 않아 길은 자전거와 보행자 전용도로로
이어집니다.
도보여행자도 자전거 라이더도 거의 없는 길을
스적스적 걷다 보니 우측 아래 강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네요.
삼각대 위에 놓인 카메라 망원 렌즈를 보니
탐조객들인 듯싶습니다.
마침 내가 걷고 있는 곳에서 망원경으로 한강 쪽을
살피고 있는 사람이 있어 무슨 새를 기다리고들
있는 거냐고 물으니 참수리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이쪽은 팔당댐에서 멀지 않은 곳인지라 수심이
낮아 참수리가 먹이활동을 하기에 적지인가 봅니다.
걷고 있는 이 길은 예봉산 자락을 따라 나 있는
길로 한때 중앙선 철길이었는데 이 철도 구간이
폐쇄된 후에 자전거길로 조성해 놓은 길입니다.
갯가보다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위치한 길인지라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한강 풍경도 자못 운치가
있으련만 오늘은 날씨 탓인지 그런 강호지락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유감입니다.
팔당댐이 가까와 오니 수심이 좀더 얕아졌는지
강심에는 우리가 흔히 백조라고 부르는 큰고니
들이 제법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큰고니들이 우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곤 하는데
백조라는 미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울음소리네요.
이곳에는 제법 번듯한 탐조대까지 하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팔당댐을 지납니다.
한때 철마가 달렸던 봉안터널은 목적만 바뀐 채
지금까지 그대로 건재해 있습니다.
구 철로 구간을 걷는 길에는 꽤 많은 다산쉼터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다산쉼터9를 지나고나서는 평해길이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면서 구 철로 구간을 벗어납니다.
다산유적지로 이어지는 길은 머루터널로부터
시작됩니다.
육지 쪽으로 만입된 팔당호숫가를 따라 길이
이어집니다.
그 옛날 다산 선생께서도 이 길을 소요하면서
국사를 걱정하거나 시상을 다듬었을지 궁금합니다.
다산생태공원 직전에 그네형 의자가 있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황도 캔을 하나 간식으로 먹는데
걸을 때는 몰랐던 추위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습해
몸이 떨릴 정도이기에 서둘러 요기를 마칩니다.
다산생태공원입니다.
입구에 구새먹은 고사목 한 그루가 길게 누워 있는데
아마도 작은 뭇짐승들이 은거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산생태공원 모습을 보면서 황량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풍치라는 건 자연과 날씨가 잘
어우러져야 상승효과가 제대로 기능을 하나 봅니다.
다산문화관을 만납니다.
이 길 안쪽에 다산기념관,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
다산과 숙부인의 합장묘 등의 유적과 다산이 직접
설계하여 수원 화성 축조 때 사용했다는 거중기
등의 유물이 있는데 작년 다신길 탐방 시 보았던
것들인지라 그냥 지나치기로 합니다.
마재성지도 지납니다.
뒤이어 한때는 중앙선의 정차 역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폐역이 된 능내역이 나옵니다.
철로 위에는 철도 카페로 변신한 열차 한 량이
뎅그러니 놓여 있고요.
지금은 푸서릿길로 변한 철로를 보면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어느새 평해길에도 어둠살이 내리고 있습니다.
한 지점에서 길이 자전거길을 벗어나 좌측으로
휩니다.
안내표식을 눈여겨보면서 걷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지점 중의 하나이지요.
마침내 오늘의 종착지인 운길산역이 시야에
듭니다.
오늘 걸은 거리가 총 37km 남짓 되는데 이 정도야
이전에도 얼마든지 걸어본 거리라서 크게 무리한
여정은 아니지요.
그런데 오랜만에 장거리를 걸어 발가락에 물집이
생긴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겠는데 막바지에 오른쪽
발목에 통증이 심하게 생긴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내일과 모레 연휴를 계속 평해길 탐방에 할애하려는
계획이 마침몰라 이 발목 통증 때문에 산드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여정 끝자락에 매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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