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늦게 일어나 가볼 만한 산을 찾다가 화야산이 생각난다.
화야산을 오르는 들머리로 보통 큰골과 사기막골을 이용한다.
사기막골은 전에 가본 적이 있어 오늘은 큰골로 오르기로 한다.
네이버 버스노선 검색에서 금곡동구종점을 출발지로 하고 큰골을 도착지로 입력하였더니 1330-5번과 1330-6번이 나온다.
1330-5번은 청량리에서 설악까지 운행하는 노선이고 1330-6번은 유명산과 청량리가 기종점이다.
이제까지 청평터미널에서 하루에 몇 번 있지도 않은 버스로 갈아타야지만 갈 수 있는 걸로 알았는데 그런 번거로움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좋은가.
왜 진작 이 노선을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전에 화야산 갈 때 교통편 조사를 철저히 하지 않은 내 잘못이기에 누굴 원망할 일이 아니다.
금곡동구종점에서 30분 정도 기다리자 1330-5번이 온다.
이곳 정류장은 오는 버스를 타겠다는 몸짓을 보이지 않으면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얼른 손을 흔들었다.
버스에 막상 타고 나서 노선도를 보니 큰골이라고는 적혀 있지 않다.
노선이 길어 정류장이 많다 보면 몇 개씩은 빠지는 경우도 있다는 걸 이미 이전에 우리 동네 버스 노선도에서 확인한 바가 있기에 그러려니 하고 만다.
그런데 버스가 청평터미널을 거쳐 신청평대교를 건너더니 거기서 좌회전을 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우회전이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여기서 내려봐야 대체 교통 수단이 마땅치 않기에 일단 가보기로 한다.
이쪽 길로 해서 큰골로 갈 수도 있겠거니 했는데 버스가 가는 길이 아무래도 내 기억 속의 큰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별 수 없이 기사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더니 큰골은 벌써 지났으니 내려서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하면서 솔고개라는 곳에 내려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쪽에도 큰골이라고 있는 모양인데 그 큰골은 내가 원하는 화야산 들머리로서의 큰골은 아니다.
에효, 이럴 수가.
안내판을 보니 솔고개에도 등산할 수 있는 산 하나가 있다.
이름이 곡달산이다.
아무 산이나 가면 어때 하면서 그 산을 오르려다가 혹시나 해서 인근 상인에게 이곳에서 화야산 가는 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행히도 저쪽으로 쭉 가다 마을길로 들어서면 화야산 가는 길이 나온다고 한다.
그분이 손가락으로 가르킨 방향으로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분이 시간 관계는 전혀 고려치 않고 내 질문 내용에 너무나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대답해 주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대여섯 번 정도 길을 물어 화야산 들머리에 도착한 것은 솔고개를 출발한 지 근 한 시간 반 정도 후였다.
등산도 하기 전에 온 몸이 땀으로 축축히 젖었다.
도중에 갈림길이 꽤나 많았다.
안내판도 없고 지나는 사람도 없어서 어느 길로 가야할 지 혼자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에구, 오늘은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 건지.
내 선택은 거의 100% 실패였다.
한 곳에서는 삼거리 좌측으로 들어섰는데 길이 끊어지면서 집이 하나 나타난다.
무작정 안족으로 들어갔더니 한 사람이 세차를 하고 있다.
화야산 가는 길을 물으니 삼거리에서 우측 길을 택했어야 한다고 한다.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망연히 돌아서는데 물이라도 좀 마시고 가라 한다.
지하수라는 그 물맛이 그런대로 시원하고 괜찮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사람의 작은 배려가 고마워서 축축했던 기분이 조금 가라앉는다.
이런 와중에서도 괜히 식물애호가인 척 하면서 그럴 듯한 식물만 만나면 디카를 수시로 들이밀어본다.
가장 먼저 담은 건 개망초다.
길가에 흔하디 흔한 거지만 배경이 너무 좋아 한 번 담아보았다.
줄기잎을 관찰해본다.
잎이 주걱형이고 톱니가 없으면 주걱개망초라는데 이 녀석은 사진 속에서도 관찰할 수 있듯이 톱니가 있으니 개망초가 맞다.
석축 돌틈에서 노루오줌이 몇 포기 자라고 있다.
노루오줌은 꽃이 홍자색이고 숙은노루오줌이 연홍색이라고 하는데 꽃 색이 절대적인 구분 포인트가 못 된다는 건 평소의 경험이 말해준다.
숙은노루오줌은 말 그대로 꽃차례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노루오줌이라고 항상 꼿꼿하게 서 있지만은 않으니 이 기준도 그다지 신뢰할 만한 것은 못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자료를 자세히 읽어보니 노루오줌은 줄기에 "긴 갈색 털이 있다." 고 되어 있고 숙은노루오줌은 줄기에 "갈색 털이 있다." 고만 되어 있다.
사진 속에 있는 갈색 털이 길기에 일단은 노루오줌으로 판별했는데 나중에 숙은노루오줌의 갈색 털은 현저히 짧은지 한 번 확인해봐야겠다.
길가에서 몇 포기의 개미취가 자라고 있다.
개미취는 잎이 피침형인데 작은 톱니가 있고 털이 있다.
반면 벌개미취는 잎에 털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유사종으로 쑥부쟁이는 잎이 피침형인 건 같으나 잎가장자리에 있는 톱니가 굵고 구절초는 잎이 깃꼴로 갈라져 있다.
물레나물은 이제 어느 산에 가나 쉽게 눈에 띈다.
며칠 전 명지산에서 보았던 퉁둥굴레 같이 생긴 게 여기서도 발견된다.
꽃이 연한 녹색인데다가 꽃마다 피침형의 포가 달려 있는 것은 퉁둥굴레의 특징과 일치했는데 문제는 퉁둥굴레는 꽃이 3~7개씩 모여 달린다고 되어 있는데 이 녀석은 달랑 2개씩만 모여 달렸다.
하여 둥굴레 종류를 모두 조사해 보았는데 꽃 색이 연한 녹색인 것은 퉁둥굴레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안면용둥굴레는 화경과 소화경과 포가 있고 꽃이 2개씩 달린다는 점은 사진과 유사했으나 꽃이 백녹색이고 소화경의 길이가 2~4mm로 아주 작다는 점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사진 속 녀석은 퉁둥굴레이며 따라서 퉁둥굴레의 꽃은 2개씩 달리기도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간신히 들머리를 찾았는데 거기서부터 한참을 가도 계속 임도뿐이다.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이번엔 내리막이다.
한 곳에 이르니 내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는 안내판이 하나 나타난다.
앞으로 돌아가서 보니 화야산 정상은 여기서부터 얼마 정도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다.
뭐야, 그렇다면 내가 온 길 쪽으로 가야 정상이란 말이잖아.
아, 이런, 그렇다면 아까 고개에 삼거리가 하나 있던데 그쪽에서 위쪽으로 갔어야 하는 거였나보네.
그렇다면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워두었으면 좋으련만.
휴,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한 건 좋은데 왜 이리 바람도 없고 덥기만 한 건지.
안내판을 다시 한 번 보는데 한쪽 구석에 누군가가 못 같은 것으로 화살표와 함께 화야산 정상 입구라고 적어두었다.
화살표가 가르키는 방향은 겉에서 보기엔 전혀 등산로 입구 같이 생기지 않았다.
일단 그곳으로 올라서봤더니 바닥에 무슨 산악회 안내문이 하나 놓여 있다.
이곳이 정식 등산로이든 아니든 일단은 산악회에서 지났던 길이라는 얘기다.
이 길을 택하기로 한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등산로의 궤적은 희미해진다.
일반인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는 길인 모양이다.
대충 지나간 산악회 사람들의 발자국을 어림잡아 쫓아간다.
그저께 천마산에서 느꼈던 신체적 무력감이 오늘은 그 세를 더한다.
전신이 뻐근하고 무릎이 자꾸만 접힌다.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게 왜 이리 힘이 든지 모르겠다.
지금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정상은 끝이 보이질 않는데다 이 길을 따라 정상까지 내가 도착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몸도 마음도 컨디션이 엉망이다.
어느 정도 가다가 갈퀴덩굴 종류가 하나 보이기에 그 옆에 털퍼덕 주저앉아 간단히 요기를 한다.
김밥을 안주 삼아 준비해 간 막걸리 몇 모금을 마셔보았지만 체력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사진이나 찍고 보자, 하는 생각에 디카를 거내든다.
나무가 성긴 곳이라 내리쬐는 햇살을 피해 촛점을 맞추려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잎이 긴 타원 또는 도피침형이고 줄기 전체에서 4장씩 돌려난 것으로 보아 가는네잎갈퀴로 보인다.
꽃은 백색이고 화관은 3~4개로 갈라지고 수술은 3~4개이다.
유사종으로 큰잎갈퀴가 있는데 가는네잎갈퀴에 비해 잎이 좀 더 넓고 끝이 돌기처럼 뾰족한 점이 다르다.
햇빛 때문에 쉬는 것도 고역이라 그냥 등산을 계속하기로 한다.
얼마쯤 가다가 화야산은 내 수고에 대한 작은 선물이라도 되는 양 처음 보는 꽃 하나를 내어놓는다.
나중에 알아 보니 이름이 자란초다.
꽃 모양이 이채롭다.
잎은 밑의 것이 작고 위로 갈수록 커지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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