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도 없는 숲길로 들어섰으니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길이 없다.
산악회 안내 종이조각이 더 이상 없어도 이제까지는 희미하나마 등산로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소로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길마저 갑자기 끊어져버린다.
그렇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발자국의 선명도로 보아 이 산악회가 오늘 이곳을 통과한 모양이다.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성기게 자란 풀들이 일부 쓰러진 곳이 보인다.
산악회 회원들이 지나간 흔적임에 틀림없으리라 생각하고 그 길을 밟아가니 드디어 정식 등산로다운 등산로가 나타나준다.
여전히 팻말은 없어서 어디쯤인지는 모르겠으나 걷기가 한결 수월해졌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나아진다.
10여 분쯤 후에 정상이 나타난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어색한 기마자세로 정상석을 찍는데 강렬한 후광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이 매끈한 정상석 표면에 그대로 비치는 걸 그냥 찍었더니 내 모습이 그 속에 담겨버렸다.
이로써 이 블로그 운영 후 처음으로 내 사진이 블로그에 오르게 된 셈이다. ^^
정상 주변에 최근에 다녔던 산 정상마다 있던 병꽃나무 종류가 이름표 대용인 양 시든 꽃 두어 개를 매단 채 서 있다.
한쪽에 딸기 종류의 꽃이 피었는데 멍석딸기로 보인다.
멍석딸기의 잎은 3출 깃꼴겹잎이고 가장자리에 결각이 뚜렷하다.
이름이 유사한 멍덕딸기도 잎은 3출 깃꼴겹잎이지만 꽃이 흰색인 점이 다르다.
꽃자루에는 가시와 더불어 흰색 털이 많이 나 있다.
3출엽이면서 잎자루에 붉은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을 곰딸기라 한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코스는 내가 올라왔던 방향을 제외하고는 사기막골 코스와 큰골 코스 두 군데이다.
사기막골은 일전에 이용했던 곳이기에 이번에는 큰골을 하산길로 택하기로 한다.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골무꽃 종류 하나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잎이 삼각상 넓은 난형으로 양면에 털이 있고 네모진 줄기에 위를 향한 백색 털이 다소 밀생하는 점으로 미루어 산골무꽃으로 보인다.
주변에 눈길을 주면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저만큼 앞에서 시커먼 동물이 여럿 보인다.
울음소리를 들으니 염소 무리다.
염소도 산에서 야생하나?
누군가가 여기에다 방목하고 있는 걸까?
사람 손에 사육되다가 도망쳐서 야생화가 된 건가?
산양은 내가 알기로는 흰색인데 저 녀석은 완전 연탄 아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다가가자 염소들이 일단 풀 뜯어먹기를 멈추고 숲 안쪽으로 도망을 친다.
근처까지 갔더니 어느 정도 풀밭이 펼쳐져 있고 한쪽에 줄딸기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그거나 좀 따먹어보겠다고 다가갔더니 인근에 있던 염소 중 한 마리가 나를 뚫어져라 꼬나본다.
뭐야, 니 먹이를 내가 좀 축낸다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거야?
아니면 일단 36계 병법에 충실은 했는데 막상 가까이서 나를 보니 좀 만만해 보인다는 건가?
아님 니가 뭐 무리의 우두머리라서 괜히 한 번 폼을 잡아보는 거냐?
A.. C.. 안 먹으면 될 거 아냐.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종덩굴 종류로 보이는 꽃이 하나 눈에 띈다.
다가가서 보니 세상에, 종덩굴 종류가 아니고 매발톱이다.
화단에서 키우는 매발톱이 어떻게 이런 산중에까지 왔을까 무척 궁금했다.
누군가가 씨를 가져다 산에다 뿌렸을 거란 추측을 해본다.
여기서 누군가란 사람일 수도 있고 조류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집에 돌아와 자료를 참조해보니 매발톱이 원래 야생화란다.
이제까지 산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길가 화단에서나 보았었기에 당연히 순수 원예종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매발톱의 꽃을 산에서 보다니 정말 신기하기 그지없다.
참고로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매발톱꽃' 이 아닌 '매발톱' 을 정식 명칭으로 채택하고 있다.
평소 하늘매발톱이란 이름에 왜 "하늘"이란 단어가 들어갔을까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증도 이번에 같이 풀렸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하늘매발톱은 높은 산의 석회암 지대에서 자라지만, 매발톱꽃은 햇볕이 잘 드는 계곡에서 자란다. 하늘과 가까운 높은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이름에 ‘하늘’이 붙은 하늘매발톱은 매발톱꽃보다 키가 작고, 꽃은 크고 푸른색을 띠며, 안쪽은 노란 색이다. 시중에서는 안쪽이 흰색인 꽃을 원예종으로 개발하여 하늘매발톱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진짜 하늘매발톱이 아니다." 라고 되어 있다.
다른 도감에 의하면 하늘매발톱 꽃의 색을 짙은 자주색이라 한 것도 있고 밝은 하늘색이이라 한 것도 있다.
드디어 광대싸리도 개화기로 접어들었다.
광대싸리는 대극과이고 싸리나무는 콩과이다.
싸리나무도 아닌 것이 전체적인 수형이 싸리나무와 유사하다 하여 싸리나무를 흉내냈다는 의미로 광대싸리란 이름을 얻었다 한다.
광대싸리는 암수딴그루인데 주변에 수그루만 보였다.
조록싸리도 한창 개화를 즐기고 있다.
조록싸리, 싸리, 참싸리 모두 잎이 3출엽인데 싸리와 참싸리는 잎 끝이 오목하게 들어가 있고 조록싸리는 잎끝이 뾰족한 게 다르다.
은꿩의다리는 이곳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다.
산형과 식물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산형과 식물만 보면 골치부터 아파온다.
나중에 동정할 일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산형과 식물은 잎 모양은 물론이고 총포와 소총포의 수와 생김새도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이 부분에 대한 사진을 찍어왔다.
산형과 식물들을 모두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룩치라 불리는 왜우산풀의 설명이 가장 사진과 일치했다.
특히 "총포 및 소총포는 녹색이며 가장자리가 백색이고 잎모양으로서 수가 많" 다는 설명이 그러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사진에서처럼 소총포를 잎 모양이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점도 다소 의문이었지만 그보다는 가장자리가 백색인 점이 끌렸다.
잎은 3출엽이고 가장자리에 결각상 톱니가 있다는 점은 사진과 일치했지만 작은잎이 2회 깃꼴로 갈라진다는 점은 사진과 약간 다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소엽은 어느 정도 깃꼴이어서 최종적으로 왜우산풀로 결론지었다.
층층나무는 이제 개화기를 접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밤나무의 수꽃이 흐드려지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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