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울에서 6시 30분 발 속초 행 첫 버스를 탄다.
원래 계획된 여행이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찍 눈을 뜬 시각이 속초 행 첫차를 탈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기에 후다닥 준비를 마치고 나선 것이다.
집에서 나온 시각은 5시 조금 넘어서이다.
내 산행은 대개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물론 평소에 어떤 산은 한 번 가봐야겠다, 하는 정도의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면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뿐이지 계획은 항상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하나?
버스가 두어 시간을 달려 드디어 한계령에 도착하더니 일단의 등산객들을 풀어놓는다.
등산객들이 많이 내리자 초행인 나는 혹시 이곳이 오색이 아닌가 싶어 한 사람에게 물으니 다음에 정차하는 곳이 오색이란다.
설악산은 오래 전에 결혼기념여행 차, 지금은 어딘에 있는지도 모르는 콘도에 두 번인가 왔었고 등산을 위해 방문하기는 처음이다.
한계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버스가 내리막 사행도로에서 곡예를 하듯 이러 저리 방향을 바꾼다.
그 흔들림에 편승한 내 몸도 꿈속인 양 뒤척인다.
그 와중에도 눈에 드는 설악의 수려한 풍광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아생화고 뭐고 이 산수 속에 묻힐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오색정류장에 내리니 지나던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넨다.
좋은 데 오셨는데 민박은 하지 않을 거냐고 묻는데 말이 질문이지 사실상 그렇게 하라는 권유이자 자신의 집을 일박 장소로 정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의 피력이나 마찬가지다.
얼마냐고 물으니 혼자 온 거 같으니 만 오천 원만 받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일단 강원도에 온 김에 여기 저기 좀 들려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기에 그 정보에 대해 고마워하면서 혹시 여기 머물게 되면 그 집을 민박 장소로 택하기로 약속했다.
항상 그렇듯이 교통편이나 숙식 문제 등에 대해 특별한 준비 없이 길을 떠났기에 우선 정류장에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산행 중 먹을 점심거리를 좀 준비하기로 한다.
마땅한 게 없어서 계란과 빵 정도만 사고 만다.
주인장의 말씀에 의하면 태풍 매미가 한 번 심술을 부려놓고 간 이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한다.
이 말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파악하는데는 시간이 좀 걸렸다.
등산을 다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주인장의 말씀이 되살아났다.
상인들에겐 매미가 불경기에 대한 주범이지만 내게는 야생화 초토화의 원흉이었던 것이다.
버스가 오는 중에 무슨 휴게소에 들렸는데 도로변 경사면에 자주개자리가 잔뜩 심어져 있었다.
자주개자리는 유럽 원산으로 목초용으로 들여와 재배하던 것인데 지금은 야생으로 퍼져 나갔다.
예전에 '알팔파'라 불리던 바로 그 풀이다.
꽃은 자주색인데 색이 진한 것도 있고 연한 것도 있었다.
같은 장소에 전동싸리와 흰전동싸리가 섞여 자라고 있었다.
지나는 차들이 일으키는 바람 때문에 사진 찍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는데 꽤 많은 샷 중에 간신히 몇 장 정도 건졌다.
꽃은 이렇게 생겼다.
가게에서 물건 값을 지불할 때 보니 지갑이 텅텅 비었다.
우선 상가촌 내에 있는 한 슈퍼에서 돈 좀 찾은 후에 그 유명하다는 오색약수터를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약수터가 안 보인다.
다리 아래에 사람들이 몇몇 모여 있기에 가보니 그게 바로 약수터란다.
암반에 바가지 크기만큼 뚫려 있는 웅덩이 속 갈라진 틈새에서 물이 조금씩 솟아오르고 있다.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종지로 뜰 수 있을 만큼의 물이 고이기를 기다리는데도 좀 시간이 걸린다.
그 옆에 큰 통을 놓고 그걸 다 채우려는 사람이 두엇 있는데 차례 기다렸다가는 반나절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나야 뭐 약수의 효능 같은 거 원래부터 믿지도 않거니와 설사 효능이 있다고 믿더라도 그다지 밝히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돌아서려는데 고맙게도 종지를 쥐고 있던 사람이 기왕 오셨는데 물 좀 드시고 가라 한다.
건네준 물 받아 마셨는데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있는 것이 일반 약수와는 많이 달랐다.
나중에 돌아오면서 보니 마침 아무도 없기에 모친께 드리려고 갖고 있던 물병에 가득 담아왔는데 모친께서는 비위에 맞지 않으시다면서 손사래를 치신다.
등산로로 들어선다.
팻말에는 등산로란 말 대신 '주전골 자연관찰로' 라고 되어 있다.
자연관찰로란 단어를 보자마자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일단 인위적으로 등산로를 정비해놓았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자연 상태의 등산로가 아니다.
그건 그만큼 야생화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진다는 말과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비록 자연관찰로인 탓은 아니지만 이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이전에 이곳을 강타한 태풍 매미가 계곡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아서 그 넓은 계곡에는 온통 위에서 굴러온 크고 작은 돌들뿐이다.
산 골짜기마다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계곡의 식생들은 그 이후 아직까지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계곡은 녹색 대신 갈색이나 회색만으로 치장하고 있어 보는 눈에 실망감만 안겨준다.
주전골은 점봉산의 북쪽 계곡이다.
점봉산은 우리나라 자생 야생화의 20%가 자라고 있을 정도로 손꼽히는 야생화의 보고라는 말을 책에서 봤기에 진귀한 야생화들 좀 만나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컸었는데 그 잔뜩 부풀었던 기대는 번지점프하는 사람의 간처럼 완전히 오그라들었다.
초토화된 계곡 탓인지 지금 시점이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야생화고 뭐고 등산이나 하다 가는 게 좋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등산로 입구에서는 제법 여유를 가지고 주변의 나무들에 눈길을 주면서 걸었다.
호두나무에 열매가 맺혀가고 있다.
물푸레나무, 당단풍나무, 소태나무, 벚나무, 산뽕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 느릅나무, 서어나무, 까치박달, 조릿대 등등이 눈에 든다.
나무의 수형과 잎 모양, 혹은 열매를 보면서 나무 이름을 알아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오늘의 내 기대치는 야생화만 편애하여 나무들은 졸지에 그다지 큰 환대를 받지 못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겪는다.
자연관찰로라고 몇몇 안내 팻말을 세워두었는데 그중 지의류에 관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팻말에 있는 사진을 보니 평소 많이 봐왔던 것인데 이제까지 이름을 몰랐었다.
산에 가면 바위 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바로 지의류였던 것이다.
지의류는 균류(자낭륜류 또는 담자균류)의 1종과 조류(남조식물 또는 녹조식물)의 1종이 결합하여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는 식물체라 한다.
따라서 지의류는 한 식물의 종명이 아니다.
지구상에 지의류는 2만 종이 넘는다.
균류는 조류에게 살 터전을 제공하고 조류는 균류에게 영양분을 제공한다.
대기 독성물질 중 대표적인 것이 이산화황인데 이 이산화황이 많은 곳에서는 지의류가 살 수 없다.
따라서 지의류가 많은 곳은 공기청정지역이다는 말이 되는데 이 때문에 지의류는 대기환경의 지표식물로 활용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팻말에 있는 내용과 인터넷에서 조사한 내용의 요약이다.
바위 틈새마다 돌양지꽃들이 잔뜩 자라고 있다.
돌양지꽃의 작은잎은 달걀형이고 잎 뒷면은 흰색이다.
등산로 우측으로 성국사란 단촐한 절이 하나 나타난다.
뜰에 오색화가 피었다 하여 한때는 오색석사라 불렸던 곳이라 한다.
오색화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 오색화가 얼마나 진귀했으면 이 일대가 오색리이고 절명도 오색석사이며 근처의 약수 이름도 오색약수이겠는가를 생각하니 그 나무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실체는 모르되 그 전설만 절간에 있는 약수에 담아 한 모금 마시고 돌아선다.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많은 탐방객들에게 그랬듯이 말없이 나를 배웅한다.
먼 훗날 내가 오늘 한 이 발걸음도 전설이 되려나.
좀 더 오르니 선녀탕이 나타난다.
밝은 달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반석 위에 날개옷을 벗어놓고 목욕을 하고 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당시에는 수량이 풍부하고 장소가 은밀했었을까?
지금의 모습이라면 선녀가 아마도 다른 장소를 물색했을 거란 쓸데없는 생각이 스칠 만큼 소는 그다지 멋스럽지 않다.
여하튼 선녀나 그 후손에 관련된 지명이 근처에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골이 깊어 나뭇꾼이 이곳까지는 발걸음을 하지 못했었나 보다.
야생화는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수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곡만 제외한다면 산세는 꽤나 훌륭하다.
눈을 들면 곳곳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망막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역시 산이란 바위가 좀 있어야 제 멋이다.
긴 세월 동안 풍화과정을 겪어 조성된 경관이겠지만 그 암반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수목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을까?
확실히 유아독존보다는 공존 쪽이 더 자연스럽고 상승효과를 낸다.
인간사도 이와 같을진대 왜 산중에서 일었던 이런 각성은 속세로 돌아만 가면 깡그리 잊혀지는 건지.
금강문을 지나면 삼거리나 나온다.
좌측으로 가야 정상으로 항하는 길인데 500m 우측에 있는 용소폭포에 들려보기로 한다.
천년을 살던 이무기 암수가 승천하는데 준비가 안된 암놈이 승천을 못하고 이곳에서 폭포와 바위가 되었다는 말이 팻말에 적혀 있다.
그런데 설명내용이 좀 엉성하다.
이곳 뿐만 아니라 주전골 내의 안내판 속의 설명문들은 대부분 애매모호한 표현 일색이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글 자체도 별로 매끄럽지 못하다는 인상이 짙다.
명성만큼 작은 일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좀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인다.
그 빈약한 설명 때문에 승천을 이루지 못한 암놈 이무기의 한은 내 가슴 속에 아무런 동정심도 남기지 못한 채 소 내에서 무한궤도처럼 뱅뱅 맴돌기만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걱정은 나만의 기우일까?
용소폭포에서 다시 삼거리로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야생화다운 야생화가 모처럼 선을 뵌다.
금마타리다.
아마도 내가 자기 걱정해준 걸 고마워 한 이무기가 선물로 내놓았나보다.
용소폭포에 들리길 잘 했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상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흔하게 피어 있다.
그러길래 착각은 자유라 했겠지 뭐.
금마타리는 뿌리잎과 줄기잎이 다르다.
뿌리잎은 긴 잎자루가 있고 단풍잎처럼 5~7개로 갈라진다.
줄기잎은 마주나는데 잎몸이 중간 정도까지 갈라지고 잎자루가 거의 없다.
수술은 4개이고 암술은 1개이다.
헷실이 좋으니 꽃잎 안쪽에 있는 털까지 선명하게 찍혔다.
정상 쪽에서 본 금마타리는 줄기에 줄로 돋은 털이 선명하다.
혹시나 다른 종류인가 해서 사진을 찍어뒀는데 그냥 금마타리였다.
이 특징이 자료의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아 다른 사진들을 살펴보니 모두 줄기에 털이 줄로 돋은 것으로 보였다.
회나무에 열매가 달렸다.
회나무의 열매에는 5개의 날개가 달려 있는데 반해 참회나무 열매에는 날개가 없고 나래회나무의 열매에는 4개의 날개가 달려 있다.
덤불조팝나무는 군데군데에서 눈에 띈다.
덤불조팝나무의 특징은 수술이 꽃잎보다 2~3배 길다는 것이다.
참조팝나무도 막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꽃은 흰색인데 중앙부가 연한 홍색이다.
수술은 꽃잎 길이의 2배 정도이다.
잎은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인데 중앙 이상에만 톱니가 있다.
드디어 정상인 등선대에 올랐다.
설악산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시원하게 전신을 스친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서북주릉이 조만간 자신도 찾아줄 것을 청한다.
조만간이 아니라 당장 내일 만나러 가겠다고 마음 속으로 약속했는데 결국 당일로 귀가하는 바람에 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 했다.
가운데 보이는 것이 칠형제봉이고 중앙 위로 솟아 있는 봉우리가 귀때기청봉이다.
왼쪽 조금 위쪽으로 구불거리는 도로가 있고 그 끝에 희미하게나마 한계령 휴계소가 보인다.
정상에는 사스레나무가 열매를 맺고 있다.
사스레나무의 열매는 긴 타원형으로 곧게 서는 특징이 있다.
사스레나무라 해서 모두 수피가 하얀 것은 아니다.
자료의 설명에 수피는 회백색 ~ 회갈색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진 속 수피는 회갈색 정도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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