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탐사 일기 - 가평 화악산 (08.07.22) (2)
정상 2/3 지점쯤에 왔을 때 비가 좀 그칠 기미를 보인다.
그동안 터널처럼 어둡던 산길에 어디선가 새어든 빛이 조금씩 어둠을 물리고 있다.
그만큼 하늘의 구름에서 먹빛이 옅어졌나보다.
발길은 비에 젖은 풍경 속을 걷지만 마음은 때때로 지난 겨울 산행 시의 눈 밭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낙엽 풀풀 날리는 가을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고장난 타임머신처럼 상상 속 여정은 시공을 무시한다.
상상은 가끔 녹음이 울창한 나뭇가지 위에 화려한 꽃송이들을 얹어놓기도 하고 죄없는 수목에 삭풍의 시련을 안기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나뭇잎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온 기억의 편린들이 오늘은 대체로 밝은 색감을 자랑하고 있다.
현실의 산속을 홀로 걷고 있음에도 외로움이란 흉물이 제 이미지를 마음껏 표출하지 못하고 있음은 순전히 그 기억의 색감이 갖고 있는 여과작용 때문일 것이라 생각해본다.
추억의 반추는 고립을 심화시키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오히려 그 동반자가 되어 쓸쓸한 감정을 지워내기도 하나보다.
정상에 이르니 바람이 제법 드세다.
세잎종덩굴 사진을 찍으면서 촛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하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눈앞을 스친다.
안개다.
하늘 어딘가에서 뭉텅뭉텅 떨어져 나온 안개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눈 바로 앞에서 안개를 보기는 처음이다.
공기가 축축하여 사진 찍기에 애로가 많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런 흐릿한 날씨는 땀이 많은 내게 최적의 조건이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적당히 불어주니 이 아니 금상첨화랴.
아마도 오늘의 내 양호한 신체 컨디션은 이런 날씨 조건에 기인하고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9. 오리방풀
잎 끝이 거북꼬리처럼 길고 긴 꽃대에 입술 모양의 자주색 꽃이 피기 때문에 야생에서 실물을 보았을 때 구별이 그다지 어려운 편이 아니다.
10. 붉은여로
여로 종류도 참 많다.
우선 꽃 색만으로 볼 때 얘는 여로 아니면 붉은여로다.
여로는 꽃차례가 원추형 겹총상꽃차례이고 붉은 여로는 원추꽃차례이다.
사진에서 보면 주 꽃차례 밑부분에서는 가지가 갈리고 그 가지에서 총상꽃차례로 꽃이 핀다.
이것이 전체적으로 원추꽃차례를 형성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여로의 사진을 보면 가지가 주 꽃차례 윗부분에서도 갈라지는데 밑부분의 가지보다는 길이가 짧아서 전체적으로 원추형으로 보인다.
그러니 사진은 붉은여로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로의 포는 넓은 침형이고 붉은여로의 포는 피침형이다.
사진 속의 포는 넓은 침형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 이 역시 붉은여로임을 입증하는 특징 중의 하나가 된다.
꽃은 밑부분에 수꽃, 윗부분에 양성화가 달리는데 사진 속에서는 구별이 어렵다.
여기서는 6개의 수술과 3개의 젖혀진 암술대가 관찰되는 것으로 보아 얘는 양성화인 것으로 보인다.
11. 단풍취
꽃대를 올린 단풍취는 부지기수로 많았는데 그 중 꽃을 한 송이라도 피운 것은 딱 두 포기 보았다.
12. 털며느리밥풀
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꽃받침 능선을 따라 긴 털이 있다고 보고 결국은 털며느리밥풀로 동정했다.
13. 개시호
14. 꼬리풀
15. 동자꽃
혹시나 털동자꽃일까 했는데 아니다.
털동자꽃은 식물 전체에 긴 백색 털이 많다.
16. 도깨비엉겅퀴
꽃은 원줄기와 가지 끝에서 한 개씩 밑을 향해 핀다.
잎은 밑부분이 귀처럼 되어 원줄기를 감싸고 잎몸은 깃꼴로 갈라지며 갈래조각 끝에 가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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