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8.19 (화) - 금대봉 (1)
벼르고 벼르던 2차 금대봉 행을 마침내 결행하기로 했다.
시기적으로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그 동안은 잦은 비가 이 원행에 대한 실천을 미루는데 좋은 핑게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거리가 워낙 멀고 교통 연결편이 부드럽지 못하기에 선뜻 길을 나설 엄두를 못 냈다는 본래의 사유는 그 핑게 밑에 깔려 맥을 못추었다.
그렇게 시간을 자꾸 흘려보내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든 게 바로 이 날이다.
아무래도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야생화고 뭐고 몽땅 낙엽 속에 묻혀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내 안이한 감각에 일침을 가했기 때문이다.
사실 며칠 전에 금대봉 행 시도가 한 번 있었다.
밤 11시 막차를 타기 위해 동서울터미널로 갔었다.
버스 승차대 앞에서 태백 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승객들에게 그 버스 회사 당직자가 와서는 10분 정도 버스가 연착될 예정이니 로비에서 티브이나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버스 도착과 동시에 호출해주겠다고 한다.
그 말도 못 미더워 난 로비에 있다가도 두어 번 버스 승차대로 가서 버스가 도착했는지 여부를 확인해보았다.
아무래도 버스가 10분 이상 지연될 것이란 예감이 들자 로비에서 티브이 보는데나 열중하기로 한다.
그런데 15분이 지나도 호출이 없는데다 승차대 입구에 앉아 있던 그 버스 회사 당직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경비원에게 물으니 태백 행 막차는 벌써 떠났다고 한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버스 회사 당직자 전화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전화를 했다.
그 사람 말에 의하면 로비에서 2분 정도를 불렀다 한다.
티브이에 집중하느라 내가 못 들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오랜만의 금대봉 행 시도는 어이없게 꺾였다.
이번에는 물론 그런 불상사가 없었다.
밤 11시 막차를 타면서 기사에게 버스가 고한에서 태백으로 갈 때 두문동재 터널을 통과하냐고 물으니 그렇다 한다.
고한과 사북은 이 버스의 경유지다.
터널 입구에서 내려줄 수 있냐고 하니 흔쾌히 그리 하겠다 한다.
터널 입구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이어진 도로가 있다는 사실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막상 기사의 승낙이 있고 나자 이번에는 산행은 일출 직전에 시작할 건데 그 사이 빈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고민거리로 대두한다.
하지만 이건 현장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은 부족한 수면이나 보충하기로 한다.
워낙 내가 버스 안에서 자는데 소질이 없기에 대부분의 버스 이동시간은 잠을 자기 위한 노력 자체로 다 채워졌고 실제 꿈길에 든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버스가 고한에 이를 무렵 눈을 떴는데 몸이 영 개운치가 않다.
터널 입구에 내린 시각은 새벽 2시 5분.
거기서부터 넓은 2차선 도로를 따라 일명 싸리재라고도 하는 두문동재로 이동했다.
그 고개 정상에 금대봉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웬 바람이 이리도 거센지 모르겠다.
거의 폭풍 수준이다.
도로 양편에 키큰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기는 했지만 방풍막 역할을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내 몸에 직접 와닿는 바람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 위에 짙은 어둠이 내려 있다.
날이 흐려 달은 없었지만 다행히도 이 궂은 날씨가 희미한 도로 윤곽마저 지워버리지는 않았다.
도로 옆에 비스듬히 서 있는 자작나무들이 금방이라도 나를 덮칠 것만 같다.
초목들이 그 한밤의 시련을 감내하고 있는 노력이 얼마나 크고 힘겨운지는 그들의 신음소리가 충분히 대변해주고도 남는다.
머리 위에서 시커먼 물체의 기척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면 나무들이 통째로 바람에 쏠리고 있다.
자리를 지켜내려는 산발한 나무들의 안간힘이 어둠속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센 바람이 종회무진하며 먹빛 일색인 풍경을 난도질한다.
방향을 정하지 않고 이리저리 불어대는 바람의 심술에 풍경의 구도가 수시로 바뀐다.
풍경 속에는 시각적 그림뿐만 아니라 청각적 효과음까지 담겨 있다.
어둠이 어느 정도 시각을 차단한 상태이다 보니 청각효과가 득세를 한다.
온갖 소리들이 내가 만든 환청과 뒤섞여 어두운 반공을 어지럽게 휘젓는다.
나무 위에서 갑자기 계곡물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자지러지는 나무들이 내는 신음소리가 계곡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오기도 한다.
오늘의 두문동재 풍광을 주도하고 있는 바람은 소리 진원지의 위치감을 몽땅 앗아가버렸다.
간간이 도로변 숲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몸은 피부 위에 소름을 돋움으로써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작년 여름철 어느 날 새벽 3시 경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을 혼자 오를 때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그때가 생애 첫 정식 야간산행이었는데 야간산행이란 것도 첫 시도 때와 두 번째 시도 때는 이렇게 차이가 나나 보다.
지금은 두타산 때와는 달리 꽤 넓은 도로 위를 걷고 있는데도 섬뜩한 느낌은 반대로 더 하다.
두타산 산행 때는 없던 강한 바람이 더해져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불허하겠다는 듯이 갑자기 일진광풍이 굉음과 함께 우측에 있는 커다란 침엽수의 허리를 내쪽으로 꺾어질 듯 휘어놓는다.
한 마디로 공포영화의 효과음이 아무리 출중하다 한들 이 바람의 위세 앞에서는 감히 명함을 내밀 엄두도 못 내리란 생각이 들 정도이다.
40여 분 후 고개 정상에 도착한다.
바람이 제법 드세기는 해도 산행을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시간에 산행에 돌입할 수는 없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산행이 아니라 야생화 출사이기 때문이다.
미리 파악한 바에 의하면 일출시간은 5시 45분인데 그때까지는 근 3시간이나 남아 있다.
이 빈 대기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다.
들머리에 있는 산행안내소 건물 근처에서 대충 누워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했던 안이한 계획은 혹시 저 바람이 눈치라도 챌까봐 감히 꺼내보지도 못 했다.
이곳은 산중이나 다름없고 고도가 높은데 기온도 그에 걸맞는 숫자를 유지키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오기 전에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언뜻 최저기온이 16도라고 본 것 같은데 체감온도는 그보다 훨씬 더 낮은 듯하다.
춘추용 등산 파카를 꺼내 입으며 나름대로 철저히 대비했다는 점에 대해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파카의 얇은 천 사이를 파고 드는 한기 앞에서 그 느낌은 순식간에 얼어붙고 만다.
그래도 계절이 여름인지라 노숙이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드센 바람이 그 기회마저 앗아가버렸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차가운 기온을 어떻하든 견대내며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 여명 무렵 산행을 시작하느냐, 아니면 야생화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냥 지금부터 산행에 돌입하느냐 하는 양자택일 문제가 내 결단을 끊임없이 재촉한다.
그간 별렀던 시간에 대한 아까운 마음은 결국 전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디서 이 광풍의 파상공세를 피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 빈 시간을 간신히 채워낼 수 있었는데 그 우여곡절의 내용은 이곳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여하튼 나름대로 시간을 떼우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긴 했으나 그 방법이 별로 향기롭지 못하다 보니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며 온갖 회한이 논리적 회로를 벗어나 두서 없이 뇌리에 부침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야생화 탐사를 지속해야 하는 건가?
야생화 탐사가 직업도 아닌 단순한 취미인데 그 노력 정도가 너무 깊은 건 아닌가?
'미쳤다' 는 사전적 의미에 혹시 지금의 내 경우가 포함되어 있는 건 아닌가?
누군가에게 오늘의 내 경험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의 표정은 과연 어떨까?
오늘의 이 무모한 경험으로 인해 실기한 기회비용에 오늘 만큼의 정성을 쏟았더라면 내 일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윤택해지지 않았을까?
오늘의 이 경험이 내 인생 후반기에 질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작으나마 반석이 될 수는 있는 건지?
다른 사람의 일반적 기준을 설득해낼 수 있을 만큼 오늘의 내 잣대는 튼실한가?
만용과 진정한 용기의 경계는 과연 어디쯤인가?
자연과의 고감이란 무엇인가?
자연은 인간의 도구에 불과한 언어 이외에 어떤 방식으로 교감을 시도하는가?
지금 저 금대봉 곳곳에서 어둠과 바람 속에 노출돼 있는 야생화들은 내 방문을 인지하고나 있는 걸까?
인지하고 있다면 나를 맞이하는 입장은 환대일까, 아니면 외면일까?
내 행동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측은지심일까, 아니면 칭찬일까?
두문동재 터널 입구에 내린 내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나?
차라리 태백시까지 가서 피시방이나 찜질방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적당한 시간에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왔더라면 괜찮았지 않은가?
태백시에서 이곳을 경유하여 고한으로 가는 첫 버스가 거의 9시나 되어야 있기에 일찌감치 산행을 시작하려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날 미리 전화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택시비는 2~3만원 정도 되리라는 게 태백콜택시회사의 전언이다.
사실 그 돈이 아까워 기사에게 두문동재 터널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한 것이었다.
산중의 어둠 정도야 각오한 바이기에 그다지 큰 장애는 되자 않았는데 폭풍우 수준의 바람은 전혀 의외의 변수였다.
어떤 선택의 시점에서 금전적인 고려만이 능사는 아닐 터인데 그 엄연한 진리를 간과했다.
금전적 절약에 대한 반대급부가 이 정도일 줄 미리 알았다면 그깟 돈 2~3만원 아끼고자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금전에 대한 고려만으로는 결과에 대한 득실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사후회한은 아무리 빨라도 문자 그대로 사건 후순위에 불과하다.
그러니 모든 변수에 대한 고려는 선택 이전에 충분히 감안했어야 했다.
살아 오면서 참 많이도 느낀 당연한 수순이건만 난 또 다시 그 교훈을 망각했다.
이제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또 동일한 과오를 반복할른지.
갖가지 상념들이 바람보다 더 너울거리며 뇌리에 부침하는 사이 어느새 새벽은 이 산속에 여명을 척후로 내보냈다.
밖으로 나가보니 바람의 세기는 변함없는데 수목들과 산의 윤곽은 한층 더 뚜렷해졌다.
자리를 정리하고 산행에 든 시간은 5시 경.
들머리에서부터 등산로 주변에서 바람에 무기력하게 흔들리고 있는 풀꽃들이 지친 모습으로 간밤의 고초를 내게 호소하고 있다.
시간은 아직 내가 일일이 그들의 정체를 인지할 만큼의 빛을 허락하고 있지 않았다.
대충 그들과 눈인사만 교환하면서 산을 오른다.
해가 뜨면 다시 내려와 처음부터 산행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들에게 미안할 일이 없다.
희미한 윤곽만 본 것에 불과하지만 꽃을 피운 풀꽃들의 종류와 수가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 처진 기분에 어느 정도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곧 다시 내려와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할 테니 그때 우리 서로 간밤의 하소연을 교환하자꾸나.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주변의 식생들에 대한 윤곽이 확연해질 정도로 날이 밝아온다.
그런데 이쯤에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한다.
일출과 함께 잦아들 것으로 예상했던 바람이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처음 본 식물들을 몇몇 만났지만 디카를 꺼내들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시험삼아 흰물봉선의 꽃대를 잡고 꽃 접사를 시도해보는데 여의치가 않다.
이쯤에서 일출 후 산행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초지는 까맣게 잊혀졌다.
이제까지 내 사진 촬영을 방해하던 어둠은 지가 무슨 자연의 충복이라고 그 의무를 바람에게 넘겼다.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아 천천히 주변만 관망하면서 금대봉까지 오른다.
그곳에도 디카에 담고 싶은 것들이 꽤 있었는데 산자락에서보다 훨씬 더 거센 바람이 그 욕구를 제어했다.
그들 앞에 렌즈를 들이대려는 내 노력은 풀꽃들이 내 모델이 되는 걸 허용치 않으려는 바람의 시샘으로 인해 번번히 좌절되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에 정상 한 편에 서 있는 감시탑이 눈에 띈다.
3미터쯤 되는 높이의 철탑 위에 가건물을 하나 얹어놓은 것이다.
철계단이 철탑 가운데로 나 있고 그 끝에 가건물 밑쪽 입구가 열려 있어 우선 그곳으로 올랐다.
막상 오르고 보니 정상보다 불과 몇 미터 더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아니면 가건물이기에 그 부실한 구조가 오히려 상승효과를 냈는지는 몰라도 풍속에 대한 느낌은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사면에 달린 창문이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것 같은 느낌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는데 가건물은 물론 밑을 지탱해주고 있는 철구조물 자체가 곧 무저녀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은 쉽게 물러가질 않았다.
바닥은 협소하고 축축했다.
돗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불안한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밖을 내다보니 온갖 초목들이 광풍에 이리저리 쓸리며 자지러지는 모습이다.
나무들이 흔드리는 모습보다 반공을 지나는 강풍의 괴성이 더 나를 움츠러들게 한다.
하늘은 밝았다가도 바람이 어디선가 운무를 몰고 오면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시간이 그 선후 감각을 잊었나 보다.
아침과 여명이 아직끼지도 교대문제로 심하게 다투고나 있는 듯한 형국이다.
가야 할 앞산이 시야에 들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운무라는 건 단지 멀리서 보았을 때나 감지되는 수증기의 집합체인 줄만 알았던 상식은 눈앞에서 해일처럼 밀려왔다가 내 뒤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그 실체 앞에서 간단히 뒤집어지고 만다.
키가 크다고 반드시 강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나무들이 거의 45도쯤 허리를 꺾고 있는데도 그 밑에 있는 초본들은 지면에 얼굴을 댔다가도 곧바로 꼿꼿이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손에 살짝 힘을 주어 만지기만 해도 쉽게 부러지던 그 연약해 보이던 줄기들 속에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그런 강인한 복원력이 가능한 걸까?
시간이 지나면 나무는 비록 부러져도 저 풀꽃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난 악몽을 훌훌 털어내고 의연히 제자리를 지켜낼 것만 같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람의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자 난 또 다시 스스로에게 2지선다형 문제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야생화 탐사고 등산이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집으로 가는 것과 바람 잦아들기는 기대난이니 그냥 산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한다.
딱 두 개의 항목밖에 없는 문제인데도 해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혹시라도 내가 들어 있는 이 구조물이 무너지기라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연옥의 아우성 같은 바람의 굉음에 기가 질려 일단은 가건물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간밤을 평소처럼 보내지 못한 점이 몸에 무리를 주었는지 신체 컨디션이 별로인데다가 마음까지 바람의 기세에 철저히 꺾였다.
그래도 그간 들인 공이 아까워 일단 좀 더 등산로를 따라가보기로 한다.
정상에서 내리막을 한참 걷다 보니 예의 그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 방문 때 이곳이 갖가지 기화요초들의 경연장이었음을 알고 있었는데 주인공들만 바뀌었지 지금까지도 그들의 미색 자랑은 끝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이곳에 이르니 내 정성에 감동이라도 한 양 바람의 기세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그 정도의 변화가 내게 재삼 야생화 촬영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의지가 뜻한 바대로 필름에 담기는 걸 바람이 아직은 허락하지 않았다.
피사체도 흔들리고 카메라도 흔들리고 나도 흔들렸다.
일 순간 모든 게 귀찮아진다.
사진이고 산행이고 모두 다 접어버리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어진다.
많은 풀꽃들이 눈에 들었지만 일부는 그냥 지나치고 일부는 대충 디카에 담았다.
말이 다카에 담은 거지 사진의 선명도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다 보니 찍힌 사진들 중에 제대로 된 게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평소처럼 하나의 식물이라도 나중의 동정을 위해 요소요소 촬영하는 성의도 버렸다.
나중에 집에 와서야 크게 후회했지만 당시로서는 전혀 의욕이 나질 않았다.
산행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마저 포기한다면 간밤에 한 고생이 너무 허망할 거 같아 대덕산 정상을 밟은 후 그쪽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도중에는 금대봉 주변에서처럼 눈에 띄는 야생화가 거의 없었기도 했지만 이미 제대로 꺾인 의기가 디카를 철저히 외면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식물을 만나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으면서도 막상 손은 디카로 가지 않아 그냥 눈도장만 찍고 지나친다.
결과적으로 야생화 출사라는 명분에 관한 한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하루였다.
발걸음은 오랜 지기처럼 아주 쉽게 무너진 마음에 동조를 했다.
아니 오히려 마음보다 발걸음이 더 늘어졌다.
이전에 다녔던 산에 비해 그다지 경사도도 심하지 않고 거리도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피로감은 훨씬 더 컸다.
대덕산에 오르는 갈림길을 만났을 때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들고 싶어 하는 발길을 대덕산 쪽으로 돌리는 데도 상당한 자기설득 노력이 필요했다.
그 갈림길에서 약 1.3km 거리에 위치한 대덕산을 오른 후 하산을 위해서는 다시 그 갈림길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고민은 검룡소 갈림길에서 다시 한 번 나를 시험했다.
검룡소도 갔다가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야 하산길로 접어들 수가 있었다.
검룡소가 한강 발원지라는 의미가 내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기에 갈림길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갈림길에 있는 다리 위에 서서 그 밑을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네온다.
돌아보니 거동조차 힘겨워 하는 노부부이시다.
할아버지께서 검룡소 가는 길이 숲속으로 나 있어 아주 좋다는 말과 함께 검룡소 물이 예전에는 약수로 이용되었었는데 지금은 그 물에 접근할 수 없도록 계단을 설치해 두어 불만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친척 중에 그 물 마시고 수 년 간 백약이 무효이던 어떤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말도 곁들였다.
노인분들도 다 다녀오신 길인데 내가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지, 하는 생각보다는 그분의 방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그 자리를 피하기 위해 "저도 직접 한 번 보고 올게요." 라는 말과 함께 할 수 없이 검룡소로 향했다.
불과 600미터밖에 안되는 거리에 있는 검룡소다.
항상 그렇듯이 검룡소의 모습은 그곳에 있는 문화안내인이 전하는 의미보다는 훨씬 더 초라했다.
어쩌면 검룡소 입장에서는 더 초라한 건 나였을 것이다.
입구 구멍 위에 얹어놓은 돌 틈 사이로 물이 쉴새없이 솟아올랐다.
그 돌 밑에 커다란 공동이 있는데 온 산으로 스며든 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기에 하루에 2천 톤 정도의 물이 용출될 수 있다는 게 안내인의 설명이다.
그 물빛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자니 불현듯 간밤에서부터 첫새벽까지 이어졌던 그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그 두려움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 느낌이 오늘의 산행에서 금대봉과 대덕산, 검룡소가 내게 준 선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선물의 정체를 밝혀내는 건 순전히 내 몫이겠지.
화두란 원래 정답과 함께 제공되는 것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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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각시취
꽃이 머리 모양으로 둥글게 모여 피는데 현장에서 관찰하다 보니 마치 벌집처럼 보였다.
혀꽃은 없고 대롱꽃만 있다.
아직 완전히 핀 상태는 아니다.
만개한 사진을 보니 수술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줄기 밑부분 잎은 깃꼴로 갈라지고 윗부분 잎은 갈라지지 않는다.
자료에서 취 종류를 모두 조사해 보니 취 종류 중에 잎이 깃꼴로 갈라지는 건 비단분취, 구와취, 각시취, 큰각시취 정도이다.
2. 큰수리취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꽃송이가 둥글기에 절굿대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나중에 도감을 보니 절굿대는 꽃이 위를 향해 피는데 사진에 찍힌 녀석은 옆을 보고 있다.
수리취 종류의 총포는 둥글고 거미줄 같은 털로 덮혀 있다.
총포조작은 끝이 뾰족한 선상 피침형이다.
사진에서는 총포만 보이고 꽃은 아직 피지 않은 상태이다.
큰수리취의 잎은 삼각형이다.
잎 모양이 달걀형 또는 달걀꼴 긴 타원형인 것을 수리취라 한다.
줄기 아래쪽 잎은 잎자루가 길다.
절굿대의 잎은 깃꼴로 갈라져 있다.
잎 뒷면에는 흰 털이 빽빽히 나 있어 흰빛을 띈다.
줄기는 자줏빛이 돌며 거미줄 같은 털이 빽빽하다.
3. 큰제비고깔
꽃은 짙은 자주색으로 원줄기 끝의 총상꽃차례에 달린다.
작은 포는 꽃자루 중앙에 달린다고 되어 있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밑부분에 달리는 것이 더 많다.
꽃자루와 꽃대에 털이 많다.
꽃받침조각은 5개이고 꽃잎은 꽃받침 안에 들어 있다 하는데 어떤 게 꽃잎인지는 모르겠다.
잎은 단풍잎처럼 3~7개로 갈라지고 가장자리에는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제비고깔은 이북에서 자라며 갈래조각이 다시 또 갈라지는 등 잎이 더 복잡하게 갈라진다.
줄기 밑부분과 꽃차례 이외에는 거의 털이 없다.
식물 전체에 털이 있는 것을 털제비고깔이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잎을 구부렸더니 꺾어지면서 초록색 유액이 나왔다.
4. 부전제비고깔
꽃 색이 좀 연한 게 눈에 띄기에 혹시 다른 종인가 해서 사진을 찍어봤는데 그 느낌이 맞았다.
큰제비고깔은 꽃이 짙은 자주색인데 비해 부전제비고깔은 보라색이다.
소포가 꽃자루 중앙에 달린다고 되어 있는데 이 역시 큰제비고깔의 경우처럼 실제로는 밑부분에 달리는 것이 더 많았다.
꽃차례와 작은꽃자루에 털이 많은 건 큰제비고깔과 동일하다.
잎 모양도 큰제비고깔과 유사하다.
큰제비고깔과 달리 잎 뒷면과 잎자루에 털이 많다.
5. 눈빛승마
꽃은 흰색으로 큰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황새승마는 흰색의 꽃이 겹총상꽃차례에 달린다는데 눈빛승마와 어떻게 다른지 실물을 아직 보질 못했다.
산에 갈 때마다 눈여겨 보았는데 황새승마는 아직까지 한 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잎은 2~3회 3출 또는 3출 깃꼴로 갈라진다.
꽃잎은 3~4개로 깊게 2개로 갈라지는데 사진에서 확인이 된다.
꽃차례에는 짧은 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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