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반/단상(斷想) 모음

한 주의 정리

by 심자한2 2009. 7. 4.

 

지난 일 주일은 참으로 바빴습니다.

업무가 바쁜 게 아니고 마음이 바빴지요.

두뇌의 회전력 상당 부분을 내가 처한 현실에 대한 좌고우면에 할애했습니다.

주변으로부터의 자극이 꽤 많은 한 주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든 게 사람과의 관계라는 말이 정말 실감났었습니다.

직원도, 현채인도, 외부 관계인들도 모두 내 마음과는 몇 광년쯤 떨어진 곳에서 내 곁으로 순간이동한 사람들로만 보였습니다.

공통의 언어를 쓰면서도 소통의 거리는 우주의 척도가 필요할 정도로 멀었습니다.

혼자서 마음속으로 상대를 질책하는데 상당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내가 오히려 외계인이었을 거란 정리를 도출해내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지요.

평소에 수도 없이 느껴왔던 진실이니까요.

모두 우리가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데서 비롯된 일들일 겁니다.

이 결여의 이면에는 이기주의가 있습니다.

이기주의란 반드시 상대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인식이 있다면 이기주의는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겁니다.

 

남보다는 내가 우선입니다.

내가 없으면 남도, 세상도, 우주도 없습니다.

이런 논리가 자존과 자긍을 바르게 세우는데 적용된다면 바람직하겠지만 그 배면에 상대에 대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면 사회에 독이 됩니다.

특히 내 생명과 관계된 일에 대해서는 이기주의는 극에 달합니다.

내가 눈을 감는 순간 나 이외의 모든 건 내 죽음이란 블랙홀 속으로  흡인됩니다.

내가 없으면 삼라만상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맞는 말일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 없이 내가 사라져도 세상은 버젓이 존재합니다.

블랙홀 속으로 사라진 세상은 단지 나를 중심으로 내가 창출해낸 우주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일 겁니다.

 

영혼에 얼룩이 생기거나 마음에 파도가 일 때는 으레 그래 왔듯이 지난주 어느 날에도 스스로 던진 화두에 대한 숙고에 지쳐 퇴근 후 차를 몰고 한 바닷가 언덕으로 나갔습니다.

난 바다보다는 그 주변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거나, 바다가 전해주는 밀어를 귀담아 듣거나, 바다가 풍기는 냄새를 흠향하는 식물들에 더 애착이 갑니다.

울퉁불퉁한 절벽 위를 걷다가 한 식물을 만납니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Seaside Heliotrope"라는 한해살이풀입니다.

언뜻 보니 녀석에게 배추벌레 같이 생긴 것들이 꽤 많이 달라붙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모두 꽃차례입니다.

꽃차례 윗부분에만 꽃이 몇 개 달려 있고 그 아래는 모두 이미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모습이 배추벌레를 연상시켰던 겁니다.

일 년 중 비도 거의 없는 이곳에서 바짝 마른 토양에 뿌리를 박은 상태에서 어쩜 저리도 실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자신은 이제 조만간 우주라는 영역에서 영원히 사라질 텐데 왜 저리도 번식에 집착을 하는 건지.

왜 얘는 차라리 그런 노력을 시들어 가는 잎에 윤기를 더함으로써 미색을 돋구는데 쓰지 않는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면 그건 단순히 바라보는 인간의 안개 낀 거울 탓일 겁니다. 

모든 식물의 지상 목표는 자신의 삶이 아니라 멸종의 회피입니다.

식물에게야 의식이란 게 없으니 이는 모두 자연의 섭리 일부일 겁니다.

자연의 섭리는 왜 모든 동식물에게 자손번식을 지상과제로 명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굳이 이를 알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언의 엄명을 따를 뿐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유전자가 자연의 순리라는 이름표를 달아 놓은 유일무이한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식물에게도 지능이란 게 있다면 이들은 과연 사는 동안 자신의 영달을 포기하고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자손번식이란 절체절명의 목표를 지켜냈을지 의문입니다.

인간의 예를 준용한다면 답은 부정적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지능이란 게 자연의 섭리 측면에서는 당연히 독소가 됩니다.

인간이 지능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시킨 건 어쩌면 자연의 실수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지능을 후일 자연의 순환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하기 위해 당장의 부작용을 감수하고 있는 자연의 깊은 배려인지도 모르겠지요.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런 갑론을박에 결론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저 헬리오트로피움을 닮으려면 아직도 요원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평소 자주 가던 바닷가 언덕 위에 서보았습니다.

오늘따라 절벽 아래 지중해의 물빛이 유난히 찬란합니다.

옥이 발하는 빛을 보면서 바다 빛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7월초의 햇살에 반짝이는 발 아래 지중해의 옥 빛이 참으로 곱습니다.

그 속에서 몇몇 현지인들이 유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평소 그렇게도 혐오스럽던 자들인데 지중해는 그들마저 모두 포용하고 있습니다.

바다만 아름다운 게 아니고 그 그림 전체가 아름답습니다.

문득 인간도 결국은 자연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이 인간은 처음부터 자연의 일부였다는 각성에 자리를 내줍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를 힘들게 했던 저들이 저리도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일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안의 때는 외부의 분진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이기주의와 탐욕이 만든 결과물일 것이라는 반성이 이 각성 뒤에 슬그머니 매달립니다.

간간히 흐르던 구름들이 모두 내 안으로 자리를 옮겼는지 하늘은 텅 빈 채 수평선 위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휴일에는 아무래도 직원들과 이곳으로 소풍 한 번 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 단상(斷想)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벽은 없다.  (0) 2010.08.09
길 위의 단상  (0) 2010.08.07
투덜투덜...  (0) 2009.08.06
어느 휴일의 두서 없는 기록  (0) 2009.06.28
어느 날 아침  (0) 2009.06.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