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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단상(斷想) 모음

투덜투덜...

by 심자한2 2009. 8. 6.

 

아무래도 슬럼프가 왔나 봅니다.

슬럼프란 놈은 어릴 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많이 해봤는지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 와 있곤 합니다.

 

근자에는 대체로 기분이 우울 모드입니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렇다면야 뭐 그런가 보다 하는데 일상은 대체로 전과동입니다.

환경은 동일해도 마음은 신체처럼 주기적인 사이클을 타나 봅니다.

오르락내리락 하기 힘든데 그냥 정점에 머물러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막상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제는 변화가 없는 삶이 지루해지기 십상일 겁니다.

더구나 정점이 아니라 밑바닥에만 쭈욱 머무는 경우에는 정말 죽을 맛일 겁니다.

이래 저래 현실에 만족하기는 대~따 어려운 모양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콕, 콕 찍어내 보려다가 그만 둡니다.

그래 봐야 또 도인인 척 하면서 "모든 건 결국 내 탓이로소이다" 라는 결론을 내릴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그저 무대응을 처방으로 내립니다.

어차피 사이클이 있을 테니 지가 때 되면 알아서 물러서겠지 라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뭐 그러고 보니 어차피 도인인 척 하기는 마찬가지인 본새가 되었네요.

 

요즘은 야생화 출사인지 뭔지 하는 취미생활도 봄날 땅에 떨어진 목련 꽃잎 같은 느낌입니다.

습관적으로 금요일만 되면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 올 때는 디카 메모리에 상당히 많은 인연을 담아 오지만 정작 마음속 공허는 깊어만 갑니다.

이전 같으면 내 안의 공간 상당 부분이 새로운 인연들이 방사하는 향기와 색감으로 채워졌을 텐데 이제 그 둘은 잦은 사랑싸움 끝에 돌연 결별을 했는지 도통 교감을 나눌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일도 어느 곳에선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허리를 굽히고 있을 겁니다.

눈에 드는 것은 일단 찍고 볼 텐데 이들이 심안에까지 스며들리란 보장이 없으니 발걸음이 크게 가볍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일단 나가고 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지금 리비아란 나라에 머물고 때문입니다.

한때 가졌던 말년 전원생활에 대한 꿈은 지금도 접고 있지 않지만 내일이면 아마도 그 꿈에 균열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원생활이 제 아무리 용인 척 해봐야 꼬리는 이무기도 못 되는 새끼 뱀일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의 내 야생화와의 덧없는 짝사랑처럼 말이죠.

그림을 그릴 때는 그럴 싸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모두 형편 없는 졸작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는 어떤 지인의 말이 왜 이 시점에서 수긍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해 온 야생화 탐사와 그간 그려온 노후생활에 대한 그림이야 단순한 스케치 정도도 못 되니 더욱 그러할 겁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기분으로 살라는 진부한 정답에 전 오늘도 똥글뱅이 대여섯 개 크게 그리고 그 한 쪽에 별꽃 두어 개 그려놓고 맙니다.

내일의 내 출정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명분을 오늘 미리 걸어두고자 합니다.

그래야 내일 어느 해변에 주차한 차 안에서 씹는 빵 조각이 제대로 넘어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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