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트리폴리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리비아 제3의 도시인 미주라타를
방문하였습니다.
편도 2시간 반에서 3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지요.
풍경은 내전 이전에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더군요.
길가에는 커다란 유클립투스들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늘씬한
자태를 뽐내며 준엄하게 도열해 있었습니다.
햇살마저 고우니 내전 동안 양측 교전자들의 호기가 이 나무들보다 더 높이
하늘을 찔렀을 그 상황은 책 속에서나 읽었던 옛 전사들의 무용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은 평화로와 보였습니다.
인간의 과욕 속에서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고....
이 점은 자연도 마찬가지이지만 풍경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은 개별성이 강하고 자연은 일체성이 강한 탓인 듯합니다.
변화란 자연의 섭리이기에 서러워 할 일이 아님에도 전쟁으로 인한 목숨의
손실이 안타까워지는 건 그 손실이 순리에 부응만 했더라면 감수하지 않아도
될 그런 손실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리비아의 민초들보다도 더 작은 몸짓으로 하늘거리는 길가의 각종 꽃들은
해탈자의 얼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자연의 시혜를 한껏 즐기고 있었지요.
이들은 정의를 부르짖는 승리자의 가치는 곧바로 새로운 적을 만들고
자유를 부르짖는 혁명가의 신념은 조만간 새로운 구속이 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나 있는 것처럼 인간사에 초연하기만 합니다.
저 화려해 보이는 꽃들도 수분만 끝나면 미련 없이 한때의 영화를 내려놓고
스러지겠지요.
이미 열매를 매단 것들은 때가 되면 종자들을 모두 자연 속으로 흩뿌린 후
한결 가벼워진 몸체를 대지에 편안히 누일 겁니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우고 내려놓는 게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의 질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니까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이 초심(草心)이 아닐까 싶네요.
리비아인들도 이 초심을 이해하고 있다면 내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이렇게
밤마다 총성이 계속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지역간의 논공행상에서 내 밥그릇을 좀 더 채우려다 보니 공동의 목표가
달성된 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전운은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그런 전운이 여전히 감도는 도로를 달리고 달려 미주라타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내전 중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곳이 미주라타인지라 이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길가에는 불타버린 탱크의 잔해가 점점 더 많이 보이고 무너진
건물들 수도 점점 늘어만 가더군요.
그 와중에서도 미주라타인들의 일상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지요.
부서져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 1층에서 태연히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결혼은 일륜지대사인지 시커멓게 그을린 건물 옆에서 신랑,
신부 퍼레이드를 위해 승용차에 꽃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 사람들 상당히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우리의 미주라타 행 목적지는 국영철근공장이었습니다.
공장에 당도해서 보니 모든 출입구가 빈 컨테이너로 봉쇄되어 있더군요.
굴뚝은 전혀 담배를 피지 않고 있었고 근무자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오늘이 분명 휴일은 아닌데 공장 모습이 이렇다는 건 이 공장이 아직까지도
가동 재개를 안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결국 이날 하루는 비도 안 오는데 공치는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왕 먼 곳까지 간 김에 시내를 돌면서 격전의 흔적을 사진에 좀 담아보고
전쟁기념관도 관람하는 것으로 원행(遠行)의 도로(徒勞)를 조금이나마
덜어냈습니다.
오늘 찍은 사진 여기 올립니다.
1. 현채인 기사가 보여준 화폐
이 나라의 1디나짜리 지폐에는 전 독재자 카다피의 초상화가 들어 있습니다.
이 초상화를 사진에서처럼 훼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네요.
승리자의 작은 치기겠지만 서슬 퍼렇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2. 새로운 리비아 국기
이전의 국기는 초록 단색으로만 이루어진 아주 단순한 국기였습니다.
전 국토를 녹색으로 바꾸겠다던 카다피의 원대한 구상은 이제 그 국기와 함께
역사 속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래 새로운 국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건지....
3. 핸채인이 지니고 있는 권총
내전은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지역 민병대원들 간의 세력다툼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정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각 민병대원이나 개인들에게 배분되었던 무기는
아직까지 회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사도 이런 권총을 휴대하고 있다는 걸 우리에게 자랑하더군요.
4. 전쟁 자축 벽화 중 일부
트리폴리 시내에는 구정권의 압제가 사라지고 리비아에 자유가 도래했다는 의미의
벽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에도 아래 사진에서처럼 카다피를 능멸하는 벽화도 간간히 끼어 있지요.
5. 미주라타 시내에 있는 내전의 상흔
건물들의 잔해만 보더라도 이곳에서 얼마나 격렬한 전투가 있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6. 전쟁기념관 내부
이 도시에는 전쟁기념관을 빨리도 세워놓았더군요.
먼저 내부에 들어서면 벽면과 기둥 전체에 인물사진들이 빽빽히 붙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전사자들의 사진들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에서만 내전 중 약 1,300명 정도가 사망하고 600명 정도가 실종된 상태라 하네요.
7. 전쟁기념관 외부
건물 외부에는 각종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은 카다피군으로부터 노획한 것들로 보이는데 일부는 시민군들이 쓰던 것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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