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은 Eid Al Adha 연휴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연휴가 오늘 끝나네요.
여하튼 이 연휴를 맞아 3일 전 지사에서 170km 정도 떨어진 우리 회사 현장에 놀러 갔습니다.
뭐, 현장에서라고 해서 특별한 유희거리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다수가 모여 방담이나 나누기
위함이었지요.
그곳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김에 현장 뒤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황무지로
혼자 드라이브나 나갔습니다.
황무지를 관통하며 끝없이 뻗은 도로가 하나 있었지요.
전쟁 중에 건설하다 만 도로인데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간 비바람에 초벌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패여 차량을 운행하기에는 적합치 않았지만 웅덩이를 살살 피해 가며 약 65km 정도를
두어 시간에 걸쳐서 달려보았습니다.
물론 이 드라이브 시간은 가다가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고 황무지에 점재한 식물들 관찰하는 여유를
포함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길고 긴 절편처럼 생긴 도로는 지표의 높낮이를 따라 적당히 상하로 굽이치면서 거의
직선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도로의 높낮이는 현재 리비아의 불안한 정정을 징표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리비아의 미래가 순항을 거듭하여 조만간 저 지평선 위로 올라서기를 바라봅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올 것만 같습니다.
도로가 있다는 건 그 끝 어딘가에 마을이 있다는 얘기인데 아무리 가도 차는 물론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차량 통행이 어느 정도 있는데 이 날은 아마도 휴일인데다 이른 시간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도로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도로를 벗어나 황무지에 오랜 세월전부터 나 있었을 길을
달려보기도 합니다.
풍경은 원래부터 이렇게 평화로웠습니다.
풍경에 먹칠을 하는 건 인간의 탐욕이 아닐는지.
저 구름이 지금부터라도 자연처럼 순리를 지켜가며 살라고 충고하는 것만 같습니다.
인간의 흔적은 황무지에 얼기설기 엮여 있는 무수한 통행로로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구한 세월 동안 이곳을 스쳐갔을지...
드넓은 황무지 어딘가에 깃들어 있을 그들의 애환은 저 지평선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 해도 생명체에게는 시련은 될 수 있을지언정 포기의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난쟁이 관목들이 적당한 생존의 간격으로 자리를 잡고 살풍경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네요.
간간이 사구도 나타납니다.
말이 모래언덕이지 이 언덕을 구성하고 있는 건 고운 체로 걸른 흙보다도 더 미세한
분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손에 닿는 그 입자의 곱기가 흐른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바람이 사구에 만들어 놓은 물결은 유목민들에게 지중해에 대한 향수를 달래줬을지도
모릅니다.
양치기 목동이 작대기로 그려 놓았을 낙서는 저 파도에 뭍혀버렸습니다.
내가 찍어 놓은 발자국이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도 시간 문제일 겁니다.
사구에서 내려다 본 황무지는 더 넓습니다.
황무지에 난 모든 길을 섭렵해보고 싶어하는 내 애마가 나를 재촉하는 듯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양 떼가 풀을 뜯는 모습이 나타나줍니다.
잠시 차를 세우고 멀리서 저 많은 양을 거느리는 목동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헤아려지지가 않습니다.
며칠 밤낮을 저 양 떼와 같이 지내보고 싶은 소망이 입니다.
한 장소에서 식물을 관찰하고 있다가 기척이 있어 뒤를 볼아보니 어디선가 나타난
단봉낙타 한 마리가 이상한 동물 보듯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더군요.
하긴 사는 방식과 환경이 다를 뿐, 너나 나나 같은 동물이긴 하지..
사는 동안의 심적 여유를 행복의 척도로 본다면 니가 나보다는 훨씬 더 행복할 거야.
전쟁 중 임시로 건설한 활주로 입구 표식으로 이런 걸 세워놓았더군요.
황무지보다 더 황량한 광경입니다.
이쯤에서 여행의 단상을 접고 그만 직원들 곁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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