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에 올랐다.
가장 먼저 옥잠난초 종류 하나가 발견된다.
옥잠난초는 잎 모양이 옥잠화의 잎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자료를 보니 옥잠난초속 난초가 여러 종류 있다.
꽃 색이 유명난초는 자줏빛을 띠고 참나리난초는 녹자색이며 나리난초는 검은 자갈색이고 흑난초는 흑자색이라서 연한 녹색인 사진과 일치하지 않아 이들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나나벌이난초는 포가 옆으로 퍼진다는 점이 사진과 달랐다.
남은 건 옥잠난초와 키다리난초다.
키다리난초는 큰옥잠난초라고도 불릴 만큼 식물 모습 자체는 옥잠난초와 유사해서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이 둘을 구별해내는데 엄청 애를 먹었다.
갖고 있는 다른 도감들에는 옥잠난초가 나와 있지 않아 전적으로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잎에 대하여 국표식은 옥잠난초는 "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길이 5-12㎝, 나비 2.5-5㎝로서 가장자리에 주름이 지고 밑부분이 엽병의 날개처럼 되어 서로 마주 안는다." 고 하고 있고 키다리난초는 "3-4개의 초상엽으로 싸이며 난형 또는 난상 긴 타원형이고 끝이 둔하며 길이 6-12cm 나비 2.5-6cm이고 연한 녹색이며 밑부분이 엽초처럼 되고 가장자리에 주름이 다소 있다." 라고 하고 있다.
키다리난초는 3~4개의 초상엽 즉, 입집 형태의 잎으로 싸여 있다고 하는데 옥잠난초에 대해서는 초상엽에 대한 언급이 없다.
추측컨대 옥잠난초는 2개의 잎이 줄기 밑에서 만나 서로 마주 안기만 하지 초상엽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찍어 온 사진 속의 것은 키다리난초(큰옥잠난초)가 맞다.
여기서도 의문점은 있다.
여러 개체를 확인해 보았지만 초상엽은 모두 1~2개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장의 잎 자체가 만든 잎집까지 합하면 모두 3~4개의 초상엽이란 말이 맞긴 하다는 정도로 이 점은 대충 넘긴다.
다음으로 꽃에 대하여 국표식은 옥잠난초는 "5-15송이의 꽃이 드물게 붙는다."고 했는데 키다리난초의 꽃 갯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키다리난초가 일명 큰옥잠난초이기에 꽃 갯수가 옥잠난초보다는 많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가정은 틀렸다.
위 사진 속의 꽃 갯수를 세어보니 대략 18개 정도였다.
이 숫자는 국표식의 옥잠난초 꽃 갯수 범위를 벗어나니 사진 속 녀석은 키다리난초가 된다.
그렇지만 꽃이 10개 내외인 이 녀석도 몇 가지 정황으로 보아 키다리난초라고 판명되었으니 꽃 갯수가 둘을 구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하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국표식의 설명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니 옥잠난초의 꽃받침 길이는 5.5mm~6.5mm이고 키다리난초는 9mm 정도라고 되어 있다.
별 수 없이 자를 들고 현장으로 다시 갔다.
십여 마리의 모기에게 본의 아니게 헌혈해 가면서 꽃받침 길이를 겨우 쟀는데 약 10mm 정도이다. (사진에서 꽃 대신 자가 더 선명하게 나왔넹.. ㅠㅠ)
그렇다면 분명히 키다리난초가 맞다.
주변에 꽤 많이 자라고 있는 것들을 대부분 조사해봤는데 꽃 갯수와 관계없이 모두 키다리난초였다.
어떤 것은 꽃이 대여섯 개밖에 달려 있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관찰 결과를 종합해 보면 옥잠난초와 키다리난초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꽃받침의 길이를 재보는 겟이다.
꽃 갯수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잎이 옥잠난초는 타원형이고 키다리난초는 난형인데 잎 모양이야 조금씩 변이가 있을 수 있으니 둘을 구분하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키다리난초라는 이름에도 의문이 있다.
옥잠난초의 키는 20~31cm 이고 키다리난초의 키는 10~40cm이다.
즉 키다리난초가 옥잠난초보다 더 작을 수도 있다.
차라리 큰(꽃)옥잠난초를 정명으로 하고 키다리난초를 이명으로 처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인다.
참고로 위인경이라 불리는 뿌리는 위 사진에서 보듯이 통상 지표면으로 나와 있고 지난해의 마른 잎자루로 덥혀 있다.
세상에 이렇게 귀한 꽃이 우리 동네 산에도 다 있었다니, 했는데 알고 보니 전국에서 흔하게 자란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이제까지는 한 번도 내 눈에 안 띄었을꼬...
(----> 나중에 추가 : 자료에 키다리난초는 순판이 약간 젖혀진다고 되어 있는데 사진 속 녀석은 완전히 젖혀져서 뒤로 말리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사진 속의 종은 옥잠난초가 맞는 것 같다. 결국은 자료에 나오는 꽃받침잎의 길이는 단순한 참고사항에 불과하다고 보면 순판의 젖혀진 정도로 보아 옥잠난초로 볼 수도 있는데 이 구분법이 개인적으로 최종 선택한 방법임을 이에 부기한다. 즉, 상기 사진 속 식물을 옥잠난초로 본다는 것이다.)
나리 종류 하나가 눈에 띈다.
나리 종류도 참 많기도 많다.
검토 결과 솔나리, 큰솔나리, 중나리, 털중나리가 묾망에 올랐다.
모두가 꽃 색이 같고 꽃이 밑을 향해 핀다.
그런데 솔나리와 큰솔나리는 잎이 가는 선형이고 중나리는 선형이며 털중나리는 피침형이라서 일단은 잎 모양만으로도 털중나리로 결론이 난다.
확인 차 잎의 털 유무를 조사해보니 솔나리와 큰솔나리는 양면에 털이 없고 중나리는 털이 없거나 약간 있다 한다.
찍어 온 사진에서 잎 앞면에 잔털이 많다.
뒷면도 마찬가지다.
잎뿐만 아니라 줄기에도 털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털중나리의 설명 내용과 일치한다.
그런데 문제는 자료에서 털중나리의 꽃은 1~5개 핀다고 했는데 맨 위 사진에서 보면 꽃송이가 아직 피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여 6개이다.
뭐 이 정도의 오차는 늘상 봐왔던 것이니 털중나리로 결정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털중나리를 찍기 전에 이 녀석을 만났는데 내가 건드리자 그때부터 미동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죽은 척 하기 전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험 삼아 뒤짚어보았더니 역시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그대로 놔두고 털중나리 사진을 다 찍은 후에 와보니 그 자세 그대로이다.
정말 대단한 은근과 끈기다.
설마 내가 요즘 식물 탐사 행보에 점차 회의를 느껴가고 있다는 걸 알고 이 녀석이 내게 뭔가를 암시하기 위해서 이러는 건 아니겠지.
녀석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고 자리를 뜬다.
애기풀이 피었던 자리에 가보니 열매를 매달고 있다.
자료는 애기풀의 열매에 대하여 " 편평한 원형이고 2개의 포가 있으며 넓은 날개가 있고 9월에 익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에서 열매의 포와 날개를 찾아보는 숙제를 내면 혼날라나.
큰까치수염이 하나둘씩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큰까치수염은 줄기 윗부분에만 털이 있는데 까치수염은 줄기 전체에 털이 빽빽히 난다.
진퍼리까치수염은 꽃차례가 곧게 선다.
여러가지 다른 일들에 신경을 분산시키느라 잠시 소홀히 한 사이에 노루발이 벌써 개화기 마감 단계에 돌입했나보다.
그나마 고맙게도 나를 기다려준 개체 하나가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콩팥노루발은 잎이 신장형이고 매화노루발은 줄기 끝에서 가지가 갈라져 그곳에 꽃이 달린다는데 이 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올해는 어떡하든 좀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끝내 그 기대가 무산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골무꽃 종류 하나가 눈에 띄는데 보자마자 광릉골무꽃이란 이름이 떠오른다.
꽃이 거의 수직으로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에 들어 있는 '광릉' 이란 말이 이 추정을 얼른 지워낸다.
광릉골무꽃은 광릉에서나 필 것이라는 생각이 뒤따라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골무꽃 종류 중에도 꽃이 거의 수직으로 서는 것이 있다는 걸 본 적이 있기에 그것이 아닐까 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결국 광릉골무꽃이었다.
식물 이름 중에는 최초 발견지의 지명이 그속에 포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그 이름이 그 식물은 그곳에만 산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남산제비꽃은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었지만 그 밖의 지역에서도 흔히 자란다.
광릉골무�도 그러한 모양이다.
밀나물이 꽃을 피웠다.
꽃은 황록색으로 갈라진 화피가 뒤로 젖혀진다.
작년에 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쥐방울덩굴이 다시 꽃을 피웠다.
꽃 모양이 다소 특이한데 녀석이 혹시 고교 시절 밴드부에서 불었던 악기를 평생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쥐방울덩굴의 잎은 이렇게 생겼다.
마지막으로 동네 산 봉우리 중 하나에 걸려 있는 시 내용이 좋아 여기에 소개키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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