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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갤러리-풀꽃나무

식물 탐사 일기 - 곡달산 (08.07.07)

by 심자한2 2008. 7. 14.

 

일전에 화야산을 가다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가평의 솔고개라는 곳에 내려서 그곳으로부터 화야산을 찾아 오르느라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보니 솔고개를 들머리 중의 하나로 하는 산이 있는데 이름이 곡달산이다.

산명의 유래는 모르겠으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곡달산(鵠達山)의 '곡' 자가 고니를 의미한다.

고니가 이 산에서 도를 닦다가 마침내 달관한 산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오늘의 산행지를 이 산으로 정한 것은 단순히 이 이름이 인상에 남았다는 이유 하나뿐이다.

이 산에 대해서 아는 바는 전혀 없다.

교통편이야 이전에 실수한 경험이 있으니 완벽하게 숙지된 상태다.

금곡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솔고개에서 내려 언제나처럼 인근 매점에서 간식거리 좀 사들고 산으로 든다.

 

최근에 산을 찾는 목적은 거의 야생 초목 관찰을 그 목적으로 하기에 산에만 들어서면 가슴은 기대로 부푼다.

더구나 이 산은 인지도가 크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을 테니 식물 자원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추정이 그 기대에 바람을 더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산을 오를수록 올라간 높이 만큼씩 기대의 부피가 줄어들더니 정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에드벌룬 같던 기대는 아예 납작해졌다.

때가 때이니 만큼 근자에는 어느 산에서나 유사한 현상이 있었기에 그냥 그려러니 하고 말기로 한다.

 

입구에서 맨 처음 만난 건 네잎갈퀴나물이다.

네잎갈퀴나물은 콩과인데 꼭두선이과인 네잎갈퀴와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다른 식물이다. 

 

잎은 이렇게 작은잎 네 장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인데 실제로는 정소엽이 하나 더 달려 5장인 것도 다수 있고 3쌍의 작은잎이 달리기도 한다.

 

덩굴손은 거의 발달하지 않는데 간혹 홀수깃꼴겹잎인 경우 정소엽 옆에 덩굴손 비슷한 게 생기다 만 게 관찰되기도 했다.

 

옥잠난초는 거의 끝물이라 꽃이 피었던 자리에 열매를 매달기 바쁘다.

 

깨금이라고도 불리는 개암나무 열매가 총포에 둘러싸인 채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안에 들어 있는 종자를 씹으면 고소하다는데 아직 맛은 본 적이 없다.

 

요즘은 어느 산엘 가나  하늘말나리가 눈에 띈다.

하늘말나리는 꽃이 위를 보고 피고 줄기 중간에 6~12개의 잎이 윤생을 하기 때문에 쉽게 구분이 간다.

 

더 이상 특별한 식물은 없겠거니 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주변을 살피며 걷다가 바위 위에 붙어 있는 난초류를 찾아냈다.

한 포기가 아니고 꽤 여러 포기가 듬성듬성 나 있었다.

병아리난초가 곁에서 같이 자라고 있었으나 이전에 이미 접한 바가 있기에 일단 병아리난초는 무시했다.

이전에 명성산에서 본 병아리난초도 이끼가 많은 바위 위에서 자라더니 이곳의 병아리난초와 사진 속 난초가 붙어 있는 바위 위에도 구실사리가 카펫처럼 두껍게 덮혀 있었다.

바위는 기울기가 위태롭고 이끼로 인해 심하게 미끄러워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난초류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 커 위험을 좀 감수하기로 하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간신히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런 수고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무슨 난초인지 정체파악이 힘들다.

일단은 순판이 밑 1/4 정도에서 굽은 점은 나나벌이난초일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데 굽은 순판이 옆으로 퍼지지 않고 거의 수직으로 밑을 향해 곧추서 있는 점이 자료의 설명과 다르다.

더군다나 나나벌이난초는 꽃 색이 연한 녹색이거나 자갈색이 돈다고 되어 있는데 사진 속의 난초는 짙은 자갈색에 가깝다.

또 나나벌이난초는 포가 옆으로 퍼진다 하는데 찍어 온 포 사진을 보면 그렇지도 않아 결국 나나벌이난초는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보면 옥잠난초 종류 중에 유명난초가 있는데 모든 설명이 누락된 채 단순히 "꽃은 보통 진한 자줏빛을 띈다."고만 언급하고 있다.

유명난초의 이름 유래는 모르겠으나 유명산에서 자라는 난초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추정해본다면 곡달산이 유명산과 지근거리에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결국은 꽃이 진한 자줏빛이라는 설명내용과 곡달산의 지리적 위치 두 가지만으로 녀석을 유명난초로 잠정 분류하기로 했다.

물론 아전인수격 해석이기에 신빙성이 없는 단순 추측이라는 사족을 구태여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러면 이미 부연한 셈이 되는 건가? ㅠㅠ)

 

순판의 굽은 부분이 사진에서처럼 밑으로 곧추서는 건 참나리난초의 특징이라고 기술되어 있기에 처음에는 참나리난초일 가능성도 열어두었으나 참나리난초의 순판은 녹색이고 중앙 부분에서 굽는다는 점이 결정적인 상이점으로 대두하여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순판의 끝은 이렇게 길게 뾰족했다.

 

근처에서 같이 자라고 있는 다른 포기의 꽃은 연한 녹색에 자줏빛이 약간 돌았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나나벌이난초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사진에서 어렴풋이 보이지만 긴 꽃자루 밑에 있는 포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꽃자루에 붙어 있고 굽은 순판이 옆으로 퍼져 있지 않기에 나나벌이난초라는 것도 의심스럽다.

국표식에서 유명난초의 꽃 색을 언급하면서 '보통' 이란 말을 굳이 썼다.

이 점에서 보면 이 녀석도 꽃 색은 차이가 나지만 같은 유명난초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충분한 도감 사진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표식의 설명내용에만 주로 의존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옥잠난초속의 식물들 모두의 사진이나 실물을 직접 본 후에나 그들에 대한 식별법이 확실히 정립될 것 같다.

불행히도 현재로서는 절대적인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동정은 기대난이다.

 

자주조희풀이 딱 한 송이 피었다.

얘도 작년에 나를 엄청 괴롭혔던 녀석 중 하나다.

 

많은 구분법들이 인터넷에 소개되고 있는데 일단은 화관이 통 모양이면 자주조희풀이고 병 모양이면 병조희풀로 보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구분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병 모양이란 화관 밑 부분이 부풀어 있고 윗부분은 상대적으로 잘록한 형태를 말한다.

 

원추리 종류 하나를 만난다.

원추리도 종류가 많지만 그 구분법이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아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별수없이 사진을 찍어 올 수밖에 없다.

 

자료 조사 결과 골잎원추리로 보인다.

 

정상에 오른 후에는 원점회귀하지 않고 한우재라는 곳으로 하산했다.

솔고개에서 정상까지 3.2km, 정상에서 한우재까지 1.1km인 짧은 산행이었다.

정상이 표고 630m인 비교적 낮은 산이라서인지 연로하신 분들이 단체로 산행하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곡달산은 대체로 키큰나무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 초본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

햇빛이 차단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초본들이 있을 법도 한데 곡달이 육산이 아닌 암산이라서인지 초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도 거의 없다.

따라서 곡달산은 야생 초본을 탐사하기에는 그다지 매력적인 장소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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