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8.24 (일) - 복두산 (1)
감기 기운이 있어 신체 컨디션이 별로다.
이럴 땐 다소 힘이 들더라도 차라리 간단한 산행을 하는 게 더 나으리란 생각에 동네 산으로 발걸음을 했다.
동네 산은 그렇지 않아도 마지막 방문 후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터이라 다시 한 번 가봐야 할 시점이 되긴 했다.
평소에 즐겨 이용하던 들머리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봉분들이 적잖이 모여 있어 그런대로 초지가 발달되어 있기에 올해만 해도 처음 보는 몇몇 귀한 풀꽃들과 조우하는 행문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초지가 훤해졌다.
풀밭은 누군가에 의해 산발한 머리가 잘려나가 단정한 군인 모습이 되어 있었다.
최근에 야간산행까지 해봤으면서도 차오르는 달의 모습에서조차 눈치 채지 못한 추석의 임박한 도래를 불시에 이곳에서 느꼈다.
풀밭의 형세로 보아 이발한 지 불과 하루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은 듯하다.
한참 성가를 구가하고 있던 마타리, 개미취, 갈퀴나물, 쉽싸리, 가는층층잔대 등은 물론 이제 막 피어나고 있던 무릇, 산박하, 새콩, 꽃며느리밥풀 등의 존재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심지어는 키 작은 여우주머니, 주름조개풀, 벌노랑이 등의 허리도 싹뚝 잘려나가 그 밑동만으로는 주변의 잔디와 구분해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허탈해 해야 마땅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내 마음이 담담하다.
어쩌면 인간의 벌초 행위도 이미 그 식물들에게는 일생 동안 일어날 사건 중 하나로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년이면 또 다시 그들은 피어나고 또 동일한 시련을 겪을 것이다.
반항이나 좌절보다는 순응이 그들의 덕목이리라.
그런 순응이 있어야만 적응을 통한 진화가 가능한 건 아닐런지.
예초기의 시퍼런 서슬이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의 허리까지 꺾어놓지는 못할 것이라는 내 위로보다 그들의 본능이 훨씬 더 심오하기를 바라며 자리를 뜬다.
1. 붉나무
이곳에서는 붉나무의 개화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 활나물
동네 산에도 활나물이 자라고 있는 줄은 몰랐다.
한 번 만난 풀꽃들은 그 이후로 쉽게 눈에 띄는 경향이 있다.
풀꽃들도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
3. 산박하
지금 한참 산을 주름잡고 있는 녀석이다.
이렇게 길쭉한 녀석은 전초 사진을 이렇게밖에 못 찍겠다. ㅠㅠㅠㅠ
꽃은 취산꽃차례에 달려 전체가 커다란 꽃이삭을 형성한다.
암술과 수술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유사종으로 암술과 수술이 밖으로 나온 것을 방아풀이라 한다.
잎은 삼각상 달걀형이고 밑부분이 흘러 잎자루의 날개가 된다.
잎면에는 맥 위에만 털이 드문드문 있다고 하는데 적으나마 표면에서도 털이 관찰된다.
뒷면 맥 위에도 털이 드문드문 난다.
4. 영도산박하
산박하도 종류가 몇 가지 된다.
그중 영도산박하라고도 있는데 이름만으로 바닷가나 섬 지방에서나 나는 것으로 짐작했는데 산박하와 마찬가지로 산지에서 자란다.
산박하의 잎은 삼각상 달걀형이고 잎 양면 맥 위에 털이 드문드문 나는데 반해 영도산박하는 잎이 산박하보다 작으며 달걀형이고 잎 양면 맥 위에 털이 드문드문 나면서 잎 표면에 누운 털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잎이 산박하보다 얼마나 작은지 수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산박하의 잎이 길이 3~6cm, 폭 2~4cm라고 하니 그보다 더 작은 것은 일단 영도산박하로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위 사진 속 잎은 달걀형으로 보인다.
이 잎의 앞면을 보니 맥 위에 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누운 털로 보이는 것이 표면에 듬성듬성 나 있다.
그렇다면 잎 모양이 달걀형이고 표면에 누운 털이 있으니 영도산박하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잎 크기는 재어보지 않아서 확신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박하의 잎 표면 사진에서도 표면의 털은 어느 정도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표면의 누운 털과 잎 모양만으로 일단은 영도산박하로 동정했다.
5. 처녀바디
바디나물 종류는 몇 개 되지도 않는데 처녀바디와 흰바디나물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참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우선 꽃 색을 보면 바디나물은 자주색이고 부전바디는 홍백색이며 나머지 처녀바디, 흰바디나물, 섬바디, 잔잎바디, 고산바디는 흰색이다.
흰 꽃을 피우는 것 중에 총포가 없는 것은 처녀바디, 섬바디뿐이다.
사진에 담은 녀석은 총포가 없었다.
사진에 찍힌 소총포는 기껏해야 5개 이내인데 섬바디의 소총포는 10~20개나 된다 하기에 당연히 남은 하나인 처녀바디가 사진의 주인공이 된다.
처녀바디의 "근생엽과 밑부분의 잎은 엽병이 있고 1회우상복엽이며 3-9개의 우편(羽片)으로" 된다고 하는 설명 내용이 대체로 사진과 일치한다.
단지 여기서 우상복엽이란 잎이 깃꼴로 된 겹잎, 즉 잎이 갈라진 게 아니고 따로따로 난 작은잎이 모여 하나의 큰잎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에 있는 잎은 그런 형태라기 보다는 깃꼴로 갈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도감에서는 잎이 깃꼴겹잎, 즉 우상복엽이란 표현을 자주 쓰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긴 하나 사실 산형과 식물들을 동정하는데 있어서 이런 불명확한 표현이 상당한 시간을 허비케 하는 주범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줄기 위쪽의 잎을 살펴보니 잎자루가 없다.
이 녀석이 바로 나로 하여금 상당한 시간을 허비케 한 범인이다.
이 확대 사진을 보면서 깃꼴겹잎의 첫 번째 한 쌍이 바로 잎집에 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한 쌍이 바로 잎집에 붙는 것이 흰바디나물의 특징이다.
흰바디나물은 잎이 2~3회 깃꼴로 갈라지며 가늘고 긴 총포가 있다는 설명이 사진과 명백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내가 너무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처녀바디의 잎이 깃꼴로 갈라진 게 아니고 깃꼴겹잎이라고 한 점이 사진과 달라 보였다.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위에서 언급한 대로 처녀바디의 '깃꼴겹잎'이란 표현은 단순한 오류이거나 '겹잎'과 '깃꼴로 갈라진 잎'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쓴 표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첫 번째 한 쌍도 자세히 보면 잎집이 아니라 잎자루 맨 아래에 바짝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이 결론 도출에 일조를 했다.
이런 혼선은 순전히 내가 아직까지 흰바디나물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처녀바디의 소산경은 8~12개이며 중심부의 소산경이 주변부의 것보다 짧다는 점이 사진과 일치한다.
꽃의 갯수에 대한 언급은 자료에 없다.
총포는 없고 소화경과 소산경 안쪽에 잔돌기가 있는 것이 사진에서 관찰된다.
소총포는 선형이라고만 되어 있는데 사진 속에서는 2개 정도가 명확히 관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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