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금대봉이란 이름을 명기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잠시 고민 좀 했다.
식물 탐사 하는 사람들은 자생지 보호라는 명목으로 올리는 사진 속 식물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번 탐사에서 귀하다 싶은 식물 몇 개를 보았는데 나도 그 출처 익명 처리 대열에 동참할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금대봉에서 찍은 식물 사진들이 아주 많이 올라와 있기에 내가 굳이 출처를 감춰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모처럼 친구와 동행을 했다.
친구가 내 산행에 한 번 동참하고 싶다고 하여 친구 차를 이용하여 금대봉으로 향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은 김에 좀 먼 곳으로 가보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정한 목적지가 평소 가보고 싶어 했던 금대봉이다.
잠실에서 6시 반에 만니기로 했기에 5시 경 집을 나섰다.
우리 동네에서 잠실 가는 첫차가 5시 반 경에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새벽이라 교통 정체가 없어 버스는 평소 1시간 여 걸리던 거리를 40분 정도만에 주파한다.
친구는 6시 50분 경에야 도착했다.
둘 다 전날 충분한 숙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다.
친구는 사업상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새벽 3시 경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나대로 소풍가는 초딩처럼 가슴이 설랬는지 잠이 오지 않아 비슷한 시간에 자리에 누웠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상큼한 새벽공기가 우리의 눈가에 어려 있는 졸음기와 수면부족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씻어내준다.
올림픽도로, 외곽순환도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제천, 영월을 거쳐 태백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대략 3시간 반 남짓이었다.
태백시까지 들어가기 전에 두문동재 입구에 이르렀을 때 지난 겨울 등산차 함백산에 왔을 때 두문동재에서 눈길을 한 시간여 걸어내려왔던 기억이 나서 그곳으로 일단 차를 몰게 했다.
다행히도 내 기억이 제대로 작동했나보다.
찾고자 했던 길이 맞았기에 절약된 시간이 적지 않았다.
두문동재를 일명 싸리재라고 하는 모양인데 사전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금대봉은 이곳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지난 겨울에는 몰랐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고 나니 함백산 등산 시 하산한 지점에서 도로 건너편이 금대봉 가는 등산 들머리다.
양 들머리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태백시를 경유하지 못해서 식사거리를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두문동재에서 10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매점에서 웬만한 건 다 판다는 등산 안내소 안내인의 말이 우리의 걱정을 깨끗이 해결해준다.
김밥과 삶은 달걀, 정상주, 과자 등 몇 가지를 샀다.
차를 몰고 오는 동안에도 친구는 스치는 주변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공기는 그다지 맑지 않아 시야는 다소 흐릿했지만 그 정도의 흠결이 짙푸른 녹음에서 발산된 청량감의 진로를 방해하진 못한다.
국도 언덕을 넘어서면 앞산의 우람한 자태가 망막에 뛰어들고 모퉁이만 돌면 구불거리는 도로와 사행천이 경관에 변화를 준다.
일단 이런 자연 속으로 들어오면 평소 신체와 정신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여 있던 분진이 깨끗이 씻기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갖고 있는, 찾는 이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자체 정화력이다.
자연이란 여과기를 통과한 심신이 새털처럼 가벼워진다.
친구의 자연에 대한 감탄사와 동행 결정에 대한 자찬은 등산 도중에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사실 금대봉에 오르는 길에 펼쳐진 풍광이 다른 산들에 비해 그다지 특출한 건 아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산에도 이보다 훨씬 더 멋진 경관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설레임의 크기는 집으로부터의 이격도에 어느 정도 비례한다는 건 그간의 내 여행 경험이 말해준다.
그 장거리 여행의 묘미가 곁에 있는 친구의 표정에서 적나라하게 읽힌다.
혼자만 다니던 산행이었는데 막상 동행이 생기다 보니 조금은 어색하다.
행동에 어느 정도 제약이 생긴 탓인가 보다.
친구의 체력을 우선 고려하려는 마음에서 친구를 앞세운다.
산행 초보자인 친구의 보조에 내가 맞추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다보면 어느새 친구는 내 뒤에 있다.
친구는 나름대로 내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간취된다.
야생화를 만나 내가 디카를 꺼내들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머무를 때 친구는 곁에서 가쁜 숨을 고른다.
길을 가면서 친구는 계속해서 보이는 모든 초목의 이름을 내게 묻는다.
나를 아마 모든 초목에 정통한 대단한 식물학자 정도로 오인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좀 아는 척 하는 게 싫지 않더니 같은 식물의 이름을 대여섯 번씩 물을 때쯤 되니 또 다시 이전의 단독 탐사 여행이 저절로 생각난다.
그래도 식물에 대한 관심을 하산때까지 꺾지 않고 힘든 산행을 끝까지 감내한 친구의 정성이 고맙다.
일단 금대봉까지 오른 후 대덕산 쪽 등산로로 들어서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띄는 소로로 접어들었다.
한참을 내려갔는데도 이상하게 초원이 나타나질 않는다.
사전에 조사해온 바에 의하면 금대봉을 지나면 능선을 따라 긴 풀밭이 펼쳐져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는 석연치 않은 느낌은 다음 안내판을 만났을 때 현실화되었다.
도리없이 다시 금대봉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귀한 시간 좀 허비했다.
금대봉에서 다시 대덕산 쪽으로 어느 정도 가다 보니 양강발원봉이란 팻말이 나타난다.
이 지점이 한강과 낙동강 모두의 발원지라고 한다.
오늘의 산행은 대략 이쯤에서 끝났다.
중도에 좀 헤맨 탓도 있지만 친구의 보폭을 고려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 상 대덕산까지는 다녀올 수가 없었다.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다음에 한 번 더 오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야생화천국이란 세간의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날 금대봉은 귀한 식물 몇 가지로 내 방문에 대한 예우를 해주었다.
수정난풀, 난초류 두 가지, 묏미나리, 검은종덩굴 등이 금대봉의 선물 보따리 속에 포함되어 있다.
기대치에는 못 미쳤지만 지금은 야생화가 드문 시점임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괜찮은 수확이다.
진작에 이곳을 찾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된다.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는 식물들이기에 집에 와서 그들의 정체를 밝히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했다.
유사종들이 많은 게 식물이다 보니 귀찮다고 대충 동정해버리고 나면 후일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른 사람들이 금대봉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리면서 붙여 놓은 이름들이 제각각이다.
그러니 카페나 블로그에 올라온 이름은 참고는 될지언정 그다지 크게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물론 다른 카페나 블로그의 주인장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건 아니다.
그 정도 오류는 내 블로그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다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지 찍어 온 사진 속 식물 동정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이날 본 식물들의 동정 작업은 주로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의존하는 평소의 원칙을 고수하였다.
운이 좋게도 숲속 낙엽 밭에서 수정난풀을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면 등산로 옆에서 천연인공강우를 좀 뿌리는데 눈앞에 서 있는 노린재나무 잎들 사이로 뭔가 하얀 물체가 보였다.
그게 바로 이 수정난풀이다.
정말 우연한 조우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것은 열마 전에 인터넷에서 처음 그 사진을 보고 비로소 존재를 알게 된 것이었는데 모습이 특이해서인지 현장에서 실물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 사진에 붙어 있던 나도수정초란 이름이 떠올랐다.
그런데 집에 와서 자료를 보니 수정난풀과 나도수정초의 구분이 아주 애매하다.
인터넷에 올라 온 사진들에 붙은 이름도 수정난풀과 나도수정초가 거의 반반씩이다.
우선 위 사진에서 줄기에 붙어 있는 것이 잎이다.
잎은 둘 다 퇴화하여 비늘조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은 동일한데 자료는 나도수정초의 경우 이 잎이 줄기에 "빽빽이" 난다고 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잎이 빽빽히 난 수준은 아니기에 이 점에서 수정난풀 쪽에 더 높은 점수가 매겨진다.
다음으로는 꽃 부분이다.
사진 속의 것이 꽃인데 중앙에 있는 종형의 꽃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것이 꽃받침이고 꽃과 대략 수평으로 나 있는 것이 꽃잎이다.
사진에서 꽃받침은 3개, 꽃잎은 4~5개가 관찰된다.
자료에서는 수정난풀의 경우는 "꽃받침잎은 1-3개이며 인편엽과 비슷하고 긴 타원형이며 꽃잎은 3-5개" 라고 하고, 나도수정초의 경우 "꽃받침조각은 일찍 떨어지고 꽃잎은 5개" 라고 하고 있다.
찍어 온 다른 사진들을 보니 꽃잎 갯수는 대략 5개 정도로 보였고 꽃받침은 모두 제대로 붙어 있었다.
따라서 이 점에서 꽃받침조각이 일찍 떨어진다는 나도수정초가 불리하다.
결국 이 두 가지 관점에서 최종적으로 이 녀석을 수정난풀로 동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수정난풀만 보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흰색의 해마가 떠오른다.
수정난풀은 뿌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흰색이고 혹자는 버섯으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엄연히 뿌리와 줄기와 잎과 꽃을 가지고 있는 초본이다.
단지 일반 초본류처럼 엽록소를 가지고 있지 않아 광합성은 하지 못하고 부생식물로 살아간다.
부생식물(腐生植物)이란 죽은 식물이나 배설물로부터 필요한 영양분을 얻는 식물을 말하는 것으로 살아 있는 식물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 기생식물에 비하면 비교적 양심적인 식물이다.
다음으로 나를 괴롭힌 건 이 녀석이다.
쥐손이풀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쥐손이풀과 식물치고는 꽃이 상당히 컸다.
쥐손이 종류와 이질풀 종류를 모두 살펴보았으나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다.
인터넷에서 금대봉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올린 것들을 보니 위 식물에 대한 이름이 쥐손이풀, 털쥐손이, 둥근이질풀, 꽃쥐손이 등등으로 아주 다양하다.
그만큼 쥐손이풀과 식물도 아주 헷갈린다는 걸 의미한다.
최종적으로 털둥근이질풀, 꽃쥐손이, 큰세잎쥐손이가 경합을 벌였는데 털둥근이질풀은 꽃의 지름이 2cm 이하라는 점에서 탈락되었다.
남은 둘은 꽃의 지름이 모두 3~4cm 정도로 비슷하다.
꽃쥐손이의 탁엽은 넓은 피침형이고 서로 떨어지는데 큰세잎쥐손이는 탁엽은 합생하고 피침형 또는 선형이라는 점이 다르다.
사진 속 탁엽은 이 점에서 자신의 신분이 꽃쥐손이임을 말해주고 있다.
큰세잎쥐손이는 화경과 소화경의 끝 부분에 꼬부라진 누운 털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점이 사진과 다르다.
꽃쥐손이는 전체에 퍼진 털이 있다는 점이 사진과 일치한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꽃쥐손이로 결정하려는데 이번에는 꽃쥐손이의 꽃 색이 홍자색이라는 점이 걸린다.
다시 한 번 도감과 자료를 살피다 보니 털쥐손이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찍어 온 사진과 아주 흡사하다.
이 털쥐손이는 국표식에서 꽃쥐손이에 통합되었는데 털쥐손이의 꽃 색이 바로 연한 홍색이다.
그러니 꽃 색 문제도 해결되어 꽃쥐손이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꽃쥐손이는 쥐시손이풀과 중에서 꽃이 가장 크다.
검은종덩굴과 요강나물은 둘다 꽃 겉면에 암갈색 털이 빽빽이 나 있어서 꽃만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잎을 보면 쉽게 구분이 된다.
검은종덩굴은 잎이 5~7개의 작은잎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이고 요강나물은 3개의 작은잎으로 구성된 깃꼴겹잎이거나 홑잎인 점이 다르다.
검은종덩굴의 잎은 정소엽이 사진에서처럼 덩굴손으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검은종덩굴과 함께 요강나물도 같이 자라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장에서 이 구분법을 몰라 요강나물 사진은 담지 못했다.
나비나물 종류가 꽃을 피웠다.
나비나물은 잎 두 장이 줄기 양쪽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서 나는데 이 모습이 나비의 날개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막상 집에 와서 보니 나비나물 종류가 꽤 많다.
여러 가지 종류의 나비나물들이 자라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잘 살펴보지 못한 게 아쉽다.
엽병은 짧고 탁엽은 엽병보다 길며 반화살형이고 양끝이 예리한 점으로 보아 광양나비나물로 동정했다.
눈개승마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눈개승마의 잎은 2~3회 3출엽이다.
곁을 지나던 안내인이 전호라고 했던 건 묏미나리인 것 같다.
우선 전호는 꽃잎의 크기가 각각 다르고 바깥쪽 꽃잎이 특히 크다는 점이 사진과 다르다.
자료에 미나리나 묏미나리의 꽃잎 부분의 형상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망설였는데 이전에 찍은 독미나리의 꽃을 보니 꽃잎 끝이 안쪽으로 굽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 묏미나리도 �잎 끝이 안쪽으로 굽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산경에는 안쪽에 잔돌기가 있다고 하는데 사진에서 그 잔돌기가 관찰된다.
총포는 없거나 1~2개이다.
문제는 소총포는 5~6개로 피침형이고 가장자리가 막질이라고 하는데 그 부분이 사진에서 확실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잎은 2~3회 3출우상복엽이고 작은잎은 달걀형으로 간혹 2~3개로 깊히 갈라지며 가장자리에 거치가 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최종적으로 묏미나리로 결론은 내렸는데 석연치 않은 점이 몇 개 있어 잘못된 결론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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